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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on L Dec 18. 2023

그 순간 2

앓던이

예전에 잠깐 레드디어 살 때가 있었다.  한 2년쯤? 그때 부모님은 사스케촨에 사셔서 한번 본가에 가려면 주야장천  달려 6시간을 가야 했다. 인생에 할 모든 장거리 운전이란 게 있다면 아마 그때쯤에서 30% 정도는 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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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홀연히 싱글일 때라 부모님 뵈러 한 달에 한번쯤은 그렇게 장거리를 운전해 갔다.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선 온갖 잔치가 벌어진다.  운전하는 뇌와 상상을 하는 뇌가 현저하게 구별이 되어서…

그때엔 가장 관심거리는 “내가 누구랑 결혼할까…” “결혼을 하게 되긴 할까” 이런 근심 걱정하던 대책 없던 노처녀기에….

‘내 결혼식에선 이런 드레스 입어야지, 컬러 띰은 이런 걸 해야지, 아 살 빼야지 드레스 입을 텐데, 그때까지 설마 살 못 빼는 건 아니겠지… 신랑이 생긴다면 그렇게 내가 살을 가만 둘리 없지.  결혼식 엄마 아빠한테 편지를 낭독해야지. “정성껏 키워 주셔서 감사하 흑흑…”

이러다 실제로 목이 메고 눈물도 난다.

‘엄마아빠가 얼마나 섭섭해할까.  노처녀라도 막상 결혼한다면 섭섭해서 엄마빠도 울면 안 되는데…’

그러다 눈물바다가 될 그들을 상상하며 복받쳐서 혼자 울다 상상해놓은 편지도 마무리하고…

그때 틀어놓은 음악은 성시경의 ‘행복했던 소박했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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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시간이 흐른 뒤, 장거리 운전에 질려 나도 사스캐촨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1년도 안 돼 한 노총각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 드레스는 내가 상상했던 게 아니었다.  드레스는 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 드레스가 나를 고르는 게 맞는 얘기 같다.  아 뭐 선택권 별로 없는 비루한 몸뚱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중요한 건 설마 내가 그때까지 살을 안 빼겠써…. 했던 대목인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급하게 했던 결혼식이라도 몇 달의 기회는 있었지만 수억 들여 ㅋㅋㅋ pt 사놓고 두 번 갔다는 게 포인트다.  나란 인간은 어쩜 이렇게 몸뚱이에 관대할 수 있을까… 마침 만난 그 노총각이 ‘자기가 어디가 살쪘냐’며 이상한 소릴 해대는 이상한 총각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고 대망의 결혼식날.  수없이 반복하고 수정했던 편지 낭독의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워낙 스몰 웨딩이라 사진 찍었던  스튜디오에서 후딱 해치워 아주 최소한의 과정만으로 얼른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고 눈물바다 예상 했던 부모님은…

한 150년쯤 앓던 이가 빠진  얼굴이란 게 있다면 그런 모습이었을까… 사진마다 싱글벙글.

대체로 신부 쪽은 애들마저 신이 나 있었고 그때 우리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우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공들여 키워온 우리 아들을 150년 앓던 이가 데려가는구나…싶으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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