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방투어일지 #1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혼자 다니는 게 그다지 나쁘진 않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걸 나열해 보면 혼밥, 혼영, 혼술, 혼카, 혼쇼 정도이다. 아직 내가 해보지 못한 건 ‘혼행’. 외로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여행지에 가서도 SNS나 메신저를 기웃거리며 지인들에게 자꾸만 연락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로이 없이 혼자 자던 자취 첫날, 왠지 모를 외로움이 밀려와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인간은 관계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관계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다.
'혼자서도 잘해요'를 실천하기 위한 첫 시작은 ‘책방투어’ 혼자 여행하긴 힘들어도, 혼자 책방투어는 할 수 있으니… 전국에 있는 책방을 찾아다니면, 혼행도 가능한 내가 되지 않을까?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지만, 그중에 책방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책방은 전국에 있다. 나 홀로 책방투어는 곧 나 홀로 전국투어가 될 수 있다. 둘째, 나만의 여행 테마가 생긴다. 어느 지역에 방문하던 그 지역 동네책방은 꼭 방문해 보는 걸 여행의 테마로 삼아야겠다. 셋째, 책방엔 책도 있지만, 사람도 있다. 책방지기가 누구냐에 따라 책방의 분위기도 다채로울 것 같다. 나 홀로 떠난 첫 책방투어,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
생각보다 책방이 대로변에 있어서 놀랐고, 생각보다 건물이 커서 또 한 번 놀랐다. 창가에는 BTS의 노래 가사가 적혀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간 책방 안에는 김동옥 선생님과 친구분이 책을 보고 계셨다. 쭈뼛쭈뼛 입구에 꽂혀있는 [그림책] 관련 책들을 훑어보고 있으니 김동옥 선생님이 “혹시 책 예약하고 오셨나요?” 하고 다가왔다. ”아, 아니요.” 대답을 하고 옆을 보니 [예약도서] 책 목록이 있었다. 오해할 만도!!! 여러 사람들의 독서노트가 전시되어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방문했는데, 전시는 김동옥 선생님의 2022 독서노트 그리고 직접 읽고 꾸민 약 142권의 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 노트를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용기일 텐데 그 용기와 이런 전시를 기획한 기획력에 전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전시 제목은 [동옥서재전] 읽고 쓰는 사람 김동옥, ‘잘 익은 언어들’의 단골손님, 책방지기가 꼽은 다독왕 김동옥. 69년생이라는 김동옥 선생님은 1991년부터 독서노트를 썼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3년째 이어오고 있는 전시이고, 1월에 전시를 하게 된 이유는 1월이 책방의 비수기이기 때문에 비수기에도 책방에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방지기 이지선 선생님의 빅픽쳐였다. 김동옥 선생님은 내가 조심스럽게 독서노트를 살짝살짝 넘겨보니, 옆에 오셔서 2022 Best 3 선정 도서에 대해서, 그 책에 대한 책편지에 대해서, 그리고 독서노트와 책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책을 좋아하지만, 기록이 잘 되지 않아 올해부터는 독서노트를 꾸준히 쓰려고 하던 중, 중앙일보 신문기사를 보고 세종에서 열심히 달려왔다'는 나의 말에 본인은 매주 수요일마다 꼭 책방에 상주하는데 마침 잘 왔다며 밝게 반겨주셨다. 맘 같아선 자리에 앉아 김동옥 선생님의 독서노트를 읽고 싶었지만, 누군가 나의 독서노트를 한 장 한 장 정독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책 한 번, 독서노트 한 번 번갈아가며 살펴보았다.
김동옥 선생님이 쓰신 기록을 정리해 보면,
1) 독서기록
ㄴ 2022-001~209 형식으로 책 한 권이 끝날 때마다의 감상평을 줄 노트에 기록했다.
ㄴ 월간 독서 결산과 연간 독서 결산을 통해 나만의 BEST BOOK LIST를 작성한다.
