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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신 Sep 08. 2020

Eternal Sunshine을 감상하고..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기숙사에서 씻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화장실에서 얼굴을 내밀었더니 친구가 함께 뷰티 인사이드를 보자고 했다. 이미 한 번 봤던 영화지만, 이해를 하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다시 보자는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영화를 지워서 의도치 않게 보게 된 것이 «Eternal Sunshine»이다.


 이 영화의 첫인상은 지루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조엘이 침대에서 일어나서 회사에 가는 장면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옆면이 찌그러졌는데 옆에 차는 멀쩡한 것이 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그리고 조엘이 갑작스럽게 몬탁 행에 가는 기차를 타고 파란색 머리를 한 여자 주인공 클레멘타인을 만나서 호감을 갖고 클레멘타인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급격히 친해진 후 함께 얼어붙은 호수에 갔다 온 후 조엘의 집에서 자기로 하여 클레멘타인이 칫솔을 챙기러 갔는데 어떤 남자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한 후 갑작스럽게 조엘이 차에서 울고 있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조엘은 같은 건물에 사는 부부에게 클레멘타인이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며 오열하고 보다 못한 부부의 남편은 조엘에게 라쿠사 사에서 온 쪽지를 건네고, 쪽지에는 클레멘타인이 조엘을 기억에서 지웠다고 써져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조엘은 라쿠사 사에 찾아갔고, 결국 자신도 클레멘타인을 기억에서 지우겠다고 말한다. 기억은 가장 최근부터 지우게 되는데, 자신의 기억 속에 들어간 조엘은 클레멘타인에게 내일 아침이면 이 지긋지긋한 러브스토리도 끝이라고 말하지만, 점차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꿈속을 계속 헤매면서 병원의 직원인 패트릭이 기억을 지운 클레멘타인에게 자신을 떠라 하며 사귀게 된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기억은 계속 지워지기에 클레멘타인을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클레멘타인은 그럼 상관없는 기억 속에 숨자고 하고, 그와 그녀는 그의 어린 시절 속 행복하고 슬프고, 심지어 수치스러운 기억까지 공유하게 된다. 결국 조엘은 기억 속에서 의사에게 찾아가 멈춰달라고 하지만, 그 의사 역시 기억이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고, 심지어 그 의사마저 기억 속에서 지워지며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결국 마지막 기억을 지우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들은 그저 이 순간을 느끼기로 한다. 이별의 마지막 순간에도 조엘은 현실에서 이별했던 것처럼 도망치려고 하지만 클레멘타인은 이번에는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고, 몬탁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긴 채 조엘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 순간과 이어진다.


 칫솔을 챙기러 들어간 클레멘타인의 집 속에서는 패트릭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들리고, 클레멘타인은 칫솔과 우편을 챙겨 다시 조엘의 차에 타고, 우편에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튼다. 카세트테이프에는 자신이 조엘을 싫어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고,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차에서 내리게 하고 혼자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던 클레멘타인은 결국 조엘의 집에 다시 찾아가는데, 조엘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조엘의 음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같이 조엘의 카세트테이프를 듣지만 점차 듣기 힘들어진 클레멘타인은 집을 뛰쳐나가고 조엘은 그녀를 붙잡는다. 클레멘타인은 우리는 결국 서로를 싫어할 거라고 말하지만, 조엘은 그래도 괜찮다고 하고, 그들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하며 영화가 끝이 났다.


 사실 조엘이 기억을 지우는 동안 병원의 데스크를 맡는 메리는 라쿠사 사 원장인 하워드에게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의 한 구절을 읊어준다.

“순결한 처녀 수녀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세상이 그녀를 잊었듯이, 세상은 그녀에게 잊혀져가네.
깨끗한 마음의 영원한 햇살!
누구의 기도는 이루어지고, 누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네.”


 이후 메리는 하워드를 유혹하고 하워드의 아내가 그 장면을 보게 된다. 하워드의 아내는 메리에게 원래 하워드를 가졌었다고 말하고 떠나고, 메리는 자신과 하워드가 이전에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괴로워하며 라쿠사 사의 모든 자료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준 후 어디론 가 떠난다.

 



 영화에서 조엘의 기억 속 클레멘타인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에 계속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고, 영화의 모든 순간들이 색감과 연출로 인해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2004년에 개봉했는데도 조엘이 기억을 잊어갈수록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클레멘타인이 조엘에게 느끼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머리 색이 변해가는 것, 영화 속 인물의 대사 하나하나의 연출이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었다. 특히 메리가 한 말은 그녀 자신에게도, 클레멘타인과 조엘에게도 적용이 된다.

 잊어서 행복한 이유는 수치스럽거나 불행했던 기억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슬프고 아프고 부끄러웠던 감정으로 인해 사람은 성장한다. 행복했던 기억도 소중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기억도 소중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영화에서 무서웠던 부분은 조엘의 기억이 지워지며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는 것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란 누군가에게 잊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 존재를 모르게 되는 순간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이 영화는 내 생각의 반대되는 부분을 보여줬다. 내가 다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떨까? 처음으로 나에게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해 준 영화였다. 사실 다른 사람 한 명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밉고 싫은 사람을 기억에서 지우면 더 좋은 것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 사람과 함께 해서 모든 순간을 지우고 싶을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까? 생각해보면 아무리 싫었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내 모든 기억을 지우는 것은 아까운 것 같다. 그리고 기억에서 지울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운 것조차 그 사람을 너무나 아껴서 그런 것이기에 이겨낼 수는 없어도 기억 한 편에 묻어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결국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만남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순간에 사랑을 다하겠다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영화를 비평한 영상을 시청했는데 그 영상에 나온 말이 인상적이었다. “노트에 글씨를 적고 그 페이지를 뜯어내도, 뒷장에는 흔적이 남는다.” 사람에 대한 기억을 아무리 지워도 그 사람의 흔적이 남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에게 큰 울림을 준 만큼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큰 감정 소모를 했던 것 같다. 나도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결말을 알고도 지금의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 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 아픈 기억을 통해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사람, 누군가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가 왜 나는 영화 보면서 울지 않냐고 물어봤다. 나도 눈물이 많은 편인데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첫번째는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까지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때문이고 두번째는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차마 친구에게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알게 해주어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공감을 할 틈이 없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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