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서적은 아닌데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가장 큰 근거로 사는 것 중 하나인 영혼. 하지만 영혼의 실체에 대해 규명된 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영혼을 부존재하는 가상의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온갖 감정들, 사랑, 연민, 동정, 후회, 분노, 절망 등을 설명할 방도 역시 없기는 마찬가지다.
보통 이런 영혼의 문제에 기초해서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에서 등장하는 것은 사이코패스다. 그들이 타인의 감정과 공감하지 못하거나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영혼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상상.
소설에서 '겉을 감싼 껍질을 벗겨내면, 사실 똑같이 생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라는 문구가 헛된 희생자의 외침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그런 모두가 가진 영혼을 가지지 못한 사이코패스는, 인류 역사상 가작 소외된 종자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강규호는 불의의 사고로 최근 2년 간의 기억을 잊는다. 회사로 복귀해 일상 생활을 이어가지만 집에서 숨겨진 금고와 누군지 모를 여자의 사진을 발견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생활을 하면서 점점 자신이 그 무엇에도 분노하지 못한다는 이상한 느낌에 빠져든다. 그러던 중 회사에 들어온 차수림과 사랑에 빠지고, 차수림이 연애의 조건을 건 두 가지. 콜라 끊기와 화내지 않기를 지킨다.
행복한 어느 날, 갑자기 차수림이 시체로 발견된다. 실의에 빠진 것도 잠시, 더욱 자신의 기억을 찾기에 박차를 가한다.
자신이 보관하던 사진의 주인공 김미선. 그 김미선의 복수를 하겠다며 자신의 뒤를 밟다 사고로 죽은 김춘석. 금고.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비디오가게 사장과 정신과의사. 모든 힌트를 꿰어낸 강규호는 결국 금고의 문을 열고, 잊고 있던 진정한 자신을 찾아낸다.
결국 자신이 사이코패스이자, 사이코패스에게 딸이 살해당한 제약회사 회장의 불법적인 약물실험 대상이었음을 알게된 강규호는 관련자들을 하나 둘 처리하고, 선과 악의 대립점에서 선의 그림자, 악의 편에 서서 실험에 관계된 자들을 처치할 계획을 세운다.
일단 전체적인 맥락은, 기억을 잃은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를 약물로 치료해서 세상의 악을 없애겠다는 비밀조직의 이야기다.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이 기억을 찾고 복수를 하는 스토리는 보통 흔히 '정의'에 편에 있는 주인공이 정의의 가면을 쓴 악의 집단에 맞서 기억을 찾아 싸우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특장점이랄 것은, 주인공이 악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악인에 맞서는 집단 역시도 최소한의 인권을 무시한 체(솔직히 그런 인간들에게 인권이 있어야하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이지만.) 비윤리적 실험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결국 선과 악의 대립이 메인이 아니라는 것.
물론,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소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는 접할 때마다 늘 새롭긴 하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새로운 이유는 역으로 보면, 이런 시도가 재미도 반감되고, 독자들의 호감도 역시 낮기때문에, 흔히 하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는 독자들에 어떤 카타르시스보다는 근본적이나 철학적인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인데, 정말 간단하고 명료한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읽는 소설에서 이런 소재는 독자의 니즈에 적합하지 못하다.
게다가 작가가 특정 분야, CCTV기술이라든지 무술, 미술이나 여러 서적들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인지 전체 흐름과 크게 상관이 없는 부분임에도 과도하게 디테일한 설명을 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지지부진한 면이 있다. 거기에 스릴러적인 요소가 적고 역동적인 부분도 적어서(주인공의 성향 자체 때문에 드러나기 힘들었긴 했을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속도가 붙질 않아 지루함이 적지 않았다.
엄밀히 이런 오락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니즈는, 다름이 아닌 오로지 흥미와 재미다. 솔직히 선과 악의 모호성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인 질문이나 사상의 표현은 어디까지나 작가 자유의 영역이므로 언급을 자제한다고 치더라도, 과도하게 특정 과학기술이나 상관없는 문학작품의 과도한 인용, 설명 등은 확실히 배제했어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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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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