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러 서평들
이번 달에는 모두 13권의 책을 읽었다. 가능하면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지만 이미 구매한 많은 책들 중에서 ‘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위주로 읽고 있고, 그런 의무감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면 일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도 꾸준히 읽어 나가려고 한다.
호수살인자, 쇠못살인자, 쇠종살인자 이 세 권은 지난 4월에 읽었던 황금살인자에 이어서 디런지에 시리즈의 나머지에 해당된다. 서구인이 쓴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회에 대한 설명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서양 추리소설의 문법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동서양의 안좋은 점을 합쳐 놓은 셈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추천할 정도는 되지 않는 듯.
양쯔강은‘대지’ 3부작 시리즈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등을 수상한 펄 벅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대지’ 시리즈도 너무 어릴 때 읽어서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서야, 사실 펄 벅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지’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도리어 퇴보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거나 펄 벅이 스스로를 ‘정신적인 동서 혼혈인’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지만,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서양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청년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가족과 이웃의 기대와 역사적인 소명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아편에 손을 대고 마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 변혁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로 이야기되는 아Q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그러나 그보다 더 그 시대의 중국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난달에 시작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4권까지 읽었다. 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이야기이고, 4권은 4.19를 포함한 4월혁명에 관한 내용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치열한 역사 전쟁을 기억하는 면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현대사에 관한, 그것도 이승만 정권에 대한 긍정적인 역사 서술이 나올 수 있으며 그것이 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될만큼 격렬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국내의 상황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환경과 좀더 긴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그런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었을 것 같고, 작년에 읽었던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50년대의 내용을 겹쳐서 생각하면 195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들은 거의 섭렵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축사회는 리디북스에서 진행한 메디치미디어 무료 대여 행사 덕분에 읽게 된 책이다. 엄청나게 성장하는 경제를 배경으로 자라온 내게 수축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와닿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10대 혹은 20대를 이해하기 위해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장이 정체된다는 말은 결국 모든 활동이 제로섬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문화와 생활을 영위해온 유럽인들 또는 북한 사람들에게 도리어 더 익숙하고 유리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대한 진단은 같아도 그 대처 방법은 생각의 방향에 따라 정 반대로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인데,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들은 그 기본적인 생각의 뿌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최소한 나 자신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역전은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국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의 저자가 각 분야에서 힘의 역전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부분은 피해자 우선주의로 바꿔라는 이수정님의 글과 수도권 중력에 맞서는 메기시티 구상이라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글이었다.
증거의 오류는 내가 구매할 때 생각했던 데이터와 증거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에 대한 생각을 주로 가지고 있지만, 저자는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특히 설문조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4월 6일에 읽기 시작해서 5월 16일에야 다 읽을 수 있었으니 꽤나 오래 걸린 셈이다. 그래도 읽는 중에 실제로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에 직접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읽기가 가능하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아마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것 때문에 더 유명해진 책일 것이다. 사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그 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른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공허’ 또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믿고 있었던 것의 공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공허 또는 공백의 문제가 삶의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내 자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애자일,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의 비밀이라는 이 책은 애자일 경영에 대한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내가 느끼기에 조금 번잡하게 쓰여진 측면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시작된 애자일이라는 개념과 문화가 어떻게 경영에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깊이있게 설명한 것은 분명하다. ‘애자일’하지 않은 조직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애자일’이 필요한 것인지,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애자일’인 것인지, ‘애자일’ 방식으로 경영을 하면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등 생각해 볼만한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애자일’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행동의 원칙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구체적인 행동 양식보단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이 애자일하기 위해서는 애자일을 교육하는 것보다는 애자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일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버트런드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학자로서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만을 놓고 보면 왜 그를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번역이 엉망인 것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는 지성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관점에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역사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이다. 그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이 읽기 힘들고 (이북이면서도 가독성을 올리기 힘든 편집도 한 이유일 수 있지만), 모호하고 어려운 많은 단계를 지나가야만 간명하게 정리되는 결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중간의 어려운 단계를 충실하게 따라오지 않았더라도 부정하기 힘든 매력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그의 책을 자꾸만 읽게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에수를 죽음의 자리까지 끌고 간 것은 로마의 잔악함이 아니라 그 정상성(normalcy)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