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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억

by shlee

요양원 생활은 하루 종일 함께 하지는 못하니 일일이 알 수는 없었다.

하루 세끼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

간단한 운동 시간.

퍼즐 맞추기, 단어 연결하기, 숫자 공부 등의 활동시간.

점점 쇠약해지는 엄마를 보면서 어쩌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었다.

결국엔 태어날 때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태어날 때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숨쉬기, 삼키기 정도인 듯하다.

결국엔 마지막에 남는 기능도 그 정도인 듯하다.


인생이란 어떤 정점에서 천천히 내려와서 결국엔 시작했던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그럼 엄마의 인생의 정점은 어디였을까?

모르겠다.

물리적인 나이의 정가운데 지점을 정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본인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를 생각해야 하는 건가?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했던 때를 생각해 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주 월요일 1주일에 한번 엄마를 면회 가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아침에 아이들이 전부 집을 나가면 나는 30분 정도 운전을 해서 엄마에게 간다.

가는 길은 같지만 계절마다 거리의 풍경은 바뀐다.

어떤 때는 벚꽃이 피어 있을 때도 있고 비가 엄청 오는 여름 날도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과 더운 계절에는 바나나 우유, 찬 바람이 불면 유자차에 꿀을 잔뜩 넣어서 더 달게 만들어서 작은 보온병에 담아 간다.

엄마는 유난히 단 음식을 좋아하셨다. 커피 프림 설탕 비율이 1:2:3 이였을 정도였다. 바나나 우유도 좋아하셨다.

면회 시간은 30분.

처음 요양원에 가셨을 때는 혼자서 케이크를 드실 수도 있고 컵으로 차를 드실 수도 있었다.


면회실에서 케이크를 한 조각 다 드시고 나면 나만의 개별 테스트가 시작된다.

핸드폰에 있는 식구들 사진을 보여준다.

딸 사진.

엄마에게는 손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묻는다.

"엄마, 누구야? "

엄마는 빙긋이 웃기만 하지 대답을 안 한다.

하긴 눈앞에 있는 딸도 못 알아보는데 손녀는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집에 계실 때 손녀를 만나도 실은 누구인지는 몰랐다. 그냥 약간의 친근감이 있었을 뿐이었다.

증손자들 사진을 보여주면

"이쁘다"

사진을 쓰다듬기는 하지만 누구라고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냥 아이들이 이쁜 것이다.

외 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니

"아버지"

하고 대답을 하셨다.

나는 진짜 놀랐다.

외할머니의 사진을 보곤

"엄마"

어렸을 때 기억만 남아 있다고는 짐작을 하고 있기는 했다. 자신이 낳아서 길렀고 가장 오랜 세월을 같이 산 딸도 못 알아보는데 아버지를 알아보다니 충격적이었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어머니 보다 아버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두 분을 다 알아봤지만 나중에는 외할아버지만 기억하셨다.

외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사진으로만 뵈었다. 외 할머니는 내가 이십 후반일 때 돌아가셨으니 엄마도 당신의 엄마랑 산 시간이 더 오래지만 기억에는 아버지가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친적들과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엄마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외동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동네에서 아마도 제 나이에 소학교에 입학한 여자는 엄마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보자기에 책을 담아왔는데 엄마는 일본에서 가져온 란도셀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창피했다고 했다. 더구나 엄마는 무지하게 공부를 잘했다고 하니 외 할아버지는 엄마를 귀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 엄마는 신문물을 받아 들려서 시대를 앞서 가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무척 컸었을 듯하다.


외 할아버지는 조금 특별한 분이긴 하셨던 거 같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셨는데 외 할머니의 기억에서는 생활에 보탬이 되는 일보다 주로 정신적인 일에 더 신경을 쓰셨던 거 같다. 그 전쟁통에 피난을 가서 먹을 것도 없는 형편에 신문을 구해서 보셨다고 외할머니가 흉을 보던 생각이 났다. 어찌 보면 험난한 상황에서 생활력이 없는 분이었을 것이다. 생활비를 벌기위해서 노동이라도 한다는 의지는 없었거나 노동에 능력이 없는 유형이 아니였을까?

어려서는 그냥 흘려듣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소식을 알아야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외 할머니한테는 당장 자식들 입에 들어갈 밥알 한 톨이 더 귀했을 수도 있었다. 엄마는 현실적으로 사는 엄마보다는 이상적인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더 컸었나 보다.

아무튼 엄마가 마지막까지 기억한 사람은 당신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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