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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Aug 28. 2021

우리 아이는 왜 노력을 안 할까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6 년, 한의대 입학하고 4 년, 합해서 10 년간 과외로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만났던 아이들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어머님들의 생각은 같았다.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과외 첫날 어머님들이 나를 붙잡고 하시는 첫 대사다. 어느 집을 가던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다. ‘뭐지, 이 데자뷔는?”, “지난번 집이랑 아는

사이는 아니겠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다음 대사가 코스요리처럼

줄줄이 따라 나온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도맡아 했는데, 지금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공부를 하기만 하면 잘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이 우리 아이 성적 좀 올려주세요.”


“네, 어머니~ 우선 테스트 한번 해볼게요.”


 내 자식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거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머리가

좋더라도 노력을 안 하면 성적은 안 나온다.


 우리나라 운동선수 특히 축구선수 중에 청소년기에 천재적인 재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다가 사라져 버린 선수들이 많다.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뽑히고 매스컴에서

축구신동으로 소개돼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받다보니 자만해지고 게을러져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릴 적 머리가 좋아서 신동 소리 듣는 아이들이 있다. 공부머리를 타고나서

초등학교 때까지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중학교 이후로 성적이 떨어지고 평범한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 걸까?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들은 본인이 언제든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에 나오는 토끼처럼 행동한다. 충분히 쉬고 놀고 자고 남은 시간에 공부에

집중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본인들이 마치 아인슈타인인 양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인슈타인이라도 그렇게 공부하면 sky 는 커녕 인서울도 못 간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 친구한테는 저보다 더 나은 선생님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 달간 가르쳐보면 답이 나온다. 머리만 믿고 노력을 안 하는 아이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된다. 혼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여러 번 큰 소리를 내고 나면 힘만 빠지고 서로 관계만

나빠진다. 이럴 땐 빨리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거북이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아이들이 결과가 잘 나온다. 평균 정도의 머리만 가지고 있어도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릴 때

공부머리가 없다고 걱정하던 아이들이 나중에 상위권 성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타고난

머리가 없으니 노력으로 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것이다.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메타인지란 나의 수준을 스스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내가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명확하게 알고 있을수록 메타인지가 높다고 표현한다.

메타인지는 IQ 보다 상위레벨의 인지능력으로 최근 실험에서 공부나 성공에 관여도가

IQ 보다 훨씬 크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몇 년전 교육방송에 메타인지 실험을 한 내용이 나왔다. 상위 0.1%에 속하는 아이들과

평범한 아이들을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두 그룹 모두 IQ 는 비슷했고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도 별 차이가 없었다. 무작위로 단어를 보여주고 기억력을 테스트했는데 두 그룹 모두

기억하는 단어의 갯수는 비슷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놀라운 차이점은 상위 0.1%에 속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단어가 몇 개인지 정확하게 맞췄다는 점이다. 즉, 상위 0.1%는

자기 수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가 높았다.


 메타인지가 높은 아이들은 시험의 답을 맞추기 전에 이미 본인이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알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공부한다. 아는 부분을 다시 보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다. 반면

메타인지가 낮은 아이들은 본인이 어디가 약한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아는 부분을 다시 보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메타인지의 차이에 따라 같은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그 효율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메타인지가 높은 아이들만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어떤가. 상위

0.1%가 아니라면 공부머리가 그리 좋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한테 머리가

좋다고 말하니 아이는 본인이 머리가 좋은 걸로 착각을 한다. 그렇기에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다는 허황된 말을 내뱉는다.


 IQ 가 높다고 대학에 뽑히지 않고, 머리가 좋다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 결과를 본다. 따라서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점수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점수를 높이는 건 노력밖에 없다. 머리가 좋다고

점수가 저절로 올라가지 않으니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력도 조금 힘든 정도로는 부족하다. 몸이 못 따라갈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노력을 한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훈련하고 탈진해서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수백 번 포기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스포츠 선수들은 훈련을 하면서 늘 부상을 달고 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통을 인내하며 포기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선 사람이 영광의 자리에

앉는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백 번 들어야 한다. 피곤해서

잠이 쏟아져야 하고, 허리랑 어깨가 아파야 한다.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파야

한다. 이런 증상은 체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 나타나고,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할 때 나타난다.

물론 이런 상태로 공부를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건 안다. 하지만 이 만큼은 해야한다는 뜻이다.

힘들까 무서워 노력의 수위를 조절하지는 말자. 체력저하나 질병은 치료를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50 만명 중 500 명 안에 들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는 머리가 좋다’는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아이한테도 절대로 머리가 좋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주면

안된다. 그것이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아이가 머리에 의지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변하기 시작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엄마와 아이가 환상에서 벗어났고 노력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바로 노력을 뒷받침할 건강과 체력이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보충하고, 병이 있다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동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노력하는 아이에게 진료실에서 내가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넌 공부만 신경써라. 건강과 체력은 내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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