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마스크 관련 문화와 발언 및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
2020년 9월 1일 현재 미국 내 코로나 19 감염자 수는 6백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수는 18만 명이 넘었다. 이는 마치 서울시 인구의 2/3가 코로나 19에 감염된 것과 같은 규모이다. 숫자상으로 코로나 19가 미국인들에게 위협과 위기의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전파 차단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결론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 곳곳에서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격한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도 그렇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는 이유로 담당 공무원의 집에 찾아가 살인 협박을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바로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최고 의료 책임자 (Chief Health Officer) Dr. Nichole Quick (이하 "Dr. Quick)의 이야기이다. 지난 5월 Dr. Quick은 식당, 가게 등이 영업을 다시 시작함에 따라 대면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반대 집단의 협박으로 2주 만에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주 전체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 시 경범죄로 처벌하거나 벌금을 부가하겠다고 함으로써 마스크 착용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미국 일부 주에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 이와 같은 법이 생기게 된 배경은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활동한 Ku Klux Klan (약칭 "KKK")이라는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가 사용한 하얀색 복장을 금지하고자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시작하여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남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KKK는 흑인, 유대인, 신규 이민자 등을 미국에서 추방하여 미국을 정화(purification) 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각종 사회문제 및 범죄를 일으켰다. KKK에 가입비를 내면 KKK의 상징이기도 한 위 사진 속의 하얀색 복장을 지급하여 회원들은 그 집회 등에 그 복장을 착용하도록 했다. 가입 및 행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KKK의 특성상 회원들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도록 디자인된 복장이었다.
KKK의 방화, 약탈, 강간, 심지어 살인 등의 범죄 및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자 미국 정부는 KKK의 활동을 일종의 테러리즘으로 간주하였고 이를 금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공개된 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법(Anti-Mask Law)을 제정한 것이다. 한 예로, 뉴욕주에서는 공개된 장소에서 2명 이상의 사람이 집회에서 자신들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버지니아주의 법에 의하면 16세 이상의 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면 5년 미만의 징역 또는 2,500불 미만의 벌금 대상이 된다. 이는 경범죄(misdemeanor)도 아닌 중범죄(felony)이다. 하지만 이 마스크 금지법은 미국 내에서 계속적인 논쟁의 대상이었다. 마스크 금지법은 미국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 즉 발언 및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를 제한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마스크 금지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외국인인 필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법의 존재를 알기 이전에도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쓰기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 금지법이 존재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줄은 몰랐다. 미국인들은 마스크는 전염 가능성이 있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쓰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코로나 19 사태 이전에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가면 내 앞에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피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마스크는 건강한 사람이 전염병에 옮지 않기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병을 옮기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프지 않다면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를 마스크 금지법이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미국의 문화에서 답의 일부를 찾는다. 아프지 않음에도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 것이 그들이 평생 동안 가져왔던 마스크에 대한 인식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는 무증상 상태에서의 전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자기가 평생 가져왔던 생각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당하면 누구나 거부감을 갖는다. 이런 측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거부감을 조금은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는 세력을 지지한다거나 마스크 착용에 반대한다는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시기를. 저는 무려 한국산 KF94 마스크를 지나치게 열심히 쓰고 다니고 있습니다.)
발언 및 표현의 자유는 미국 헌법(The First Amendment)에 의해 보호받는 기본권이며 많은 주 또는 연방 차원의 법을 통해 강하게 보호받는 "소중한" 권리이다. 영국의 권리 장전(Bill of Rights)에도 명시된 이 권리는 각 개인이 그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는 민주주의 토석이 되기에 가장 강한 수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제한, 방해, 검열 없이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비언어적 행동(symbolic speech 또는 speech acts)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서 처럼 시민들이 거리에서 같은 마스크를 쓰고 행진하는 행위, 상반신을 탈의한 상태에서 시위행진을 하는 행위, 집회 중 국기를 불태우는 행위, 심지어 특정 컴퓨터 코드도 보호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반대하는 집단도 그리고 마스크 금지법을 반대하는 집단도 둘 다 바로 이 발언 및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한 주장을 한다. 두 집단 모두 발언 및 표현의 자유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착용하지 않고 할 자유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의 신체와 관련하여 독립적인 결정을 할 권리(personal autonomy)에 근거하여 정부는 마스크 착용 또는 미착용을 강제화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주장한다 "My body, my choice"라고.
최근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는 집단들은 그 마스크 착용을 강제화하는 법이 위법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와 유사한 소송이 과거에도 있었다. KKK 때문에 제정된 마스크 금지법이 KKK 회원들의 발언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위법하다는 소송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거 소송에서 마스크 금지법이 KKK 회원들의 발언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행위 자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KKK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위협을 가하는 행위이며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마스크 착용 그 자체는 발언 및 표현의 자유에서 보호하는 행위가 아니므로 정부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마스크 착용이 그들의 발언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가.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수의 법조계 의견이다. KKK 마스크 금지법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스크 착용 그 자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보호받는 비언어적 행동에 포함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 함에 따라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이 구체적이고 중대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발언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법적으로 그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지침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약하기 때문에 정부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정책에 적극 응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개인과 정부의 관계가 상하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정부는 권력과 권한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개인과 정부의 관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소위 "갑을 관계"라고 하는, 내가 하는 지시에 상대방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문화가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즉, 누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미국인들은 생각한다. 결국 미국 정부 차원에서 마스크의 효과에 대해서 비용을 지급하면서까지 광고를 하고 제발 마스크 착용을 하라고 공무원들이 구걸(beg)하는 모양새마저 보이기까지 하는 등 미국인들의 이성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 보더라도 정부의 권한이 크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 19 전파를 차단하며 나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착용을 할지 말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정부의 "의견"일뿐.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미국인들에게 광고와 구걸로 독려할지언정 그 권력이나 권한으로 그 의지에 반하여 강제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치 백신이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음이 검증되었더라도 예방주사를 맞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예방주사를 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지 않기로 한 개인들의 그 최종 결정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강제적으로 마스크를 씌울 방법은 없다. 벌금 또는 징역을 부가할 수는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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