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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cent Jan 28. 2021

1장 측정

길이, 시간, 질량

여러분, 이제 본격적으로 1장 ‘측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여러분은 ‘측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는 키나 몸무게, 시력 등등을 측정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측정을 통해 우리의 키, 몸무게, 시력 등등에 어떤 수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내 키는 백 칠십 오 센티미터이고, 몸무게는 육십 킬로그램이고, 또 시력은 마이너스 몇이라는 것입니다. 나이는 과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일까요? 물론 정확한 측정은 어렵지만, 법의학에서는 치아의 마모상태라든가 골격의 상태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측정을 통해 바로 이렇게 자연의 대상들에 대해 정량적인 ‘수’를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언급한 것처럼, 데카르트는 자연에 수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수를 어떻게 부여할까요? 데카르트가 침대 위에서 바라본 벌레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좌우간 이 벌레에게 ‘1’ 또는 ‘2’라는 수를 부여한다면, 또는 ‘10’이라는 수를 부여한다면, 이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데카르트가 깨달은 사실은, 그 수 자체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원점과 ‘좌표’를 도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x-축과 y-축을 부여하고, 날아다니는 벌레에게 x-축 및 y-축에 해당하는 수를 부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1’ 또는 ‘10’이라는 수를 부여하려면, 어떤 ‘단위’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장에 격자 무늬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 격자들을 한 칸, 두 칸 등으로 셀 수 있는 ‘단위’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바로 이것, 즉 기하학적 문제에 대수적인 질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단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래의 두 번째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이라는 책입니다.



이 ‘방법 서설’이라는 책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뒤에 따르는 세 가지 과학 주제에 대한 ‘서론’격의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프랑스어를 읽을 수 있다면,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이라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에서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문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문장도 나옵니다. 아무튼 데카르트는 이 책의 세 번째 주제로 ‘기하학’을 다루었고, 여기에서 그 유명한 ‘해석 기하학’이 시작됩니다. 이 데카르트의 책을 저도 뒤져본 일이 있는데, 이 기하학에서 가장 처음 다루는 내용이 바로 슬라이드 가장 오른쪽에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 선분 ‘AB’와 선분 ‘AD’의 길이 사이의 비율이 선분 ‘BC’ 및 선분 ‘CE’의 길이 사이의 비율과 같습니다. 따라서 선분 ‘AB’의 길이를 ‘단위’로 정하면, 선분 ‘AD’, ‘BC’, ‘CE’의 길이를 정량적으로 정할 수 있고, 이 때 선분 ‘CE’의 길이는 선분 ‘AD’의 길이 곱하기 선분 ‘BC’의 길이가 됩니다. 즉 두 수의 곱을 구하는 과정이 기하학의 작도로 표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는 다른 말로, 기하학의 문제를 이른바 ‘단위 길이’를 정함으로써 대수학의 문제로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단위를 정해야만 우리는 자연에 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수를 부여해야 하나요? 또는 ‘무엇’에 단위가 필요한가요?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에는 아주 다양한 ‘근본적인’ 물리량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물리량 세 가지, 즉, 길이, 시간, 질량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길이는 ‘자’를 가지고 측정합니다. 시간은 ‘시계’를 가지고 측정하고, ‘질량’은 저울을 가지고 측정합니다. 아주 직관적으로 말한다면, 길이는 공간적으로 얼마나 길게 펼쳐져 있는지, 시간은 시간적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질량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과학적인 설명은 아닙니다. 길이, 시간, 질량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게 될 단위는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MKS’ 단위계입니다. ‘M’이라고 하는 것은, 길이의 표준을 ‘미터’로 정한다는 뜻이고, ‘K'라고 하는 것은, 질량의 표준을 ‘킬로그램’으로 한다는 뜻이며, ‘S’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표준을 ‘초’ 또는 ‘세크’로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전류, 온도 등에 대한 단위를 추가해서 확장한 것을 국제 표준인 SI 단위라고 부릅니다. 이번 장에서는 ‘MKS’ 세 가지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봅시다.