2) 오후네시
ㄴ 매일매일 오후 네시에 떠오르는 마음, 생각, 풍경 등을 데일리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ㄴ 보통 그 시간에는 작업실에서 책을 읽기 때문에 여기에도 역시 책 이야기로 가득했다.
ㄴ 최근에 포토프린터기를 구입해서, 사진을 함께 첨부하고 있다고 했다.
3) 책.꾸
ㄴ 책의 앞표지에 ‘책에 대한 소개’ 를 작성한다. (예쁜 메모지와 마스킹테이프, 스티커와 함께)
ㄴ 책을 읽기 시작한 날, 읽게 된 동기, 다 읽은 날을 함께 기록한다.
ㄴ 책꾸를 한 책들은 주변에 선물하기도 하고, 전주독서대전 당시 중고로 판매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책꾸된 책을 선물 받으면, 새 책을 받는 것보다 더 감동받을 것 같다.)
(정말 그 책을 읽고,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에게 준 소중한 책일 테니.)
‘운수 좋은 날’이었나. 마침 내가 방문한 날이 [한겨레 신문사]에서 동옥서재전을 인터뷰하러 오는 날이었다. 나는 그냥 수요일 일정이 비어서 방문했을 뿐인데, 김동옥 선생님도 직접 만나고 인터뷰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건 절대 아니지만, 귀가 뚫려있어서 김동옥 선생님의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궁금했던 내용을 엿들은 내용으로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의미 있었던 부분은 앞으로 질적연구를 하며 여러 선생님들을 면담해야 하는 연구자로서,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인터뷰어의 역할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엿들으며(?) 기자님은 사전에 준비해 온 질문이 아니라 정말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점에 대해 계속해서 물었다. (나중에 기사 나오면 말로 오고 갔던 그 내용들이 어떻게 글로 담겼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지!)
나 어린 시절, 책에 대한 기억을 키워드로 정리해보면 #거실책장 #이동도서관 #학교도서관 이다. 반석동에 살던 시절 (13살~26살) 13년 간, 우리집 거실엔 TV가 없었다. 거실 한 벽면엔 TV 대신 천장까지 높은 책장이 있었고, 그 책장 안에는 백과사전, 전집 등이 꽂혀있었다. 엄마는 한 번씩 “아유, 너네 어릴 때 뭘 그렇게 책을 사다 날랐나 몰라. 다 보지도 않을 거.” (약간 양심에 찔렸다.) 한다. 그럼 난 엄마에게 위로라도 하듯, “아냐! 그래도 공부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백과사전도 찾아보고, 그래도 다 도움 됐어!” 이야기 한다. ”그래도 아빠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다 책에 썼으니… 그래도 니 아빠 대단하지? 군소리 하나 없었어.” ”책 사다나른 보람 있게 우리가 잘 컸으니까 그렇지 뭐~” , “그래, 그럼 됐다!” 하며 대화는 마무리했지만, 나는 부모님 덕분에 책 읽는 게 자연스러웠고,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살던 아파트에는 정해진 요일마다 ‘이동도서관’ 버스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찾아왔다. 어느정도 내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나 혼자 내려가 책을 빌려오곤 했다. 세종시는 동네마다 도서관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이동도서관’이 필요 없지만, 그 때 추억이 떠올라 검색해보았다.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는 ‘이동도서관’ 버스가 동네를 돌고 있는 것 같다. 알고리즘에 떠서 알게 된 [심야 이동도서관] 이라는 책. [시간 여행자의 아내] 저자인 오드리 니페네거 작가가 쓴 그림책이다. 원래는 단편소설이었는데, 그림책으로 재구성하여 출간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림체가 영… 내 취향이 아니다.) 목록에 추가해놓고 한 번 읽어봐야지!
