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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Sep 04. 2020

엄마에게







엄마에게,





엄마는 똑똑해. 한때 선생님을 꿈꾸는 모범생이었던 엄마는 그 시대 여느 여자들이 겪었던 문제로 인해 곧바로 취업을 해야 했지. 그렇지만 나를 낳고서는 다시금 스탠드를 켰다고 했어. 퇴근 후 나를 재우고서 다시금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우리가 아주 어릴 땐 학원에 보낼만한 여력이 없었거든. 그렇게 엄마는 초등학교 내내 나의 선생님이었어.


엄마가 똑똑하다는 소문이 어떻게 퍼졌을까. 우리 집으로 엄마에게 공부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생겼어. 당시 엄마는 주말마다 돈도 받지 않고선 형편이 어려웠던 내 친구들의 공부까지 봐주었지. 우리도 지독하게 어려웠을 때였는데, 곱씹을수록 당시 엄마의 결정에 무한한 존경이 들어. 그리고 사실 그땐 어른들은 다 똑똑한 줄 알았어. 그냥 어른이 되면 누구나 척척박사가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 들어 나와 동생의 코골이가 울려 퍼지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을 엄마의 뒷모습이 보여.


와중에 엄마는 퇴근하고선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까지 모조리 취득했지. 그리고선 끝내 학교 앞에 엄마의 이름을 건 작은 컴퓨터 학원을 차리게 됐어. 아직도 엄마의 손을 잡고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던 때가 생생해. 난 옆에서 테이프를 떼어주고 엄마는 붙이고. 이런다고 학생들이 올까란 생각으로 시작한 텅 빈 학원은 금세 많은 아이들로 가득해졌어. 반에서 엄마의 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한 두 명은 꼭 있었으니. 친구들과 함께 하교를 하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엄마의 학원을 가리키며 말했어. "저기 얘네 엄마 학원인데 짱 재밌어."


엄마. 엄마는 늘 내 자랑이었고 우상이었어.


엄마는 따뜻해. 20살, 첫사랑에 실패하고 1시간을 울며 걸어 집에 들어온 날 엄마는 말없이 날 안아주었어. 그리고선 결국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어. 아프다며 우는 나를 보며, 내가 아픈 것에 더 아파했거든. 나를 안아주며 우리에게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많은 것을 쓸어가며 흘러간다는, 그때 엄마의 말은 여전히 내게 큰 위로로 남아있어.


엄마가 24살이 되던 때,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고 했지. 24살이면 나보다 어린 나이인데. 난 지금도 감히 엄마가 없는 삶을 상상도 못 하는데, 얼마나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까.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줄곧 나와의 시간을 행복하게 여기는 듯했어. 아니 사실 어쩌면 내 행복을 더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지. 당신 엄마의 삶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 후회가 남는다던 엄마는, 나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 그래서인지 유독 다른 친구들보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주말이면 습관처럼 엄마와 데이트를 했어. '엄마'와의 추억이 적어 죄스럽고 슬펐던 엄마가, 내게는 그 아픔을 남겨주지 않으려는 따뜻하고 깊은 마음인 거 알고 있었어.


엄마의 사랑은 늘 한결같고 컸는데, 나는 결국 별다를 것 없는 못된 딸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난 늘 엄마와 좋은 추억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보다 더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준 상처는 나만 잊었던 거지. 그런 오만한 생각에 엄마의 상처는 나만 보지 못했던 거지. 엄마의 손과 품은 늘 내게 큰 그늘막이었는데. 난 언제쯤 엄마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부단히 노력할게. 어쩌면 다른 친구들보다 늦을 지도, 매일  울며 불안에 떨지도 몰라. 그렇지만 우리의 코골이를 들으며 홀로 공부했던 엄마를 생각하며 이 긴 터널 끝까지 걸어 나갈게. 엄마에게 알게 모르게 주었던 상처가 전부 아물진 않겠지만, 엄마가 내게 해줬던 말처럼 좋은 시간  상처쓸어가도록 해줄게.



엄마 앞에서 감히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부끄럽지만, 나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해요.






- 엄마 딸, 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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