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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Jan 07. 2025

김민석 <영생을 주는 소녀>

[내 마음대로 책읽기] 아린 듯한 여운

책을 읽고 여운을 길게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재미있거나 감동적이면 그 여운이 꽤 간다. 다 읽었는데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영화적 상상을 하기도 한다. 기억에 꽤 오래 동안 남아 있게도 된다. 그런데, 이 만화책을 보고 남는 여운은 지금껏 가진 책읽기를 통해 가졌던 여운과는 다른 여운이다. 뭐랄까, 개운하지 않은 여운, 마음 한켠이 아린듯한 여운이다.


몇년 새에 팬이 되어버린 김민석 작가의 <영생을 주는 소녀> 전권을 읽었다. 신학자가 아닌 웹툰 작가의 팬이 된 것은, 그가 보여주는 기독교에 대한 문제 제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근거와 이유도 없이 무턱대고 내뱉는 것이 아니라, 상상된 이야기 속에 오늘날의 기독교가 가진 치부를 솔직하면서도 대담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을 대부분 읽으면서 항상 그렇게 느꼈다.


<영생을 주는 소녀>는 SF 판타지 웹툰이다.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조차 뿌리 깊게 내려 있는 남성 우월주의의와 폭력성, 그리고 성폭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그것이 얼마나 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지 때로는 자세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폭력적이고 죄성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가진 의미를 고찰하고, 선함(goodness)을 인간의 의지로 가질 수 있는지의 여부를 논쟁한다. 어쩌면 이러한 내용이 개운하지 않은 여운을 남겨 주는 듯 싶다.


인간은 죄성(sinful nature)으로 인해 세상의 폭력적인 악에 대처할 수 없다고 단정해 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지, 그저 인간의 삶은 어쩔 수없다고 치부하며 하나님을 향해 고개만 들고 있어야 하는지. 교회 안에 팽배한 잘못된 전통과 죄악, 폭력성, 권위주의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방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말씀하신 선함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함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나도 방관자가 아니었나 싶다. 어쩔 수 없다고, 세상은 그런 곳이라고, 인간은 죄인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냐고, 회복해야 할 선함에 대해 소리치지 못했구나 싶다. 책의 여운이 당분간 계속 될 듯 싶다. 김민석의 <영생을 주는 소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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