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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ee May 01. 2024

갈팡질팡 치매동반기

7. 기억 키움 교실 운동회

어느 날 엄마를 모시러 센터에 갔는데 엄마와 같은 교실에서 나오는 두 분을 보았다.

한 분은 아마도 육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차림새는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분처럼 보였고 또 한분은 육십 대 후반에서 칠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늘 노트북 가방을 들고 다니는 점잖아 보이는 분이었다. 두 분을 가끔 볼 때마다 외견상으로는 아직 상대적으로 우리 엄마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분들이 이곳에는 왜 다니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은 두 분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분이 다른 분께 질문을 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일요일인데요"

"아 그렇군요"

이 대화를 들으면서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부조리극 공연의 한 장면 같았다.

평일에 두 분이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이런 대화를 정말 평온하게 한다는 게 너무 기가 막혔다. 가족들이 이런 경우에 도대체 어찌 반응을 할까? 내가 들어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은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말하자면 엄마의 동급생인 분의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분은  선생님으로 은퇴를 하셔서 오후에 센터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신다고 한다. 센터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 부인은 앞으로는 매일 마중을 나와야 한다고 하신다. 며칠 전에 남편 분이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도중에 내릴 곳을 지나쳐서 귀가를 못하는 바람에 아마도 엄청난 고생을 하신 듯하다. 그 고생은 내가 여러 번 해봐서 그 심정이 너무도 이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즈음의 증세를 보일 때 가족들이나 보호자가 가장 고생이 심한 때 인 듯하다.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고 희망을 놓기도 힘든 때 이럴 때 실종 사고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도구가 위치추적기나 위치를 공유하는 앱이다.


이런 분들을 데리고 운동회를 한강 고수부지에 한다고 하니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서울시에 있는 센터가 모두 모여서 한다고 하니 평상시에 우리 같이 센터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주말이라도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다. 엄마를 모시고 정해진 고수부지에 도착을 했다.

우리 센터의 참가자들도 보호자 합해서 스무 병 남짓해서 제법 한 대오를 이루고 있었다.

주요 인사들의 인사말을 마치고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엄마가 참가할 수 있는 운동은 줄 서서 고수부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그날은 날씨도 좋고 한강에는 물도 유유히 잘 흐르고 꽃도 많이 피어 있어 풍경이 예쁜 날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보호할 대상과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손을 잡고 이렇게 평온하게 걸어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철들고는 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필요에 의해서 손을 잡는 것, 부축이나 이런 것 말고 그냥 손을 잡고 한가하게 걸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모녀 관계가 좀 드라이하기는 하지만 의외의 깨닮음이었다.

엄마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걸 싫어하셨다. 즉 모녀간에 수다는 없다는 말이다. 나는 내 딸과는 그러지 말아야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여보,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우리 일행 중의 한분이 외치는 소리였다. 일행 중의 한 남자분이 대오를 이탈해서 꽃 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 분이 기억 키움 교실에 나오는 분이고 그 부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보호자로 참석을 한 것인데 남편이 예쁜 꽃을 향해서 돌진하는 것이다.

그냥 예쁜 물건을 향해서 직진하는 본능이 발동한 것인데 그 부인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게 되고 또 소리를 지르게 되니 사람들이 쳐다보니 더 당황하고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걸은 길은 한 이십 분 정도가 다였는데 그분이

줄을 이탈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앞으로 걸어가면 또 새로운 예쁜 꽃이 있으니 다가가서 보고 싶은 마음에 또 꽃을 향해서 가고 그러면 부인은 또 남편을 따라가서 다시 줄로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물론 이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걷기가 끝났을 때의 그 부인의 고단한 얼굴과 끝났다는 안도감이 보였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부인은 걷지 말고 남편과 꽃구경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운동회였을 싶다. 우리는 쓸데없이 정해진 일정에 너무 충실하거나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좀 늦게 가면 어떻고 건너 뛰어간다고 뭔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던데 나름 개인의 사정에 따라 조정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 모녀는 무사히 운동회를 마치고 티셔츠 두벌과 모자 두 개를 기념품으로 받아서 귀가했다. 이때만 해도

엄마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잘 걷기도 하셨다.

우리 엄마는 자기 확신이 강한 분이어서 누가 뭐라고 하던지 보건소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시고 귀가 시에는 사계절을 한결 같이 보건소에서부터 걸어서 오신다. 그 걷는 것이 자신의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버스를 타고 오시라고 해도 항상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걸어 다니셨다. 심하게 길을 잃고 헤매시기 전까지.

엄마의 확신은 사실 맞는 이야기였다. 그만큼은 걸어서 다니셔서 그 정도의 근력을 유지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걷지 못하게 되니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시 깨닭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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