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키 Oct 02. 2022

영화감상[011]<인생은 아름다워>(2022)

이문세의 노래로 모든 삶이 미화되지는 않는다

(스포 포함)


나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면서 절대적으로 지키는 세 가지 행동이 있다.


소설 책보다휴대폰을 켜거나 확인하지 않는다

2. 하품하지 않는다

3. 동행인 아닌 다른 관객의 반응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첫 번째, 휴대폰은 영화 관람 수칙이 공지될 때부터 전원을 반드시 끈다. 2시간 내외라는 러닝타임은 의외로 길지 않다. 책으로 환산한다면 웬만한  얇은 각본집에 담길 한 감독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선 주의를 해치는 매체는 최대한 통제해야 한다.


두 번째, 하품하지 않는다. 아무리 다음 장면이 예상되어도 말이다. 영화는 수십, 수백 명의 팀 프로젝트 작업이다. 직접 현장에 감독과 스태프들이 동행하는 시사회가 아니더라도 창작자들에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분명 있다.


세 번째, '나만 재미가 없나?', 혹은 '나만 재밌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 반응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종종 저절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느낀 감상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남들의 반응을 영화 작품성에 대한 지표로 삼지 않는다. (애초에 고작 한 상영관에 들어가는 관객들의 반응이 영화 평론에 대한 표준값이 될 수 없다)


스포부터 하자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관객을 차근차근 실망시켜 위의 행동들을 차근차근 이끌어내는 영화다.


첫사랑 클리셰에 의존한 진부하고 빈약한 인물 설정

영화의 플롯이 세 개로 요약된다면 그 사이의 긴밀성이 엄청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플롯 간의 연결성을 찾기란 주인공 세연이 이름과 얼굴만 아는 30년 전의 첫사랑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세연(염정아 배우)은 자신의 잦은 기침이 그저 미세먼지 탓인 줄로 알지만 결국 폐암 말기를 선고받게 된다. 세연은 수험생 아들에게 치이고, 중2병 딸에게 쩔쩔매는 와중에 가사에 도움을 주긴커녕 타박하는 말투가 습관인 남편에게도 하대 받지만 그 와중에도 세연에게 위로가 되어왔던 것은 '은행잎 한 장'이다.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던 정우(옹성우 배우)를 떠올리며 위안을 받았던 것. 하지만 영화는 이미 초반 설정에서부터 현실성을 잃었다.


폐암 말기를 선고받아 시한부 삶을 직면한 세연
> 투병 중 세연의 첫사랑 찾아 떠나지만 실패
> 세연 생에 마지막 파티

<인생은 아름다워>의 플롯


첫사랑 하나를 떠올리며 버텨냈다기엔 세연의 30여 년간의 결혼생활은 너무나도 혹독했다. 영화 공식 줄거리 개요에서 '무뚝뚝한 남편'이라고 소개되는 남편 진봉(류승룡 배우)의 과거 행적부터 살펴보자. 둘째를 임신한 세연이 입덧이 심한 와중에 회가 먹고 싶다고 하자 진봉은 이렇게 말한다. "'회'는 네가 '해'먹어'". 본인은 끼니를 때우고 퇴근했으니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접 해 먹으라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대사를 발음의 유사성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로 보여주려고 한 의도부터 이해가 어려웠다. 만약 그의 발언이 90년대 한국 남편의 평균적인 태도라고 할지언정,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유희적으로 풀어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출산을 아내 혼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만큼 가부장적인 일은 없으며 이런 진봉을 재밌게 포장할수록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아내와 남편에 대한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이 강화될 뿐이다.


