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나 입덧하는 줄 알겠네.
근데요, 저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요.
때는 바야흐로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 겨울로 추측되는 어느 날이었다.
성인 ADHD 확진 판정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먹고 있는 콘서타라는 약은 용량이 다양한데, 보통은 가장 적은 용량인 18mg부터 복용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강도 높은 걸 먹으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적은 용량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처음에 18mg를 먹었을 땐 그냥 식욕부진만 따라왔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대표적인 증상이 식욕부진과 두통이라고 하셨다. 어디 가서도 반찬 투정이나 편식은 남의 얘기였던 나에겐 처음 겪어 보는 식욕부진이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성인 ADHD 치료받기 전의 난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입맛 하나는 최고였다. 엄마는 가족들 중에서도 뭘 해 줘도 늘 맛있게 먹는 나에게 항상 간을 봐 달라고 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양손 엄지를 추켜올리며 갖은 리액션을 취했다. 나와 달리 입맛이 까다로운 남동생은 나에게 "누나는 저기 어디 아프리카에 던져놔도 벌레 같은 거 잡아먹으면서 살아남을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 갑자기 혈압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까?)
그러던 내가 약을 먹기 시작하니 입맛이 뚝 떨어졌고, 처음으로 며칠 연속 밥을 거르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것처럼 막 아픈데, 속에서 받지를 않으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 약을 먹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부작용 이랬으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걸 견뎌내야 했다.
콘서타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용량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먹어도 되는 약의 용량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다.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나면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용량을 올리지 않고 점점 줄여가는 방식으로 찾아나갔다.
45mg 까지는 괜찮았다. 그래서 조금 더 용량을 늘려보기 위해 54mg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나는 내 후각이 전에 없이 예민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에이 앱 멤버 중 하나는 약을 먹은 이후로 **마트에 가면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를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모임 때 한 적이 있었는데, '혹시 이게 그건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강제 실직 상태였던 나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그 시절, 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냥 집에만 앉아 있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그날도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아래층에 사시는 요리 잘하시는 할머니 댁에서 미역국 냄새가 올라왔다. 예전 같았으면 '와 냄새 끝장나네. 배고프다. 맛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갔을 텐데, 그 날은 그 냄새가 굉장히 역겹게 느껴졌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희한하게도 나는 온갖 냄새들 중에 음식 냄새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사람이 가지고 있는 5가지의 감각 중에 특별히 예민해지는 감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듣기는 했다. 나는 그게 후각이었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길가다가도 음식 냄새를 맡게 되면 자동적으로 헛구역질을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웬 여자가 길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내가 입덧하는 줄 알았겠지.
속상했다. ADHD 때문에 약을 먹고 후각이 예민해져서, 고생을 해서 속상했던 건 절대 아니다. 굉장히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30살 넘어서 남자 친구도 남편도 없는데, 심지어 임신해 본 적도 없는데 입덧하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로부터 임신한 것으로 오해받는 그 상황이 속상했다. 주변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오히려 억울한 건 덜했을 거다.
그런 증상이 나타나서 나는 얼마 후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게 내가 복용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인 것 같았다. 다시 용량을 조금 낮춰서 45mg를 복용하기로 했고, 그 이후에는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 45mg를 고정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