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기술
올해 예정되어있던 수많은 일들이 거의 다 취소된 뒤,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 - 지원서 쓰기, 온라인 강의 준비, 유튜브 편집 - 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택 근무를 하는 남편 또한 집에 붙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24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래도 원체 자주 싸우지 않는 두 사람이라 봉쇄중에도 한 두 번의 토닥거림 외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코로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심리적으로 둘 다 조금씩 예민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부부 싸움이 그렇듯이 나중에는 왜 싸웠는 지 기억도 안 나는 일들로 말다툼을 하곤 하는데, 문제는 싸우고 나서 갈 곳이 없다는 거다.
예전에는 홀로 시내의 카페에 가서 혼자 예쁜 음식을 시켜먹곤 했었다. 남이 만들어준 예쁜 음식을 먹고나면 마음도 예뻐져서, 그래도 평화롭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화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갈 곳이 없다. 나는 아직도 실내에 들어가 앉아 뭔가 먹거나 마시는 것을 조심하고 있고, 이 좁아터진 도시에는 밖에 앉아서 마실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카페/레스토랑은 5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이 펍이다.
혼자 펍에 앉아 기네스를 시켰다. 까만 맥주를 잘 안마시는데 속이 너무 시커매서 뭔가 더 찐득하고 새까만 뭔가를 들이부어 그 타들어간 속을 감춰야만 할 것 같았다. 동양 여자 혼자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다들 힐끔 힐끔 쳐다본다. 어쩌라고. 이 땅에 산 지 6년이 넘어가는 나는 이제 이런 시선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북영국에 살면서 배운 가장 큰 삶의 태도는 "don't give a shit (신경쓰지 않는)" 이다. 한 잔을 다 마시고 남편을 불러서 같이 한 잔 더 마셨다. 그리고 가족이 아니라 절친으로서 왜 내 속이 타버렸는 지 털어놓았다. 맥주 두 잔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화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었다.
인간 관계가 힘들 때에는 가상의 드론을 띄워 그 상황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면 스스로가 엄청나게 하찮아지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정말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나중에 기억도 나지 않을 문제 때문에 서로 힘들 게 살 일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가족이기 이전에 남이고 친구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