'남편'의 역할에서만 유난히 너그러워지는 진봉의 고정관념은 시간적 배경이 현재일 때도 이어진다. 세연의 첫사랑을 떠나러 가는 도중 부부가 모텔에 숙박할 일이 생기자, 진봉은 우리 같은 나이대가 함께 모텔을 가면 불륜인 줄 안다며 먼저 모텔에 들어가라고 아내를 떠민다. 이 영화의 주제가 '가부장제의 탈피'가 아닌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으로서 임신한 아내를 이해하고 존중할 의무는 저버리면서 겨우 쪽팔리지 않을 권리는 족족 챙기는 이기심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연은 스스로는 먹어본 적도 없을 영양제를 종류별로 챙겨 무심하게 등교하는 아들에게 꼭 쥐여준다. 반항적인 딸이 아무리 상처받는 말을 내뱉어도 딸이 깜빡한 준비물을 대신 챙기느라 세연의 아침은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도 아내를 하녀 대하듯 부려먹는 남편은 여전하다. 이런 가혹한 가정생활 30여 년을 겨우 나뭇잎 한 장으로 견딜 수 있었을까. 학창 시절과 첫사랑에 대한 좋은 추억이 세연의 버팀목이었음을 보여주려면 적어도 과거 회상이 영화 절반 이상을 차지했어야 했다.



불필요한 인물을 자꾸 등장시키고 

필요한 인물은 사라져 버린 기이한 회상 장면

그러나 회상하는 장면이 단지 '적었다'라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세연의 회상 장면에서 서사에 불필요한 인물은 너무나 많이 등장하면서 정작 세연의 행동과 욕망을 설명함으로써 그의 서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정말 필요한 인물은 너무나도 소극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둘러 밝히자면 여기서 불필요한 인물은 남편 '진봉'이며, 필요한 인물은 세연의 절친 '현정이'(심달기 배우, 중년 역-염혜란 배우)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세연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때 그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쓴 소원은 '첫사랑 만나기'가 아닌 '현정이 만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연은 '첫사랑 오빠'를 다시 만나고자 여정을 떠난 것일까? 그 이유는 역행으로 써 내려가 제일 마지막으로 적힌 첫 번째 소원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사랑받아보기'가 세연의 첫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세연의 기억 속에서 첫사랑은 본인이 일방적으로 사랑한 사람이 아닌- 함께 애정과 호감을 나누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사랑의 기억을 함께 향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첫사랑 '정우'였다. 세연에게 첫사랑 찾기 여정은 어쩌면 억눌린 가정으로부터의 탈출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 여정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부산, 목포, 청주까지 찾아 나선 첫사랑 정우는 불의의 사고로 이미 죽었으며, 정우의 여동생을 만나 그의 유품을 보던 세연은 정우의 마음이 본인이 아닌 현정에게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긋난 사랑의 방향을 깨달은 세연은 현정과 절교하게 된 전말을 회상해 본다. 세연은 현정이 정우를 짝사랑해, 본인과 정우 사이를 망가뜨리려 현정이 정우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낸 것으로 오해해 현정과 연을 끊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정우가 절친 세연이 아닌  본인에게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된 현정이, 일부러 정우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퍼뜨려 정우를 향한 세연의 마음을 떼어내려 한 것이었다. 진부하고도 오래된 삼각관계 클리셰가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아무튼 결론은 세연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하여 그가 상처받지 않기를 원한 인물은 단연코 '현정'이다.


따라서 가족을 제외하고 세연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절친 '현정'이었다. 하지만 중년 현정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에게 주어진 대사는 고작 반갑다는 말 한마디뿐이었으며(아무리 카메오일지언정 염혜란 배우의 활용력은 정말 최악이었다) 학생 현정 역을 맡은 심달기 배우의 역량을 보여주기엔 상황 설정도 분량도 역부족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세연을 둘러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단일 플롯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은 인물들의 구조가 훨씬 명료해야 했다. 그러나 그중 핵심 인물인 현정이에 대한 부연 설명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첫사랑도 만나지 못하고, 절친한 친구와 충분한 재회도 하지 못한 채 끝난 세연의 여정은 허망하기만 하다.


