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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n 30. 2024

임무형 지휘에서 발견한 문제해결 방법론

상급자의 의도라는 개념을 아시나요?

보병학교에서 처음으로 지휘라는 개념에 대해 배운 지 벌써 5년이 넘게 흘렀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때쯤 지금 몸을 담고 있는 IT업계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과 그때 배운 방식이 약간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군의 방식이 더 괜찮은 부분이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사실 군문화나 문제해결 방식은 구닥다리 탑다운 문화로 은근히 하대 받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론만 놓고 보면 매우 훌륭하다.


그중에서 오늘은 임무형 지휘, 작전명령이라는 군 용어를 통해 문제해결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물론 군대 이야기지만 꽤 흥미로운 이야기니 뒤로 가기 누르지 말고 조금만 더 읽어보자.


임무형 지휘

임무형 지휘(Mission command)라는 용어에 대해 아는가? 보병장교를 해봤다면 단언컨대 알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모를 것이다. 굉장히 유명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 교범에 나오는 자료라 구글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나무위키에서 정의를 가져왔다. 

임무형 지휘는 불확실성이 뚜렷한 전장에서 일선 지휘관에게 수단을 위임하고 행동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하며 달성 가능한 임무를 제시함으로써 자유롭고 창의적인 전술 행동을 보장하는 지휘통제 접근법 또는 지휘철학을 일컫는다.

아마 군에서 명령이라는 용어는 까라면 까 식의 Top-Down 업무문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육군의 지휘방식인 임무형 지휘에서는 그렇지 않다. 위의 정의에서도 보듯이 "위임"받은 지휘권을 통해 행동에서 "자율권"을 행사하여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는 지휘철학이다.


예시

예를 드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가령 이런 식이다.

0월 0일 00시까지 000을 점령하라. 단, 공격하는 과정에서 아군 피해가 최소화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허접한 명령은 떨어지지 않는다. 작전명령 문서는 굉장히 엄격하게 작성된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예시 명령을 보면 상급자는 명령을 받은 자에게 목표를 부여한다. 주목할 점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공격루트로 침입할지, 3명/5명/2명으로 나눠서 침입할지, 괴성을 지르면서 돌진할지 야음을 틈타 몰래 공격할지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설계 -> 결심 -> 실행한다. 


 다만 그 자유로움에 약간의 단서가 있다면, 상급자의 의도가 담긴다. 위 예시에서는 "단, 공격하는 과정에서 아군 피해가 최소화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적힌 부분이다. 이 상급자의 의도라는 개념은 임무형 지휘 그리고 후술 할 작전명령에서 굉장히 중요한 용어다. 왜냐면 자유로움에는 방종, 혼란, 오용 등의 사이드이펙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억제해 주는 장치가 상급자의 의도다. 어느 정도 틀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추구하게 만들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이게 전부다. 꽤나 단순한 개념이다.


이제 이 개념을 조금 더 구체화해 보자. 작전명령이라는 용어를 설명할 건데, 임무형 지휘에서 상급 지휘자가 명령을 하달할 때 쓰이는 템플릿이라고 보면 된다. 


작전 명령

작전 명령은 임무형 지휘에서 상급 지휘자가 하급 지휘자에게 명확한 의도와 목표를 전달하기 위한 문서다. 이 문서를 작성하고 실제 작전에서 전투원들에게 이 명령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행위를 명령하달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점은 작전명령은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언부언하거나 너무 길어 문맥을 놓쳐 이 문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가 발생하면 안 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게 이 문서 한 장으로 결정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내용만 들어가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작성되어야 할 문서다. 


 그래서 작전명령에는 5개의 꼭 들어가야 하는 항목이 있다. 그렇다고 저 5개만 넣으면 다른 항목도 추가해도 되느냐, 그것도 안된다. 저 5개만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작전명령 5개 항이라고 부른다.


작전명령 5개 항

작전명령을 하달할 때에는 아래 항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1. 상황(적, 아군) : 현재 상황 (아군, 적군 상태, 최근 동향 등)

2. 임무 : 해결해야 할 문제

3. 실시 : 구체적인 실행방안

4. 전투근무지원 : 협조사항

5. 지휘 및 통신 : 작전 간 지켜야 할 지휘체계나 통신규칙 등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상황

  a. 최근 2일 간 적 몇 명이 후퇴경로를 물색한다는 첩보가 입수됨

  b. 어제 적 진지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다수 청취함

  c. 아군 지원부대가 금일 오전 도착하여 전투준비 중

2. 임무

  a. 00에 있는 적을 공격해서 그곳을 점령할 것

  b. 상급자께서는 안전하게 실행해서 최대한 병력을 잃지 않길 원하심

3. 실시

   a. 3개 조(공격 1, 공격 2, 지원 1)로 나눠서 공격한다. 

  b. 공격 1조는 공격 2조의 엄호 아래 루트 A로 신속히 이동하여 민가 B 뒤에 숨는다.

  c. 지원 1조는 공격 2조의 엄호를 받으며 TNT를 설치한다. 

   d....

4. 전투근무지원

    a. 아군이 가진 화력 좋은 대포 하나랑 사수 2명을 붙여주겠다. 

