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5일 금요일
새 공간에서는 첫 그림을 그리자.
2022년 4월 첫 작업실을 얻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텅 빈 작업실에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나는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챙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 공간이니 그림을 그리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 공간을 얻으니 할 일이 참 많았다. 짐을 옮기고 정리정돈을 하고, 또 다른 짐이 들어오고, 택배를 받고 청소를 하고. 이런 일들을 해나가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친구들이 놀러 와 집들이를 했고, 때로는 외부 일정을 소화하느라 출근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다 보니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작업실에서 처음으로 그린 것은 빨간 사과다. 사과라는 정물은 그림 그리는 사람의 첫 그림으로 제격인, 그러니까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했고, 새 공간에서 적응하려고 그리는 첫 그림으로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화사하고 강렬한 색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덤이다. 찾아보니 그 사과 그림을 완성한 것은 4월 13일이다. 그러니까 이사하고 5일 만에 첫 그림을 완성했다.
이번 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가장 먼저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다. 2년 전에 빨간 사과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초록 사과를. 그러니까 사과를 그리는 것은 새 공간과 친해지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친해지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림 그리기 만큼 적합한 행위도 없다. 그림을 그리다 이따금씩 창밖을 내다봤고, 가끔은 기지개를 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몸을 풀기도 했다.
지난 작업실에서 2년을 보내 본 결과,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사 직후에는 짐을 풀고 가구를 들여야 하고, 또 다음 이사 직전에는 짐을 싸고 정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앞뒤로 1-2달씩, 마음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공간과 떨어진 채 지내다 보면 정말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이번 작업실에서 얼마나 지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첫 이사를 마친 직후라 알 수 없는 조급 내지는 불안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그래서 첫 그림을 최대한 빨리 완성하고 싶었다. 첫 그림을 완성해야 비로소 이사가 끝난 느낌이다. 짐을 다 푼 느낌. 정말로 내 공간이 된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최대한 빨리 느끼기 시작해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입주일로부터 3일 만에 첫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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