아무리 디지털 사회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다. 도서관도 많이 생기고, 온라인 서점도 활성화 되었고, 전자책도 상용화 되었지만, 그래도 지역마다 특색 있는 동네책방이 있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따스한 온기를 가진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해서가 아닐까? 세종에도 #단비책방 이 있다. 2022년 여름 ‘슬기로운 유치원 생활’ 팀과 함께 다녀왔다. 혼자 한 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도 다녀오지 못했다. #잘익은언어들 에서 사온 6권 다 읽으면, 바로 두번째 책방투어 떠나야지! (이미 한 권 읽었지롱!) 한솔동에도 #비움과채움 이라는 북 커뮤니티가 있긴 하던데, 정보가 많이 없어 가기가 망설여진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네책방. 우리 동네에는 그런 책방이 없지만, 그런 좋은 책방들을 찾아 나랑 여행을 해야겠다. (도서관은 삭막하다, 도서관에는 책-나와의 관계만 있고, 너-책-나와의 관계는 없다. 내가 느끼기엔!) 그리고 그런 책방에서 내가 평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느끼고 배워야겠다.
전주시에서는 ‘전주책사랑포인트 책쿵20’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제도가 있다.
* 도서관에서 책 대여 시, 빌린 책을 반납하면 1권당 50포인트를 지급해준다.
* 서점에서 책 구매 시, 도서 정가의 20%를 할인해준다. 2가지가 궁금증이 생겼다.
하나, 전주는 어떤 도시이길래, 이런 좋은 제도가 있는거지?
둘, 그럼 세종엔… 어떤 제도가 있지?
전주는 책을 읽고 쓰고 즐기는 도서 문화를 확장하며 확실한 ‘책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연계되는 특별한 도서관들로 전국 유일의 도서관 여행지로도 손꼽히고 있다.
출처 : 전북중앙(http://www.jjn.co.kr)
나... 첫 책방투어, 전주로 하길 참 잘했네…? 전주가 ‘책의 도시’ 였다니, 전국 유일의 ‘도서관’ 여행지라니! 그럼 책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런 제도가 있을 만 하지…!
세종은 워낙 도서관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세종에서는 ‘책방(서점) 사업’은 불가할 것 같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서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밖에 나오지 않는다. (책이음, 책나래, 책바다, U-도서관, 희망도서대출 등) 괜찮다. 책방은 다른 지역으로 다니면 되고, 세종에서는 도서관을 열심히 다니면 되지, 뭐!
아무튼, 이렇게 좋은 제도의 혜택을 타지에서 온 나에게 기꺼이 나누어주신 김동옥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나 왜 갑자기 독서노트 쓰게 됐지? 를 생각해봤다. (언제나 나의 첫 시작은 ‘갑자기 꽂혀서’이다.) 먼저 마음이 심란하고 머리가 복잡해서 책을 읽어야 했다. 책 읽는 동기가 아무리 강해도 집중력은 단숨에 생기는 게 아니었다. 집중하며 읽기 위해서 책에 밑줄을 그었고, 밑줄을 그어봤자 다시 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기록을 해두어야 했다. 그래서 인스타에 #독서노트 #독서기록 이라는 해시태그로 많은 게시물들을 봤다. 그 중에 내 취향에 딱 맞게 독서기록을 하고 있는 ‘그리밍’이라는 인플루언서가 있어, 일단 따라해보기로 했다. 똑같은 노트를 구입하고, 똑같은 양식으로 첫 기록을 남겼다. 한 권을 읽으니, 한 페이지가 채워졌다. 꽤나 마음에 들었다. 관종의 성향 상, 남들의 시선이 실천력에 도움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독서노트를 올렸고, 칭찬의 댓글과 응원의 댓글로 다음 책을 바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책이 술술 읽힐 땐, 표시만 해두고 나중에 기록하지만 도저히 책이 안 읽힐 땐, 책을 덮지 않고 독서노트를 쓰기로 나만의 원칙을 세우니 필사를 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집중력 만렙이 되어 있는 멋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난 멋져, 난 최고야!) 에세이 도서는 주로 필사와 감상 페이지로 끝이 나지만, [평균의 종말], [두번째 지구는 없다]와 같은 책들은 더 알고 싶은 내용들이 있어, 한 페이지를 더 할애해 내가 더 깊이 알아야 할 내용들을 적어두었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날이 오겠지! 김동옥 선생님은 1991년부터 32년간 (내 나이 만큼) 독서노트를 써오셨다. 내 나이 32살, 내가 32년간 독서노트를 꾸준히 쓴다면… 64살… 퇴직 했을 나이네. 내 목표는 퇴직 때까지! 열심히 읽고! 열심히 느끼고! 열심히 기록하기! 일단 올해의 첫 핑크 독서노트부터 잘 기록해봐야겠다.
