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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Feb 01. 2023

벼락을 맞았습니다 :: 중재(중보) 기도의 힘

[100-32] 백일백장 글쓰기 9기


중재 기도 仲裁祈禱
가톨릭 하느님과 신자 사이의 중재를 바라는 기도.
중보기도 仲保祈禱
흔히 교회에서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중보기도'란 표현을 쉽게 사용한다. 여기서 '중보'란 적대적 관계나 시시비비가 있는 양자 사이에서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는 일을 말하는데(사 38:14),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고 화평을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용되었다.


가톨릭 신앙 서적을 초신자 때는 꽤 많이 읽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책을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벼락을 맞았습니다'를 말하겠다.

이 책은 콜롬비아의 치과의사인 글로리아 폴로 오르티츠 박사가 1995년 조카와 함께 벼락을 맞고 조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본인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뒤에 그때 체험한 '임사체험'에 대해 적은 책이다.





주옥같은 내용이 많아서 초신자 분들이 필독하면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책의 모든 내용이 좋지만 특히 마지막 부분 중재기도(중보기도) 부분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겠다.


중재 기도의 위력


"네가 지상으로 되돌아가는 은총을 받은 것은 네 가족이나 친구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네 가족이나 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너를 위해 기도하며 내게 애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 혈육이 아닌 사람들, 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많은 기도 덕분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네가 전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심장이 끊어질 정도로 애절하게 울면서 영혼 깊이 내게 기도했고, 너를 위한 크나큰 사랑과 연민의 감정으로 그들의 마음을 내게 드높이 올렸기 때문이다."


p183



책에서 중재기도를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꽃 중 유난히 빛나는 불꽃이 있어서 글로리아 박사가 주님께 저 불꽃은 누가 해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주님은 그 사람은 박사와 전혀 상관없고 일면식도 없는 인디언 혈통의 농부였고 가난과 고난이 많았지만 항상 하느님에게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먹을 것이 없어도 헌금을 더 많이 하고 남는 돈으로 최소한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글자도 모르고 가난한 사람인데 구입한 빵을 포장한 신문지에 숯처럼 검게 된 박사의 사진을 보고 애절하게 기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숯에 탄 사진의 사람이 나으면 긴 거리의 성지순례를 하겠다고 주님께 약속했다. 박사가 나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골 인디언 농부 덕분이며, 주님께서 '자, 보아라. 이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말씀하셨다.


중재(중보) 기도에 대해 이보다 더 상세한 설명이 있을까 싶다.


처음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나와 우리 가족들을 위한 중재(중보) 기도를 해달라고 청하는 게 염치가 없는 행동 같았다. 나도 그다지 기도를 잘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넙죽넙죽 부탁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이익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는 것도 왠지 속물처럼 느껴져 부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딸 마리아가 초등 복사단을 하게 되면서 복사단 자모회 어머니들과 같이 초등 복사단 생활 잘하게 같이 기도하고, 복사단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기도의 힘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고3이 되었을 때 수험생 100일 기도를 같이하면서도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위한 기도도 같이 하게 되었다. 함께하는 기도를 통해 기도의 힘을 느꼈고, 입시의 당락과 상관없이 함께 100일간 기도한 어머니들은 모두 마음을 평화롭게 가질 수 있었다.


잠시 레지오 활동을 할 때도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의 장례미사에 가서 연도기도를 하면서, 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대구 월배 성당 분들이 일면식도 없었는데 오셔서 3일간 내내 연도와 장례미사 보살펴 주신 것도 기억이 났다. 그때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을 열심히 시간이 되면 연도와 장례미사를 참석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삶에서 사소한 작은 어려움이 생겨도 친한 지인들에게 나 위해 이거 기도 부탁해요라며 초신자때 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에게 중재(중보)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나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혹 환자분들 중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진료전 나의 한의원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분들 차 한의원을 위해 짧게라도 기도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무척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하나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벼락을 맞았습니다'를 읽으면서 중재(중보) 기도의 힘을 믿으며, 나의 기도를 부탁도 드리지만 그 못지않게 타인을 위한 기도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기도는 결국 기도하는 자신에게 가장 많이 복이 돌아오는 게 분명하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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