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잡은 적이 없다
예술의 길.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기술이 성행하는 시대. 오로지 타고난,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육체로만의 예술을 추구하는 서울 시립 발레단.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그건 아마 삐뚤어진 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 소설. 그리고 희망보다는 냉철하고 냉정하리만치 비판적인 내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옥불에도 온기를 느낄 수 있고, 천국의 구름에도 빗방울은 맺히니까. 가끔은 이렇게 손에 잡아본다.
늘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는 발레. 하지만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 등으로 이제 부상의 걱정 없이, 그리고 피땀 섞인 노력 없이 완벽한 공연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하지만 서울시립발레단 단장인 서연조는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며 나노칩 시술을 용인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통해 시술 단원들을 쫓아낸다.
단장의 친구이자 소싯적 최고의 발레리나였던 수연. 최고의 자리에서 친구가 발레 슈즈에 유리조각을 넣어 부상을 입고, 공포감에 다시는 발레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딸인 제나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어느새 꿈의 역할인 지젤의 오디션에 합격한다.
하지만 지젤의 전임자이자 전 수석 발레리나인 송라희가 자살하고, 사실 나노칩 시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장이 인다. 한편, 이상함을 느낀 형사는 송라희의 핸드폰에 제나의 메디컬 기록이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된다. 좁혀오는 수사에 수연과 연조는 말다툼을 벌이고, 이를 엿들은 제나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엄마를 떠나 아빠에게 가버린다.
늘 노력하지만 제나를 따라잡지 못하던 소율. 송라희가 죽기 전 보낸 제나의 메디컬 기록을 사촌 오빠에게 알아봐 달라고 넘기고는 비밀을 알게 된다. 결국 제나가 떠난 자리를 맡게 되고, 제나를 끝내버릴 유혹에 흔들리지만, 언젠가 제나가 이야기했던 엄마의 이야기에 차마 비밀을 폭로하진 못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청소년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성장'이라는 굴레는 상당히 식상하다. 게다가 그 굳건한 목적의식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나 구성에서 늘 약간의 억지를 지니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나올 반응들이 나오면 청소년 소설로써의 자격을 상실해 버릴 위기에 놓이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은, 과연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것이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했고 그것이 불평등한 경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평생의 노력을 내려놓을까.
가끔 드는 생각은, 우리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의 발걸음을 따라잡은 적이 없지 않나라는 걱정이다. 우리가 분명 먼저 이 세상에 나고, 더 긴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늘 아이들의 뒤만 따라다닐까.
우리가 먼저 겪어본 고민들과 고뇌, 숙제와 오답들. 그것들을 왜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제공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할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필요한 것일까. 질투로 친구의 발레슈즈에 유리조각을 넣었지만 성공한 발레단장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죄로 친구의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그 딸을 입단시키고 수석 발레리나를 시켜주는 이야기가 필요한 것일까.
앞선 우리들의 잘못을, 죄를, 뉘우침을 먼저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우리가 이런 교훈을 얻게 되었는지 우리 발에 박힌 유리조각의 흔적은 감추고, 발레 슈즈를 신을 때는 잘 살피라는 충고만 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늘 아이들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과오를 범하게 하는 것 아닐까.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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