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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May 30. 2021

부에 관한 우리 시대의 꿈

중고 신입의 여섯 번째 이야기

20년 전으로 기억된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시절, 주일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갑내기 친구와 각자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IT회사 대리로 일하고 있던 그 친구는 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어른들 말처럼 안정된 삶이야말로 가장 큰 재테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부부가 집을 장만하면 인생에 있어서 ‘안정’이라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 믿었던 친구였다. 

나 또한 결혼과 가족은 인생에 있어서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늦은 대학 공부와 4년 제로의 편입은 사회진출마저 늦추었다. 남들과 비교해도 돈을 벌 기회가 줄었고, 내 선택의 범위도 줄어있었다.    

 

“결혼하려면 집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 돈 모아서 집 장만하지?”     


“다음 학기 등록금부터 알아봐야 하는데, 언제 사회 나가서 돈 벌고, 집 사고, 결혼하겠냐?”     


20대 후반의 우리에게 결혼은 당면한 과제였으며 모든 고민의 시작이었다. 베이비 붐 마지막 세대로 살고 있던 우리는 가정을 꾸리기 위한 가장 절대적인 것이 집이라 생각했다.      


“강남은 아니더라도 서울에 30평대 아파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있어야 살 수 있을까?”     


“몇억은 있어야 할 텐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그 돈 다 갚으려면 20년은 족히 직장 생활해야 할걸?”     


“그러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진한 대화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말이 나온 김에 화이트보드에 각자가 생각하는 생애주기 비용을 적어 보았다. 

그 친구는 이미 다니고 있는 직장을 기본으로 하여 이 직업을 끝까지 이어갈 경우, 벌 수 있는 돈과 지출 비용을 계산했다. 그리고 그의 삶 중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 예를 들면 결혼과 출산, 아이들의 교육과 아파트 구입 같은 것을 바탕으로 60세 은퇴를 고려한 비용을 계산하였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는 30세에 직장을 구하고, 40 전후에 나의 사업을 한다고 가정했다. 늦어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모험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과 함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이르는 모든 것을 고려하여 금액을 산정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60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둘은 똑같은 결과를 갖게 되었다.      

평생을 벌어서 2억 6~7천 정도의 돈이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과 데이터를 가지고 뽑은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뽑아본 결과이기에 나는 좀 더 신뢰가 갔다.     


“결국, 서울에 24평형 아파트 하나 사는 가격밖에는 안 남네?”    

 

“인생 참 허망하다. 딴짓 안 하고 열심히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소형 아파트 정도라니...”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마저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당시, 노력하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서울 변두리의 20년이 된 소형 아파트가 7~8억을 넘어가는 현실을 볼 때, 두렵기까지 하다. ‘조금만 무리를 해서라도 사두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에 가졌던 우리 세대의 꿈이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버렸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현재 그 친구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지금까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사 승진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계획했던 집보다는 평수가 넓은 김포에 중형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당시 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는 하나씩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갔다. 아직은 살고 있는 집이 은행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는 자신이 가졌던 가장으로서의 무게도 한결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에 비해 나는 계획과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최소한 이 정도에서는 시작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중견 기업은커녕 영세한 사무소를 돌며 계약직 일을 주로 했다. 더는 뒤쳐질 수 없다고 조바심 가득한 마음에 사업도 시작해보았지만, 함께 투자한 엔지니어 회사는 부도를 맞고 말았다.      




거듭된 실패로 인해 돈과 시간을 낭비한 나는 새로운 도전을 찾아야 했다. 

그중의 하나가 당시 유행하던 프랜차이즈 사업이었다.      


어려서부터 나의 첫 직업은 빵가게 주인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빵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커피를 함께 파는 빵 가게를 알아보고 다녔다. 얼마가 있어야 프랜차이즈를 열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파리에서 먹는 바게트’를 한국에서도 먹게 해 주겠다는 빵 가게를 알아보기도 했고, ‘커피에는 도넛’을 외치던 가게를 알아보기도 했다. 주변 사람 중에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들을 수소문하고 우연을 가장해 찾아가서 이것저것 묻기도 여러 차례였다.      


강남에서 도넛 가게를 운영하시던 분이 가게를 내놓았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을 인수하기를 원했던 나는 장사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자영업자 삶이 월급쟁이보다 못하다는 것을 보면서 결국엔 이 꿈마저도 포기했다.     


“형님은 가게 하시면서 돈 좀 버셨어요?”     


“응, 좀 벌었지. 그래도 옛날 같지는 않아. 요즘은 사장이 한 사람 몫을 해야 대기업 과장 정도 월급 번다고 보면 돼.”     


“애걔, 그거 벌려고 장사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당시 내가 생각했던 장사의 개념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이놈, 완전히 개념 없는 놈이네. 장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아침 6시에 나와서 문 열어야지, 아침 장사해야지, 거기에 저녁 10시 되면 정산하고 내일 팔 물건 주문 넣고, 아주 정신없어. 옛날처럼 빵 가게 시작하면 장사가 저절로 되는지 아는데, 안 그래. 주말에 하루 알바 쓰고, 주 6일 시간 시간마다 챙기지 않으면 장사는 그대로 망하는 거야. 요즘 같은 때에 이 정도 매출만 나와도 완전 성공한 거야.”     


나의 어이없는 반응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장사 잘된다면서 왜 가게는 팔려는 건데요?”     


“사실 내가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마라. 괜히 소문 돌면 가게도 못 팔아.”     


그 당시 만해도 가게 주인은 내가 그 가게를 인수하려고 온 줄 모르고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매출이 30%씩 떨어지는 거야.”     


“30% 나요? 왜요?”     


“앞에 붕어빵 가게가 생겼거든. 나도 긴가민가 했는데, 진짜로 붕어빵이 우리 가게 매출의 30%를 가져가더라고.”     


한편으로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였다. 

     

“겨울이 되면 도넛 사러 오던 손님들이 따뜻하고 가격이 싼 붕어빵을 대신 사간다니까. 어차피 도넛도 간식이고, 붕어빵도 간식인데 차라리 붕어빵 먹지 비싼 도넛 먹겠냐?”     


그도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던 작은 문제가 장사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단순히 내가 좋다고 시작하는 것이 장사가 아니었다. 아무리 유행하는 아이템을 시작한다고 해도 모두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돈을 벌면 누군가는 돈을 잃는 것이 장사의 법칙이다.      


이후에도 주변에 장사하는 이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그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는 점이다. 민폐 손님, 프랜차이즈 본점의 갑질, 임대료와 세금 등의 문제로 힘들어했고, 주인으로서 해결해야만 했다.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고,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단란한 가정과 그들을 담을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부에 관한 꿈이었지만, 이마저도 이루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금수저와 흙수저의 계급이 세습되는 현실에 대하여, 누구도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더 다양한 방식의 재테크를 찾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지금의 세대를 보면서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도 자신을 위한 위로의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맨하탄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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