1) 오늘도 반짝이는 너에게
- 육아 휴직 중 고민이 많은 은혜언니에게 선물한 책
2)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인스타 스토리로 추천도서 받던 중, 변지윤 선생님이 추천해준 책
- 가벼이 읽을 내용은 아닌 것 같아 벼르다가 마침 한 권 있길래 구입한 책
3) 마음 쓰는 밤
- 글을 잘 쓰고 싶어 구입한 책
4)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김동옥 선생님의 2022 BEST 3 도서 중 한 권
- 나머지 두 권 : 아버지의 해방일지,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
5) 책방뎐
- 전주책방 ‘잘익은언어들’ 책방지기님 이지선 작가님이 쓰신 책방 이야기
6) 아무튼, 메모
- 아무튼 시리즈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주제가 메모라면 구입해야지!
- 구입하고 보니, ‘정혜윤’ 작가님 책이었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의 저자)
7) 랜덤북스 - 서류봉투 겉면에 있는 추천 글귀만 보고 구입한 책
‘동옥서재전’을 찾아온 나에게 책방지기 이지선 작가님과 김동옥 선생님은 “내년에 또 놀러와요 ^^”하고 배웅해주셨다. 그 분들로서는 그 인사가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인사였겠지? ”네!”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니요, 저 조만간 또 올거에요!’ 했다. 진짜다, 새로운 책방을 다니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이 좋은 곳을 또 오면 또 새로운 행복과 감동이 찾아올테니… (그나저나 두번째 방문도 혼자 하려나? 아무 상관없다! 책방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내 독서노트를 보시고, 김동옥 선생님의 친구 분이 (대전에서 오셨다고 했다) ‘멘탈을 바꿔야 인생이 바뀐다’ 독서기록을 보고 심리학에 관심이 많냐고 물어보셨다. “그렇긴 한데, 원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기도 하고… 새해 첫 책이라 자기계발서를 가장 먼저 읽었어요 ^^”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면, 사는 게 더 힘들어질 때도 있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책은 고루 읽는 게 좋아요.” 편독이 심한 나에게 (특히 문학을 읽지 않는) 꼭 필요한 조언이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여행이 하고 싶어 떠올린 ‘책방 투어’ 나홀로 첫 책방투어는 성공적이었다. 좋은 인연을 만났고, 좋은 시간을 선물받았다.
그래서 정리해보는, 나홀로 책방투어 약속 몇 가지.
1) 처음 방문하는 책방은 꼭! 나 혼자 간다.
2) 책을 구입할 때는, ‘계획’과 ‘즉흥’을 고려한다.
- 책방을 가기 전에 구입하고 싶은 책 생각하고, 책방에 (운좋게) 책이 있을 경우 구입한다.
- 책방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내 마음에 쏙 든 책을 구입한다.
3) 책방지기 님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4) 다녀온 뒤, 책방일지를 작성하고 SNS에 공유한다.
5) 함께 가고 싶은 사람과 함께 책방에 재방문을 한다. (언젠가는)
6) 다음 책방투어는 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다 읽었을 경우, 떠난다.
다음 책방투어를 하려면, 6권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 ^-^
부지런히 독서할 수 있는 나만의 약속까지…완!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