절친 현정이 '조연'의 분량조차도 챙기지 못한 마당에 세연의 회상 장면에 꾸역꾸역 등장하는 진봉은 사족이었다는 표현밖에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세연의 첫사랑은 남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남편이 첫사랑 정우보다도 세연의 회상 장면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진상 남자 친구가 정변하여 진상 남편이 되었다는 인과관계만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주제의식은 역부족

제목을 비추어보자면 세연의 시한부 삶을 통해 관객은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인생은 아름답구나'를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영화에서 보여준 '인생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영화의 후반부, 결국 세연은 '첫사랑 찾기'에는 실패했지만 그 외에 버킷리스트로 적었던 '운전하기', '화장받아보기', '라디오 사연 당첨되기' 등을 남편 덕분에 이루게 된다. 세연이 의식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편 진봉이 아내를 챙겨주었기에 가능했던 성취였다.

  하지만 이 성취는 감독의 게으른 사고에서 비롯된 아주 사소한 성취에 불과하다. 관객은 영화 초반, 죽음을 앞둔 아내에게 걱정 어린 말 한마디 안 하는 진봉을 기억한다. 영화 전반 내내 아내가 화들짝 놀라도록 호통치는 진봉의 태도, 아내의 첫사랑에 어쭙잖은 질투를 해대며 빈정거리는 진봉의 자세를 잊을 수 없다. 남편 진봉은 영화 전반 내내 비호감의 캐릭터를 쌓아왔던 것이다.

  세연의 여정이 실패한 후, 영화는 진봉의 실체를 보여주며 반전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가 사실은 세연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암에 좋은 음식을 찾아보거나(그러나 '검색'만 할 뿐 '장을 보거나' 혹은 '요리'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아내 대신 미국에 있는 현정을 찾기 위해 영어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며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과연 진봉의 이 행동들이 과연 평소 본인의 폭력적이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언행을 무마시킬 만큼 아름다운가? 인터넷에서 주문한 싸구려 현수막이 걸린 리마인드 웨딩파티가 과연 다정한 위로 한 마디보다 가치 있는 것일까? 마지막에 진봉의 숨겨진 노력, 일명 '츤데레' 매력을 보여주면 관객이 감동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그 억지스러운 설정에 감동은커녕 영화 주제에 대한 의아함만 커졌다고 답하고 싶다.



한국의 <라라 랜드>를 꿈꾸기 이전에

<써니>의 흉내라도 냈어야 하지 않았나

여태 영화의 내용만을 비판했지만 사실 프로덕션 디자인도 상당히 아쉬웠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기에 현실을 온전히 고증할 필요는 없지만 감독과 디자이너가 협의한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영화 속 미술의 역할이다. 마분지로 만든 듯한 배경부터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과거를 고증하는 70-80년대의 의상은 하나같이 조악하며 과장되어 있어 마치 연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뮤지컬' 영화 특성을 고려해 배경과 소품을 더 실험적으로 디자인했다면 현실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전개가 더 매끄러워야 했다. 연극과는 다른 영화의 큰 특징은 영상 편집을 통해 관객 시선의 속도와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인생은 아름다워>는 연극적 특징만을 내세운 채 영화로써 확보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전부 저버리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크랭크업이 19년도에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소모된 것이다. 하지만 3년의 시간 동안 영화가 충분히 고민되고 수정된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한국의 미개척 장르인 뮤지컬 영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의 <라라 랜드>라고 홍보된 이 영화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기 이전에 적어도 <써니>와 같이 플롯과 구성이 비슷한 영화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하지 않았을까. (첫사랑에 대한 회상, 학창 시절에 대한 그리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인물의 번뇌,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 등 비슷한 설정이 많지만 완성도 측면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노래를 튼다고 해서 영화로서의 결점이 지워지는 것이 아님을 감독은 깨닫길 바란다.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고 모든 삶이 미화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31회 신춘문예 단막극전 <나의 우주에게> 비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