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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Sep 10. 2021

총명탕은 효과없다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원장님, 총명탕 먹으면 진짜 총명해지나요?”


(대략 난감…)


“음, 먼저 진찰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한의사이기 때문에 늘상 받는 질문이지만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렵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이름이 총명탕이니 총명해질 것 같긴한데 총명탕을 먹으면 과연 우리 아이가 총명해질지 궁금해 한다. 실제로도 총명탕을 먹고 총명해진 아이가 있는 반면,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지금부터 총명탕을 심도있게 분석해보자.


동의보감에 보면 총명탕이 나온다. 

‘자주 잊어버리는 것을 치료하는데, 오래 먹으면 하루에 천 마디 말을 외울 수 있다. 백복신, 원지(감초 달인 물에 담갔다가 가운데 심지를 빼내고 생강즙으로 법제한 것), 석창포 각각 같은 양. 위의 약들을 썰어 서 돈씩 물에 달여 먹거나, 가루내어 두 돈씩 찻물에 타서 하루에 3번 먹는다.’


 와~자주 잊어버리는 것을 치료하는데 오래 먹으면 하루에 천 마디 말을 외울 수 있단다. 시험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딱인 약이다. 가뜩이나 안 외워져서 고민인 아이들한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어떤 원리로 총명하게 되는 걸까? 약재도 달랑 3가지밖에 안들어가는데 말이다. 


 몇 년 전 TED에서 정말 흥미로운 강의가 있었다. TED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나와서 그들이 발견한 지식을 나누고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사이트다. 다양한 주제로 훌륭한 강의가 매주 쏟아지는데 그 중 수면에 관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이 매일 하루의  1/3이라는 시간을 잠을 자는데 쓰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연구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 낮 동안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다. 수면에 좀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뇌가 낮에 보고 들은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저장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강의를 보니 옛날 사람들도 수면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보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인 갈레노스는 낮 동안에는 뇌에서 액체가 빠져나와 몸으로 이동하고 밤이 되면 몸에 있던 액체가 뇌로 들어간다고 보았으며, 한의학의 고서인 영추에서는 낮 동안에 기운이 인체의 표면에 있는 경맥으로 흐르다가 자는 동안 내부에 있는 경맥으로 모여 든다고 보았다. 


 TED강의에서 강사는 뇌신경을 연구하는 과학자인데 수면 중 뇌속에 있는 뇌척수액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뇌척수액은 두개골안에서 뇌를 둘러싸고 있는 액체인데 뇌를 감싸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자는 동안 뇌척수액이 뇌세포 사이사이로 흘러 들어와서 낮동안 뇌활동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을 청소한다는 것이다. 


 주중에는 바빠서 집안청소를 미루다가 주말에 쉴때 몰아서 하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 뇌도 낮동안에는 바빠서 청소할 엄두를 못내다가 밤에 자는동안 청소를 한다는 것인데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뇌 청소기능이 제대로 안되면 뇌활동의 부산물인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이 뇌신경세포에 비정상적으로 쌓이게 되고 그 무서운 치매가 발생한다. 한달만 청소를 안해도 집안이 엉망이 되는 것처럼 우리 뇌도 청소가 안되면 정신이 흐리멍텅해지고 기억력은 엉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뇌에 쌓인 이런 부산물을 청소해주는 한약재가 바로 원지, 석창포, 백복신이다. 동의보감에 나온 총명탕이 머리를 맑게해주고 집중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는 원리가 이것이다. 따라서, 우리 아이가 공부하느라 잠을 계속 못자서 뇌에 부산물이 많이 쌓인 상태라면 총명탕이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총명탕이 효과가 없는 경우는 왜 그런걸까?


 TED강의에서도 나왔지만 뇌청소는 ‘자는’ 동안 일어난다. 일단 밤에 잠을 충분히 자야한다. 청소할 시간이 있어야 청소를 구석구석 깨끗하게 할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면 아무리 총명탕이라는 좋은 청소기가 있어도 뇌에 찌꺼기가 쌓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면증이 있다거나 꿈을 많이 꾸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에는 총명탕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런 경우는 잠을 깊게 자게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수면제나 수면유도제를 써서 억지로 재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푹 자고나야 정상적인 뇌청소가 이뤄지는데 화학약물을 통해 강제로 뇌활동을 둔화시키면 청소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약이 독하면 낮에도 잠에 취한 듯 멍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피해야한다.  


 흔히 잠이 안오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번째로 근심걱정이나 생각이 너무 많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생각이 많으면 뇌는 계속 활동하게 된다. 뇌가 활동을 멈춰야 잠을 잘 수 있는데 말이다. 


 두번째로 생활패턴의 문제로 인해 잠이 안오는 경우가 많다. 밤 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본다거나, 낮잠을 많이 잔다거나, 커피나 고카페인 음료를 즐겨마신다거나, 밤에 야식을 푸짐하게 먹는다거나 하면 잠을 들기가 힘들고 깊이 잘 수가 없다.


 세번째로 아파서 그런 경우가 있다. 비염이 있어서 재채기와 콧물이 줄줄 나온다거나, 천식이 있어서 숨쉬기가 불편하다거나, 이상하게 배가 살살 아파서 밤에 깨는 경우가 있다. 아토피나 두드러기가 있어 가려워서 깊이 못자는 경우도 있고, 목이나 어깨, 허리 등이 결리고 아파서 뒤척이다 잠을 잘 못자는 경우도 있다. 


 총명탕을 먹이기 전에 우리 아이가 잠을 잘 자는지 확인해보자. 잠을 잘 자는 상태에서 총명탕을 먹인다면 훨씬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총명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뇌로 가는 영양공급이다. 수험생은 그 누구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하기 때문에 뇌세포에 끊임없이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에너지는 음식을 통해 공급된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면 위장이 소화를 시켜 음식에 들어있는 영양분을 흡수하고, 간은 위장에 통해 흡수된 영양분을 저장한다. 심장은 영양이 풍부한 혈액을 뇌로 보내준다. 


 위장을 비롯한 모든 내장기관이 제 역할을 잘 해야 뇌활동에 필요한 연료가 계속해서 공급되고 그래야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 내장기관 중 어느 하나만 고장이 나도 뇌 효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뇌세포에서 쓰고 버린 노폐물을 청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 습관을 잡아주고 몸 속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 어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된다. 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모든 과정이 톱니바퀴 물리듯 딱딱 맞아들어가야 한다. 


 총명탕이 진짜 총명탕의 역할을 하려면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한 약재가 추가되어야 한다. 종합적인 검사와 진찰을 통해 집중력이 떨어진 진짜 원인과 체질을 고려하여 우리 아이한테 맞춤으로 처방할 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성적이 잘 나오려면 모든 과목을 두루 잘 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한 과목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평균점수를 높일 수 있다. 총명탕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두뇌의 집중력을 높이고 싶다면 내 몸에서 약한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


 총명탕은 효과가 있다.

 단, 내 몸에 꼭 필요한 약재가 추가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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