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타운 - Queenstown
지나간 대다수의 여행지들을 떠올릴 때면, '추억보정'이라는 필터가 덧씌워져 나타난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을 때, 오감으로 되살아나는 그 감각이 불쾌하다는 뜻이 아니니까. 오히려 기분 좋은 감각들이 몸을 휘감고, 그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그곳들이 그리워진다는 것이 괴로울 뿐, 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 기억과 감각을 여러 번 타고 올라가면, 헷갈릴 때도 있다.
반복해서 꺼내다 보니, 마치 추억보정 필터가 여러 번 덧씌워져, 원판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장면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왜곡되어서 기억에 남았다고 여겨지는 이미지를 고르자면, 퀸즈타운의 밤하늘이다.
2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야 나타나는 기억. 그리워도 다시는 볼 수 없는 노부부를 포함한 6명의 가족들은, 차를 타고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 시작해서 서남쪽으로 향하는, 뉴질랜드의 남섬 여행을 하고 있었다.
체리와 꿀의 달콤한 맛. 찬란한 하늘. 기분 좋게 시린 빙하와 시냇물. 텁텁함이 존재하지 않는 공기. 웅장한 협곡에 울리는 뱃고동소리.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그 여정의 기억 속에, 불쾌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대부분은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고, 처음 마주하는 감각이었다.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로 뉴질랜드가 왜 뽑혔는지 알 것 같은, 판타지적인 감각들을 전달해 주는 장소들이 연속되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 계속되어도, 일정이 빡빡하면 피곤해진다. 차가 멈췄다 달렸다를 반복하는 일이 계속되었고, 원체 차를 타는 것을 힘들어하다 보니, 퀸스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방전 상태였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라, 저녁은 간단하게 해결했다. 아침도 거하게 먹고 싶은 생각들이 없었는지, 마트에서 빵과 치즈등을 사 와서 숙소에서 해결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겸사겸사 동네를 돌아보게 된다.
한국은 겨울이었지만, 남반구는 여름이었던 그 시간. 늦은 저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스름이 남아있었다. 극으로 갈수록 해가 늦게 진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가족은 신기했다. 마트 안에서도 마찬가지.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을지언데, 무엇이 그렇게 새로웠는지 진열장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새롭다는 것은 긴장감도 함께 불러온다. 동양인인 우리를 관찰하는 입구에서 마주친 사람들. 진열장에서 스쳐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결재를 도와주며 조금은 다른 표정으로 바라보는 직원들. 작은 동네다 보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가오는 익숙하지 않은 긴장감. 지금이라면 편안하게 넘길 터이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어서, 그 긴장감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들의 대화 주제로 남아있다.
새로움과 긴장감이 존재했던, 장 보는 시간 뒤의 바깥은 완전히 어둑해졌다. 장바구니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호수가를 지나쳤고 조금 지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매달려 있어.
그 하늘은 기존에 보던 하늘과 달랐다. 별이 많이 보이는 곳에 가더라도, 보통은 하늘에 박혀있다는 느낌이 들뿐이었는데, 그곳에서 본 하늘의 별은 연인에게 속삭이는 '별을 따다 줄게'라는 문장이 이해되게 만드는 그런 객체였다.
어둠 속에 실을 매달아 별을 단다면, 그런 모습이 될 것 같은. 숫자도 셀 수 없어서, 별을 매단 실로 하늘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모습. '주렁주렁' 외에는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풍경.
긴장감과 익숙하지 않음 뒤에 만난 장면이어서 더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그 하늘은, 마치 색인처럼 내 기억의 한 꼭지가 되었다.
20살이 넘어 혼자 여행하기 시작한 뒤로, 그 밤하늘을 찾아 헤맸다. 할슈타트에서 만난 별들도, 제리 꼬아 꼬아라에서 바라봤던 바다 위의 별들도, 바이칼 호수에 비치는 은하수 옆의 별들도, 사하라에서 마주친 밤하늘도 멋졌지만, 그 기억 속의 강렬함에 미치지 못했다.
몇 년 후, 한 예능에서 나타나 유명해진 퀸스타운의 영상 속 모습에서도, 내가 바라본 하늘과는 다른 하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내 기억 속의 퀸스타운의 별은 나만 가지고 있는, 나만의 필터가 덧씌워진 풍경이라는 것을. 그 후에 봐왔던 밤하늘이 그때의 밤하늘보다 더 아름다웠을 수 있지만, 기억을 넘지 못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나쁘지 않다. 그 기억 속의 장면 덕분에, 정말 많은 별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별들조차 보정하여, 더 아름다운 장면으로 추억 속에 남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