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작, 좋지 않은 전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2019년에 출간되어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이다. 일본인 작가의 책이기도 하고, 보통 일본 서적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있는 터라 굳이 구매해서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YES24 북클럽에서 읽을 수 있어서 유효 기간이 끝나기 전에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프롤로그에서부터 이 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일러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 프롤로그 중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 – 의심해야 하는 상식의 대비. 상식이라는 말은 아마도 주입된 생각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것은 뒤에 언급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이라는 표현을 볼 때, 지식이 통하는 콘텍스트를 이해하라는 말이다. 모든(이 아니라고 해도 대부분의) 지식은 그것이 통하는 시공간이 있다.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식이라는 것은 매우 모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언제나 지금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콘텍스트에서 해석을 해야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결국 교양이라는 것은 모든 원리를 어떻게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적용할 것인가를 이해하는 능력이라 달리 말할 수 있다.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왜의 문제에 대답했다면, 그걸 어떻게 배우느냐도 중요한 문제이다. 저자는 (일본인답게) 철학을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배우는 것보다는 당장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정리해서 배우는데 낫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했을 때 어떤 문제의 본질을 빠르게 꿰뚫어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약간은 낯간지러운 자기 자랑을 예로 들며) 정도의 목표 의식도 보여주고 있다.
철학을 배울 때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아웃풋이 아니라 그 아웃풋을 만들어낸 프로세스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구체적인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교양에 대한 정의와도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인문학에, 그리고 심지어는 자연과학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자연과학에서는 우연한 발견이나 프로세스가 잘못되었지만 옳은 결론이 나올 때도 많이 있고, 그럴 때조차 그 결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인문학이 사람과 사회를 다룬다면 시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고, 자연과학은 주로 시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연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은 접근이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좋은 방향이 완전히 산으로 가고 만다. 저자는 ‘삶에 대한 유용성’을 기준으로 그 아웃풋을 골라내고, 그 각각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프로세스를 담아 당장 삶에 도움이 되는 개념 50개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각각의 이야기는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겠지만, 결국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게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삶에 도움이 될만한 개별 개념들로부터 시작하여, 이 개념이 어떻게 제시되었는지 그 과정을 배우고, 그걸 지금 당장 적용해 보라.
(저자가 싫어하는 방식처럼)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현재 내 삶에 별로 쓸데가 없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훑고 지나가면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은 참 어렵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작업이 바로 저자가 말한 프로세스이다. 그 프로세스는 이미 그걸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으로부터 좋은 설명을 듣고 이해한다고 해서 알아지지 않는다. 잘 정리된 표를 통해서 얻어진 지식은 딱 그 정도로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그걸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면, 결국 그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일본은 실학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철학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사실 내가 보기에는 일본의 많은 철학자들이 지은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프로세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의미있다고 증명된 것’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남겨진 개념들이 아니라, 그 판단을 위해 고민하고 생각했던 모든 개념들, 그리고 그 걸러냄의 과정 자체가 그의 교양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독서는 이런 프로세스일 수 밖에 없다. ‘한권으로 읽는 삼국지’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류 최고의 소설로 추앙받기도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논술 대비로)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줄거리만 요약한 짧은 책으로 만든 것을 읽으면 그 소설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실제로 우리 아들들이 읽은 이 책을 읽어보고 느낀 점이다. 이건 줄거리를 잘 요약하느냐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식의 질문에 짧고 재치있는 대답을 해서 상대방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정도가 목표라면 이런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교양있는 사람인 척 하는 것이 노력 대비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진짜 교양있고 생각의 깊이가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식의 질문을 받는다면 한편으로는 모멸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렇게 무식한 질문에 어느 정도의 깊이로 답을 해야 상대방이 조용히 물러서줄까를 고민하면서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교양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받아 적는 것만으로는 그 경지를 따를 수 없다. 교양은 말이 아니라 삶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간단하게 요약해 둔 리스트만으로는 삶을 살아낼 수 없다. 짧은 회의 시간에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 것은 듣기에 좋을지 몰라도 실제 일의 성패를 바꾸지는 못한다. 결국 그 리스트 속의 말들이 듣는 이의 삶 속에 살아져야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지식은 시간이 갈수록 차근차근 더해져서 높고 많아지겠지만, 삶을 살아내는 교양은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2021/01/23 https://lordmiss.com/journal/archives/5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