먼저, 길이의 표준은 우리가 미터라고 부릅니다. 1790년 프랑스 혁명 정부는 새로운 길이의 단위를 정하고자 했습니다. 지구 자오선의 길이의 사천만분의 일, 또는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의 ‘천만분의 일’을 측정하고, 이 측정한 길이를 토대로 해서 ‘미터 원기’를 만들어서, 길이의 표준을 정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왼쪽 그림이 미터 원기입니다. 그러나 미터 원기라는 물리적인 대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가 될 수도 있고, 온도나 압력에 의해 미세하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기 때문에, 위의 정의 자체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길이를 정의합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따라 진공중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사용해서, 빛이 진공에서 특정 시간동안 이동한 거리를 사용해 길이를 정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길이의 표준은 시간의 표준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의 표준은 우리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시간은 60분이고, 일 분은 60초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1 초’는 하루를 24 x 60 x 60 으로 나눈 것, 즉 하루의 86400 분의 1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하루’라는 것을 어떻게 엄밀하게 정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좀 더 엄밀히 하기 위해, 1956년에는, ‘1 초’를 태양년을 기준으로 정의합니다. 1 태양년, 즉 지구가 태양을 한 번 공전하는 데에는, 대략 365일이 걸리고, 이것을 86400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략’ 365일이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365일보다 조금 더 걸리기 때문에, 우리가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더하고, 100년에 한 번은 윤년을 세지 않고 하는 등의 조잡한 조작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1 초'를 위의 그림에 나온 것처럼 복잡한 수로 정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지구의 공전 주기라는 것도 천체물리학적인 여러 효과에 의해 조금씩 변경될 여지가 생깁니다. 따라서 좀 더 엄밀한 측정을 위해 원자 수준에서의 시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됩니다. 슬라이드에 나온 것처럼, 1967년에는, 절대영도에서 세슘-133 원자의 바닥 상태에 있는 두 개의 초미세에너지 준위의 주파수 차이를 몇몇 헤르츠로 정의하고, 그 역수를 1 초로 정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있는 자세한 숫자는 기억할 필요 없고, 다만 굉장히 정확한 원자 시계를 가지고 일 초를 센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량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1 킬로그램을 ‘물’을 사용해서 정의했습니다. 얼음이 녹는 온도에서 1 세제곱 센티미터의 정육면체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부피의 물의 무게를 '1 그램'으로 하고, 이 '1 그램'의 1000 배를 1 킬로그램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 리터의 물의 부피, 즉 각 변의 길이가 10 센티미터인 정육면체에 물을 채웠을 때의 무게가 바로 1 킬로그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1.5 리터 짜리 물통을 손에 들었다면, 이게 대략 1.5 킬로그램이 되는 것이겠죠. 그러나 물론 얼음이 녹는 온도라는 것은 압력을 비롯한 다양한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1889년, 두 번째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국제표준원기’를 1 킬로그램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의가 2019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근래에 소식을 들으셨다면, 국제도량형총회는, 2019년 5월 20일부터 질량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 가장 큰 이유는, 미터 원기 자체가 마모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질량이 일부 줄어든 것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질량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어떻게 한다는 말일까요? 그에 대한 원리는 바로 ‘자연의 상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 가지 근본적 상수를 이야기해보자면,


첫째, 빛의 속력

둘째, 중력 상수

셋째, 플랑크 상수


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는 빛의 속력은 커 보이고, 중력 상수와 플랑크 상수는 아주 작아 보입니다.



MKS 단위계에서 말하는 차원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아주 유사합니다. 1 미터는 우리의 키와 비슷하고, 1 킬로그램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질량과 비슷하고, 1 초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시간 간격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 생활에 익숙한 ‘단위계’로 자연의 상수들을 적어보면, 빛의 속력은 십의 8승 정도로 큰 수가 되고, 중력 상수는 십의 마이너스 11승, 플랑크 상수는 십의 마이너스 32승 정도로 아주 작은 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력이 아주 커져서 빛의 속력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이지 않는 현상을 우리는 ‘특수상대론적’이라고 부릅니다. 질량이 아주 커져서 중력 상수가 작아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일반상대론적’이라고 부르고, 크기가 아주 작아져서 플랑크 상수가 작아 보이지 않는 현상을 ‘양자역학적’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의 상수들이 이렇게 크게 또는 작게 알려진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친숙한 단위계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자연의 상수들을 ‘정의’함으로써, 길이, 시간, 질량 등의 양들을 정하는 ‘기준’을 세울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우리가 이미 그렇게 해왔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기준을 먼저 정한 다음에, 빛의 속력을 사용해서 길이의 기준을 정의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의 상수들로부터 단위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자연의 상수 세 가지를 조합해서, 세 가지 양들을 정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여러분들이 상수들의 차원을 자세히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간의 차원, 길이의 차원, 질량의 차원을 갖는 조합을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상수가 실제로 변하지 않는 상수라면, 단위계는 바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값들을 기준으로 해서 정의하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빛의 속력, 중력 상수, 플랑크 상수를 모두 ‘1’로 정의하는 단위계를 ‘플랑크 단위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플랑크 단위계로부터 ‘상대적으로’ 단위계를 전환을 시키면, 시간, 길이, 질량 등을 ‘원기’나 그 밖의 모호한 기준을 사용하는 것 없이 엄밀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통해 2019년 질량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도입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플랑크 상수를 특정한 값이 되도록 1 킬로그램을 정의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질량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제 질량 원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엄밀한 질량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동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왜 이제 와서야 플랑크 상수를 사용해서 질량을 정의하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왜 시간은 ‘세슘 원자’를 사용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정의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혹시 플랑크 단위계를 사용해서 시간까지도 정의해버리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답을 하자면, 사실 자연의 상수들이 ‘진짜’ 상수인지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는 특수상대론과 양자역학의 발전에 의해, 적어도 빛의 속력과 플랑크 상수는 ‘진짜’ 상수임에 틀림없다는 것에 대해 큰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력 상수에 대해서는 조금 다릅니다. 현재까지 중력 상수가 상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실험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력 상수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완벽히 확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오른쪽에 보시는 두 사람은 각각 브란스와 디케라는 이론물리학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브란스-디케 이론이라는 이론으로 확장시켰는데, 이 이론에서는 중력 상수가 변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이게 가능하다면, 중력 상수를 사용해서 자연의 단위를 정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해져야만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향후 천체물리학이나 우주론이 더 발전하게 되어 중력 상수가 진짜 상수라는 것이 좀 더 엄밀하게 확립된다면, 시간에 대한 정의조차 바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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