5. 지휘 및 통신

  a. 내가 죽으면 1조 장이 대신 임무수행한다.
  a. 통신은 000 주파수에서 한다. 

   b. 아군이면 A라고 말했을 때 B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게 정말 러프하게 작성한 작전명령이다. 이렇게 작성된 문서 한 장으로 현재 어떤 상황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지, 실행하는 동안 발생할 돌발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할지가 모두 적혀있다. 


그리고 이 명령을 하달받은 각 조장들은 민가에 숨기나 TNT 설치하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틀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실행하게 된다. 


현대의 업무방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와 굉장히 유사하다. 문제해결이라는 목적과 꼭 필요한 내용만 작성한다는 보고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일까. 사용하는 언어나 도구, 접근 방식, 양식 등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많이 느꼈던 내용이지만, 이렇게만 작성해도 이 업무에 대한 모든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모른다면 누구에게 물어볼 지에 대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구체적인 공통점

위에서 언급했듯이 딱 들어맞진 않아도 맥락은 일치한다. 각각을 한번 대조해 보자. 


1. 상황 -> 도입(Introduction)이나 배경(Background)이라는 항목으로 문서 최상단에 들어간다. 우리가 왜 , 어쩌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지. 이걸 하면 뭐가 좋아질 것인지 등을 서술한다. 

2. 임무 -> 문제정의해결해야 할 문제 등으로 표현되는 항목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기술한다. 

3. 실시 -> 현업에서는 보통 액션플랜, 의사결정이라는 항목에다가 넣는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지에 대한 내용이다.

4. 전투지속지원 -> 협조 사항 항목으로 넣을 수 있다. 보통 목적중심조직에서는 자주 쓰지 않고 기능중심조직에서는 타 부서와의 협업이 필요한 경우 많이 넣는다. 조직이 커지면 자주 등장하는 항목이기도 하다. 

5. 지휘 및 통신 -> 소통 채널이나 관련 문서 항목으로 기입한다. 슬랙에 스레드를 하나 만들거나 위키에 문서를 하나 만들고 그 링크를 나열하는 형식으로 작성한다. 이 보고서의 후속 논의나 관련 내용을 알기 위해 필요한 소통 창구를 전부 기입해서 업무 진행과 히스토리 남기기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차이점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업무방식 트렌드를 보면 항목들이 간소화되고 보고서 문화도 많이 사라지고 있어서 본질은 남고 형식이 사라진 부분도 있다. 그중에서 다시 원복 되었으면 좋겠는 차이점 위주로 말해보고 싶다. 


1. 상급자의 의도

자유롭게 일한다는 미명하에 권한도 책임도 없는 실무자가 how to를 결정하고 실행하게 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막막함과 부담감을 느낀다. 결과물의 퀄리티는 물론이고, 막상 잘했어도 의도와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심적 업무 스트레스까지 줄 수 있는 안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상급자의 의도는 잘 쓰면 굉장히 편한 도구다. 일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런 마음이 덜하다. 요즘 보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항목이긴 하지만 아직도 군 작전명령서에는 상급자 의도 차상급자 의도까지 표기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이다. 


2. 협조와 통신

요즘엔 보통 2. 임무3. 실시 항목 정도가 많이 차용되고 나머지는 회의록 형식으로 많이 적는 것 같다. 짧은 보고서보다 히스토리를 통해 맥락을 파악하고 액션 아이템들을 추적관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어쩌면 그게 옳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슬랙이나 지라 위키 같은 소통 및 문서를 공유하고 업무를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자연스럽게 도태된 항목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전중에도 통신할 수 있는 채널들은 있다. 무전기, 신호줄, 수신호 등 방법은 많다. 다만 정작 명령서에 기입되고 전파되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언제 소통할지다. 

- 주파수는 000에 맞춘다.

- 23시 넘어서는 신호줄만을 활용한다. 

- 암구호는 문어 00, 답어00다.

-...


우리의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필요하다. 

- 의사결정에 대한 회의록은 이 문서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 비용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 슬랙 스레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협조도 마찬가지다. 너무 문제해결에만 집중한 나머지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유관부서와의 소통이 누락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명확하게 표기해줘야 할 사항이다. 

- 00팀 FE개발자 000님이 0월 00일부터 0월 00일까지 대행해 주기 함

- 00팀 PD리소스 확보되는 데로 000 채널로 연락 주시기로 함. 

- 법무검토 보고서는 ETA 0월 00일로 전달받음(000님께 확인 필요)

-...


이렇게 명확히 기재되어야 할 항목들이 맨 아래 기타, 비고 섹션에 처박혀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좀 아프다. 당당히 중요한 섹션에 등재되어야 할 내용들인데 말이다. 



마치며

군에서 쓰던 방법론들이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회 나와서 여러 생산성 측면에서 유료 툴들을 쓰며 세련되게 일하다 보면 뭐 그렇게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펜 하고 종이 혹은 타자기 하나 가지고 생살여탈권이 수반된 업무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왔던 선조들이 만든 검증된 방법론 중 하나다. 


임무형 지휘는 전장이라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휘자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지휘체계이지만 여러 단점들에서 기인한 실효성 때문에 유야무야 개념만 전승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키지 않은 거 했다고 몇 번 혼나다 보면 뭐..


하지만 개념 자체로도 배울 점이 많은 체계이고 그 구체적 산물인 작전명령과 함께, 현업에서 활용되는 업무방식과 보고서와 비교분석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차이점으로 꼽은 점들을 실제 업무에서 써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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