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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Jan 24. 2023

공부 쉬고 다녀온 봉사 활동

[100-24] 백일백장 글쓰기 9기


너에게 두 손이 있는 이유는 너와 타인을 돕기 위해서이다.
-오드리 헵번


오늘은 바오로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몽골로 봉사 간 이야기를 하겠다.


그 시절만 해도 과고나 특목고 자사고를 가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많은 과외를 하고 내신은 무조건 퍼펙트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광명에 있는 고등학교를 갈 생각이어서 내신관리도 많은 선행도 하지 않았는데 바오로는 암기를 좀 잘하고 영어를 좋아한 덕에 좋은 내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오로가 중3이 되었을 때 특목고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담임 선생님이 외고나 국제고 갈 영어 내신이 되니 한번 도전해 보라고 추천해 주셔서 중3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부랴부랴 준비를 하였다. 다른 아이들 몇 년씩 준비하는 것을 우리는 몇 달 만에 한 것이다.


학교 선택이 고민이 되었다. A 외고는 밤 11시 12시까지 야간자습을 시킨다 그러고, 다른 외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빡센 곳에서 생활하면 스트레스가 가득할 것 같아서 선택을 못하고 있었다.


마침 영어 선생님이 고양과 동탄에 새로 국제 고등학교가 개교한다고 말해주셨다. 외고처럼 외국어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글로벌 인재 양성을 하는 곳이며, 경기도 교육청이 야심 차게 설립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두 학교의 입시설명회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두 교장선생님의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동탄으로 결정했다.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들과 나의 선택이 좋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교육관과 이 학교는 잘 맞았던 것이다. 동탄국제고의 이야기는 더 나중에 따로 해드리겠다.


즐거운 고등학교 생활이었지만 역시나 놀기 좋아하는 아들은 방학 때마다 왜 방학이 없고 자습을 하냐고 투덜투덜 거렸다. 2학년 초입에 이번 여름방학에도 또 학교에 갇혀 있어야 하냐고 푸념이 늘어졌다.

학교에서는 방학 때 부득이한 경우 아니면 자습을 빼주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나 대략난감이었다.


그때 성당에서 어떤 자매님이 살레시오 회에서 하는 청소년 국제 봉사를 말씀해 주셨다.

자기 조카 중에 이 활동을 하고 온 후 많이 성숙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엄마 마음에 솔깃해졌다.

고2 여름방학에 하기 싫은 공부 한다고 책상에 앉아있어봤자... 머 그리 대단하게 많이 공부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뇌에 엔도르핀 팍팍 돌게 노는 게 낫다는 게 엄마 생각이었다.


아들과 상의해 보니 본인도 흔쾌히 가겠다고 해서 여름에 몽골로 가는 봉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난관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단 한 명도 방학 자습을 빼주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찌어찌 사정을 해서 그해 여름방학에 아들은 봉사 허가를 받고 몽골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울란바토르 공항



해외 봉사를 가는 학생들을 보면 럭셔리 봉사를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살레시오회에서 주관하는 봉사라 그런지 소박하고 검소한 품격이 달랐다. 모든 필요 물품과 본인 먹을거리를 다 가지고 와야 되었고, 현장에서도 조를 짜서 직접 밥을 다 해먹어야 했었다. 빨래도 당연히 스스로 해야했었다. 이번 기회에 아들이 제대로 고생하고 오지 싶었다.


봉사 활동은 교육봉사와 농사짓기 집짓기 등을 돕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밭매고 흙 나르고 곡식 심기를 했으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별로 밥도 해 먹어야 했으니 정신없이 열흘 이상을 보냈다고 말했다.







집 짓기와 교육봉사 중 몽골 학생과 한 컷



마지막 하루 이틀은 그래도 몽골 여행을 아주 짧게 했었다. 드넓은 몽골 초원에서 말도 타고, 쏟아내리는 별을 보며 국립공원에서 캠핑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때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아들이 종종 말하곤 한다.


드넓은 몽골 초원과 끝없는 유채밭



공부하기 싫어서 갔었던 봉사였지만, 이 봉사에서 아들은 훌쩍 커서 왔다. 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는 것을 배우고 왔으니 말이다. 직접 밥해 먹고 집 짓고 농사지어 보니 얼마나 고된 일인지 체감하였던 것이다. 그 후 아들은 그전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졸업 때까지 방학 때 야간자습 빼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봉사 다녀온 이후 고2와 고3 때 내신은 더 훌륭하게 잘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주 가까이 책 한 자 안 보고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다 왔지만, 그렇게 한 번씩 완전 다른 일을 함으로 뇌세포가 더 건강해져서 다녀온 이후 더 학업성취도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 성인들도 늘 하는 일이 너무너무 하기 싫고 다 떠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 우리는 휴가를 다녀오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취미생활을 하면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성인 보다 인내심이 약한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몇 년간 놀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책상에만 앉아 있으라는 것은 정말 가혹한 형벌이다.


나는 두 아이의 성적이 낮게 나오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숨통 튀면서 살게 하려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집고 나의 아이들은 오히려 공부를 더 잘해주었다. 마음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는데 선물로 좋은 성적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 중에 공부하기 싫고 게임에만 빠져있는 아이들 평창 마을로 보내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그러면 거기서 몇 달 노동을 하면 아이들이 정말 달라진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황 신부님의 말씀에 완전히 공감한다. 해외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깝게 평창 마을로 아이들 봉사 보내길 권해본다. 분명 우리 아이들이 달라져 올 것이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체크해 보시길 바란다. 정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잘 살아가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다음 방학 때는 봉사활동으로 꽉 채워보시길 부탁드린다. 그럼 아이들의 마음이 더 훌쩍 자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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