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에서 마주한 UI가 주는 혼란스러움
UX는 User Experience의 줄임말로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함에 있어 사용자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UX 디자인은 그런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주로 웹 서비스나 모바일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있어 그 사용을 편리하게 한다는 것으로 축소되어 사용되곤 하는데요, 오늘은 그 분야를 조금 넓혀, 화면이지만 웹이나 모바일 서비스가 아닌 차량용 네비게이션과 관련된 사용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며칠 전, 친구와 차량을 대여해 드라이브를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직 운전이 미숙한 친구였기에 제가 옆에서 네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알려줘야 했는데, 다음과 같은 안내로 인해서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경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차선마다 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알려주는 UI에 있었습니다. 1과 2라는 표시가 되어있고, 2에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가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1이 먼저 지나가는 곳일까요, 아니면 2가 먼저 지나가는 곳일까요?
사진을 자세히 보신 분은 알아차리셨겠지만, 2가 먼저였습니다.
2라는 표시가 지도 상에 나타나기 전까지 초보운전인 친구와 저는 우회전을 400m 남겨둔 상황에서 안절부절하며 "나도 모르겠어!"를 외쳐야 했답니다.
여러분은 네비게이션 화면을 보면서 '예쁘다.' 또는 '모션이 끝내준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저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요. 네비게이션은 운전을 하고있는 운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하기 떄문에 도로 상황을 모두 지켜보면서도 슬쩍 네비게이션을 쳐다만봐도 길을 알 수 있도록 눈에 잘 띄게 만들어야합니다. 따라서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일반적인 웹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할 때와 달리 컨텐츠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한 상태에서 디자인해야합니다. 그래서 컬러도, 타이포도 눈에 띄게 강조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예쁜 UI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만약 미적인 아름다움만 생각해서 작고 예쁜 손글씨로 된 타이포와 파스텔톤의 아이콘을 사용한다면 길을 잃는 운전자가 더 많아질 지도 몰라요.
이러한 이유로 인해 네비게이션의 UI는 아름다울 순 없지만(?) 주로 크고 알아보기 쉬운 아이콘과 텍스트, 그리고 선명한 원색의 컬러가 자주 사용됩니다. 위의 사진에서도 파란색은 앞으로 가야하는 길, 그리고 나머지 중요한 정보는 노란색으로 표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헷갈렸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단계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1과 2라는 숫자 표시와 위에서 아래로 읽는 습관으로 인해 1이 지도 상에 먼저 나타나고, 2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에 표시된 하이라이트로 인해 2가 더 중요하며 가까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UI가 나타나게 된걸까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전체적인 UI에서 강조 컬러로 노란색이 많이 사용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당 네비게이션에서 노란색 UI는 '지금 또는 곧 닥칠 중요한 것'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강조 컬러가 그저 지도 상 표시를 하기 위한 번호에 불과한 숫자와 함께 사용되면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1과 2를 동시에 마주한 사용자는 당연히 1이 먼저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2에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음으로 인해 뭐가 먼저인 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으나, 주행 중 먼저 만나게 되는 교차로를 2로 표시하고, 이후에 나타나는 교차로를 1로 표시하면서 빚어진 혼란인거죠. 지금 생각해보니 교차로에 매겨진 번호를 바꿀 수 없어서 2에 하이라이트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과정이 당장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에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길을 잘못 드는 일은 없었지만, 좀 더 직관적이고 편안한 사용자 경험을 위해 명확한 UI가 필요해보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안으로 해결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먼저 마주할 순서대로 교차로 번호를 매긴다.
교차로에 1과 2라는 번호 매김을 없애고, 먼저 마주할 교차로를 하이라이트한다.
당장 마주한 교차로만 화면에 표시한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정말 자주 사용하는 네비게이션 하나에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사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불편한 UX가 존재합니다. 디자이너가 느끼기엔 작은 변화일지라도 사용자가 느끼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