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Nov 30. 2023

자식을 영영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

6년 전 어느 주말이었다. 우리 가족은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아침 식사를 먹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창문 밖에서 굉음이 들렸는데, 헬리콥터가 바다의 수면 가까이에서 날면서 무언 가를 찾고 있을 때 나는 소리였다. 지난여름에는 부두 가까이에서 놀던 어린아이가 물에 빠진 뒤 응급헬기가 날아와 아이를 건져 어린이 병원으로 날아간 적이 있었다. 또 긴 겨울에 사람들이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을 때면 어김없이 인근 해안가를 수색하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찾고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하곤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음 날 쯤이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슬픈 소식을 듣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음 날,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갔을 때 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던 차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엘과 눈이 마주쳐 자연스럽게 그가 이야기를 나누던 그룹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불과 우리 집에서 2분 거리에 살고 있었던 이웃집 사람 티나(Tina)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티나의 남편이 티나를 20분 거리의 옆 동네에 차로 데려다주었는데 그날 귀가하지 않았고, 이 후로 티나와 매일 연락을 했던 친지와 친구들과도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다고 했다.


대개는 이런 경우 하루나 이틀이면 수색이 끝나는데 티나의 경우는 달랐다. 뉴스에서 며칠 동안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어 인근 40km 이내의 해안가와 숲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녀에 관한 출입국 기록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티나의 남편이 아내가 부부싸움을 한 뒤에 집을 나간 것이라는 식으로 진술을 바꾸면서, 사람들은 티나의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황을 포착한 경찰이 그를 다시 불러 조사했지만 그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하고 그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지난 6년간  티나의 사건은 미궁에 빠진 채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사건이 최근에 9시 뉴스에 다시 보도되면서 우리 동네가 또 한 번  온 나라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법에 따르면 실종수사가 시작된 지 6년이 지난 후에도 그 단서를 찾지 못한다면, 가족들의 요청이 있을 때 ‘실종사건’이 ‘살인사건’으로 전환될 수 있는데 그 시점이 바로 올 해였던 것이다. 뉴스에 따르면 티나의 가족은 지난 6년 동안 경찰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실종과 관련된 단서를 찾기 위해 멈추지 말고 수색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고 한다.


사건의 성격이 전환되자 경찰은 그동안 170명의 목격자와 관련자의 탐문을 통해 포착한 정황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바로 특정했다. 이를 위해 티나가 실종되기 전까지 살았고, 그의 남편이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그 집에 국과수 포렌식 팀을 파견하여 굴착기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결국 화단에서 사람의 치아와 머리뼈가 발견되었고 확인 끝에 티나의 것임이 판명되면서 다음 날 경찰은 티나의 남편을 체포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일상을 같이 했던 남자가 살인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소름 끼쳐하면서 또 동시에 이 사건이 부동산 가격 등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조금 다른 면으로 이 사건의 결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티나의 가족들은 장례식을 치르며, 딸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게 되겠구나.’라고 말이다.


한 신문에서 티나의 가족들이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티나의 어렸을 때의 모습, 결혼식을 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왠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이 부분이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살이 된 딸이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고, 또 티나의 실종과 죽음을 부모로서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생각할수록 나는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이 더욱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름다운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간 그 순간 그리고 아이들을 기다리며 차가운 부둣가에서 넋을 놓고 있던 부모들의 모습과 티나의 가족들의 인터뷰와 교차되면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애끓는 심정일지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나는 쇼핑몰에서 겨우 20분 간 아이의 손을 놓쳐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내가 짧은 순간에 느꼈던 그 심정도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는데, 하물며 영영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이라는 것은 정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일 것 같다.


몇 명의 동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녀의 집 앞에 꽃과 촛불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또 뉴스에 보도된 후 며칠 만에 셀 수 없이 많은 꽃다발과 초가 그녀가 사망한 집 앞에 놓였다. 그리고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그녀의 추모식이 열렸고, 그다음 날 성당에서 장례식도 열렸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포함해 그녀를 잘 모르지만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 자리에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그녀의 허망한 죽음을 애도하며 슬프게 눈물을 흘렸는데, 왠지 그 모습들이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는 2014년 당시에 사는 것에 바빠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추도식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가 되고 티나의 사건을 통해서 자식을 허망하게 보낸 부모의 마음을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티나의 장례식에 참례해서 그녀가 평화롭게 잠들기를 기도했었는데, 사실 나는 장례미사 동안 오히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또 진심으로 그들이 영면하기를 기도했었던 것 같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세월호 사고의 304명의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특히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영원히 살아갈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의 냄새, 기억의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