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생이 제일 반짝였던 때는 언제 였을까?
어쩌면 내 학창 시절이 엄마의 인생에서 젤 반짝였던 날들이었을까?
나는 10대 후반, 엄마는 40대 초반이였을 그때가 가장 편안한 시기였을까?
이런 생각은 내가 엄마를 내 엄마로만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록 전후의 어려운 시절이지만 빛나는 청춘인 20대 일 수도 있다. 아니면 풍부한 물질적 환경에서 사랑받고 커가던 10대 시절일 수도 있다. 엄마는 황해도 곡산인 고향이야기를 가끔씩 했었다. 그 시절 엄마의 오빠들의 결혼 잔치를 집에서 하던 이야기, 들판의 벼가 익어가서 황금들판을 이룬다는 이야기 속에서 배어나오던 그리움이 느껴지곤 했었다.
내가 10대였을 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보통의 정말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넉넉하지도 않지만 구차한 삶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전에는 나는 우리집은 엄마의 힘으로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엄마는 집안 살림을 주도적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지 경제적인 능력은 크게 없다는 걸 아버지가 될아가산 후 몇년의 경험으로 알게되었다.
그때는 겨울이 되면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집이 많았다.
집 지하에 보일러 실이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연탄이 장벽을 이루는 때가 온다. 연탄을 치우러 오는 아저씨들 오기 전에 담장 밖으로 연탄을 내놓아야 하는 인력 동원에 중학생인 나도 동원이 됐었다. 예전엔 집집마다 담장에 붙여서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 배출구가 있었다. 그 옆에 만리장성 마냥 연탄재를 쌓아 놓는 일이 우리의 일이었다. 그 동원령이 내리는 일요일은 식구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지하실에서 담장 밖으로 연탄재를 날라야했다.
연탄재를 가지러 오는 아저씨들이 오시면 엄마는 음료나 간단한 간식 같은 것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명절 때면 작은 선물을 준비 했다가 전해 주셨다. 어린 내 눈에도 대단한 물건은 아닌 거 같았다. 장갑, 머플러, 양말, 수건 같은 생활 필수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매일 아침에 오는 우유 배달 아저씨, 신문 배달은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했던 것 같다. 일로 집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지만 소소한 선물을 챙기는 모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도 신혼의 어떤 때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 실제로 거의 만날 일이 없어서 누군지 잘 모르는 신문 배달하는 분, 청소 하는 분 정도 였는데 막상 준비를 하려니 참 어려운 일이었다. 뭘 해야 좋을지 어떻게 전달을 해야하는 건지 시작부터 막막하기만 했다. 벼르고별러서 마음만 먹다가 결국은 못하고 말았다.
실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참 알기가 어려운 듯하다. 누구나 엄마에 대한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기억을 다 가지고 있을 듯하다. 나는 비교적 엄마에 대해서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엄마가 나에게 좋은 점을 보이려고 노력을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날이 가면 갈수록 엄마의 상태는 나빠져 갔다.
마치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점점 말라서 부스러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걷는다는 것 혹은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몸을 움직여야 식욕도 생기고 소화도 잘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상식적인 일인데도 이런 상황이 되니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요양원에 가셨을 때는 그래도 혼자서 음료수 컵을 들고 마실 수는 있었다. 이제는 빨대를 이용해서 드셔야 했다. 아니면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어드리면 삼키기는 하셨다. 잘못해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폐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숟가락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한다. 가능하면 혀 밑으로 흘려서 넣어드려야 했다. 한 모금씩 삼킬 때마다 안도하는 마음이 마치 아기가 처음 이유식을 시작할 때와 같았다.
조각 케이크를 하나 드시려면 15분 정도 걸렸는데 요즘은 삼십 분이 넘게 걸린다. 곡기를 끊으면 돌아가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늘 스스로 죽으려면 먹는 것을 멈추면 된다는 말로 이해를 했다. 실제로 그러나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실제로 먹을 수 없으면 죽게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너무나 당연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면회를 갔는데 엄마가 거의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 체력이 안 좋아 있었다. 가끔씩 수액에 영양제를 넣어서 맞으시면 이틀 정도 기력을 회복 하다가 다시 체력이 떨어지를 반복했다. 요양원에서는 수액으로 지탱을 할 것인지 코를 통해서 위로 연결해서 식사를 하는 방법으로 해야하느지를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엔 간호사님의 의견을 듣고 정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