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보내는 감사 편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신기했던 것은 엄마가 꽃과 식물을 좋아하시고 잘 가꾸신다는 거였다. 네 명을 자식들을 너무나 건강하고 밝게 잘 길러내신 것처럼 엄마의 손이 닿는 식물들은 싱싱하게 자라고 흐드러질 정도로 꽃이 만발을 했다. 지금도 부모님 댁은 거의 식물원이 되다시피 식물들이 생기 가득 파릇한 잎들과 함께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언젠가 엄마께 질문을 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는 꽃이 뭐예요?'
'응, 엄마는 프리지아가 좋더라!'
프리지아는 섬세하고 꽃잎이 많아 창틀 위의 작은 화분에 심거나 앞 정원에 많이 심는다. 줄기에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달린 꽃 모양으로 인해 '발레리나'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영국에서도 인기 있는 꽃이다.
프리지아 꽃말도 프리지아의 다양한 색상 만큼 그 뜻도 차이가 있다.
노란색은 '천진난만, 자기 자랑, 무언가를 청함'이라는 뜻이다. 흰색은 '우정, 순진함, 사려 깊음, 인내'의 뜻으로 결혼식에 자주 사용된다. 신부와 신랑 사이의 신뢰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첫사랑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분홍색은 '여성스러움 및 사랑'을, 빨간색은 '사랑과 열정', 보라색은 '왕족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프리지어 꽃을 부부의 7 주년을 기념하는 공식 꽃으로 지정을 했다.
'7주년 부부'를 기념하는 꽃이라 하니!
그 뜻을 알고 나니 프리지아는 엄마 아빠의 부부로서의 모습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아빠의 많은 부분을 보고 배우지만 그 어느 부모님들보다 월등히 모범이 되어주시는 건 바로 '바람직하게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엄마 아빠보다 더 서로를 위하고 행복하게 사시는 어른분들을 뵙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사시는 모습, 서로를 아끼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부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배운다. 서로에게 덫을 씌우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과 여유를 주시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서로를 믿는 깊은 신뢰를 갖고 계신 모습이 얼마나 좋던지. 오랜 시간을 함께하시며 쌓으신 다정하고 상냥한 우정, 서로를 존중하시며 사랑하시며 사시는 모습을 보니 내결혼 생활에 대한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주신다. 결혼생활, 육아의 실전 멘토님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핀란드 남편과 결혼하고 신혼 초반에 티격태격 싸움을 할 때 아낌없이 도움이 되는 좋은 조언을 해주셨을 때, 처음으로 아이를 낳았을 때 핀란드에 한 달 동안 오셔서 돌봐주시고 옆에 계셔주셨을 때,
첫 양육을 하며 피곤함에 지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데 얼마나 큰 보탬이 되어 주셨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부모님들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거다. 그저 나 스스로가 무엇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조언 중 하나는 '세모와 네모의 이야기'다.
5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지만 신혼초기 별일도 아닌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자주 하던 시기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너는 세모고, 네 남편은 네모라고 생각해 보렴.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가 난 부분을 가지고 있어.
하물며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만난 너희들은 어떻겠니?
훨씬 더 삐쭉 빼죽할 거다.
부부가 되면 서로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을 해야 하는데
의도치 않게 서로를 찌를 때가 많단다.
그때마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고
조금만 더 이해를 해줄 수 있다면 그 뾰족한 모서리가 마모되기 시작해.
서로에게 시간과 여유를 좀 주고 기다려주면
그 모서리가 무뎌지면서 공모양이 될 수 있단다.
원이 되면 그제야 서로 부드럽게 함께 굴러갈 수 있단다.
지금은 뾰족한 모서리가 무뎌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렴.'
아이를 낳았을 때도 많이 서툴고 허둥댔지만 엄마가 옆에 계셔서 훨씬 수월했다. 남편에게 못마땅한 일이 있더라도 남편도 아빠가 되는 게 처음이니까, 나도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이니까 허투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아이가 있어도,
아이보다 짝꿍이 더 먼저다!
아이를 낳으면 대부분은 아이에게 몰입을 하고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보다 짝꿍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그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의미인지를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도 나도 결국 아이에게 매몰되어 서로에게 소원해져 가는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더 또렷이 육아와 부부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발견은 육아와 결혼 생활의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육아도 부부로서의 생활도 식물을 키우듯이, 꽃을 피우듯이, 적당한 물과 빛을 제공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피어나는 시기와 성장의 속도가 다르기에 다그친다고 빨리 자랄 수 있는 게 아니고, 물을 더 많이 준다고 쑥쑥 자라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우쳤다. 그저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적정 환경을 잘 만들어주고 관찰할 뿐,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인내와 믿음이 항상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어떻게 그 말들을 지키는지 실제로 본보기로 보여주시며 사신다.
"엄마! 엄마는 하얀 프리지아 꽃 같아요."
우리 엄마는 사려 깊게 사람들을 배려해 주시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신다. 아빠의 잦은 출장에도 엄마는 우리 넷을 키우시며 희생하시고 가족에게 헌신해 주셨으니 하얀 프리지아의 '우정, 사려 깊음, 순수함, 인내' 의미를 몸소 보여주시며 본보기로 살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시고 주말마다 여행을 다녔다. 행복한 경험으로 가득한 유년시절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하고 나다운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부부의 관계에 있어 책으로 배우지 않아도 엄마 아빠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큰 행운이다.
프리지아 꽃 중 빨간색이 가장 향이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하얀 프리지아가 가장 향기롭다. 하얀 프리지아를 닮은 엄마처럼 더 향기롭게, 상냥하면서 친절을 베푸는 따뜻한 마음을 피우며 살아야겠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50여분 떨어진 곳에 하지조지마섬(Hachijojima)이 있단다. 3월~4월이 되면 350,000개 이상의 프리지어가 피어있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언젠가 가족 모두 함께 보러 갈 날을 고대해 본다. 그렇게 부모님과 오래오래 건강하게 저희 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추억을 쌓으며 함께 했으면 좋겠다. 40대의 어른이 되었어도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 물어보고 싶은것이 여전히 많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드니까. 엄마아빠가 계시다는 사실 만으로도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강력한 원동력이 없다.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
이 세상에 건강하게 있어 주셔서 감사하다.
엄마, 아빠! 너무너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