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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suho Jul 03. 2024

씨앗을 심고 물을 주듯.

2024년 4월 7일 일요일



씨앗을 심고 물을 주듯.


작업실 입주 일주일차.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산그림 작가 신청도 했다. 다행히 둘 다 문제없이 승인을 받아서 글과 그림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을 하나씩 마련했다. 다음 주부터 있을 전시에 가져갈 그림도 준비했다. 압구정 빈칸에서 열리는 단체전 <드로잉잉 파트 1>에 그림을 전시하고 되었다. 나는 여행에서 그려온 음식 그림들을 가져가기로 했다. <여행자의 음식들>이라는 주제로 10장이 조금 넘는 그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터넷 이전도 했다. 인터넷으로 신청했더니 기사님이 오셔서 공유기를 연결해 주셨고, 금세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냉장고와 가스가 아직이라 요리가 불가능하다. 냉장고는 이전 작업실에 옵션으로 있던 가구를 썼던 터라 새로 주문해야 하는데 아직 하지 못했고, 가스레인지도 새로 사야 해서 이제 택배로 오고 있다. 이 정도가 새 작업실에 입주하고 첫 주에 한 일들이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이 있기 전에, 새 작업실에 들어오자마자 한 일은 4개의 허브 화분을 들이는 일이었다. 로즈마리, 애플민트, 페퍼민트, 스위트 바질. 네 개의 화분을 이사하는 날 주문했고 다음날 바로 도착했다. 허브는 먹을 수 있는 것들로만 골랐다. 열심히 키워서 요리에 사용하겠다는 생각으로.


허브는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여서 좋다. 물과 햇빛, 바람만 있으면 잘 자란다. 하루가 지나면 키가 커져 있고, 또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잎이 생긴다. 여기에 추가로, 식물을 키울 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적당한 무관심이라고 했다. 너무 많은 관심을 주면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거나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 물을 주지 않아 죽는 식물만큼이나 과습으로 죽는 식물도 많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끔은 내버려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허브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식물을 키우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빛을 주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적당히 무관심하다 보면 어느새 자라 있다. 다만 허브가 자라는 속도는 일을 하는 내가, 혹은 나의 일이 자라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서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자라고 있다는 것.


나는 씨를 심고 싹을 틔우는 일을 하고 있다.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글과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내 그림을 걸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준비되면 물과 햇빛을 공급하고 바람을 확인하면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무관심. 조급은 일을 망치기 마련이다.


다음 주에는 이전 작업실 계약이 만료된다. 보증금을 받으면 열쇠를 돌려주고 마지막 짐을 빼와야 한다. 이번주에 미처 하지 못한 일들도 다 해야 한다. 전입신고를 하고, 냉장고를 설치하고, 가스를 설치해야 한다. 나의 씨앗이 건강히 발아하여 싹을 틔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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