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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Feb 10. 2023

우리에게 낭만이 필요한 이유

<시네마 천국>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세상은 늘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늘 추억거리는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꽉 붙잡으려 한다.


'시네마 천국'은 영사기와 필름이라는,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낯선 마을에서 시작된다. TV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마을 사람들은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위도 성향도 모두 제각각인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영화를 감상한다. 어린 시절의 토토는 많은 사람들을 화면 하나로 통제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스크린 건너편에 있는 영사기를 발견하고, 이와 함께 영사실 안에서 일하는 알프레도를 만난다.




토토는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의 영사실을 좋아했다. 어린아이에게는 위험하다며 알프레도는 토토를 거부했지만, 그는 매일같이 영사실을 찾아가서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보곤 했다. 어린 토토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키스신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애정 표현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세상 속에서 영화 속 키스신은 검열 대상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감추기 바빴던 장면들을 토토는 영사실을 통해 일찍 접한다. 하지만 어린 토토가 장면을 보고 느낀 것은 사랑에 대한 감정보다는 검열된 필름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영화는 계속해서 토토의 일생을 다룬다. 사고로 인해 알프레도의 눈이 멀며 그의 자리는 토토가 대신한다. 영사기를 다루며 성장하는 토토는 키스를 포함한 애정신을 가감 없이 삽입한다. 처음으로 이를 마주한 관객들은 환호를 질렀고, 금기시되었던 것에 대한 억눌린 감정을 극장 안에서 해소한다.


늘 사람들의 반응을 멀리서만 지켜보던 토토는 청년이 되면서 엘레나를 마주친다. 이와 함께 필름 속 장면으로만 보았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진정으로 깨우친다. 토토와 엘레나의 사랑은 그가 다뤄왔던 영화 속 필름들과 다름이 없었다. 토토는 엘레나와 함께 했던 시절을 고향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때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 지겨운 여름이 언제 끝나지? 영화에선 금방 끝나잖아. 페이드아웃하면서 폭풍 불고. 정말 멋지다."


누구보다도 영사실 가까이서 수많은 영화를 접했기에, 그는 은연중에 영화 같은 삶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엘레나와의 사랑은 이러한 꿈에 대한 기폭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무척이나 짧았으며, 사라진 엘레나를 찾는 데 실패한 토토는 알프레도에게 고향을 떠나라는 말을 듣는다.


"엘레나는 못 봤고? 그게 운명인지도 모르지. 각자에겐 운명이 있거든. 여기를 떠나라. 이 땅엔 희망이 없어. 여기에서 계속 살면 여기가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지. 그런데 몇 년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모든 게 변해 있어. 시간의 고리가 끊어진 느낌이지. 익숙했던 건 다 사라지고 다 낯설어. 오랫동안 멀리 나가있다가 다시 돌아오면 이곳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네가 태어난 땅도 타향 같아. 

산다는 건 영화랑은 달라. 인생은 훨씬 더 힘들지."

<시네마 천국(1990)> 알프레도의 대사


토토는 알프레도의 말을 듣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다가, 몇십 년 뒤에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야 다시 돌아오게 된다.




중간 부분이 잘린 필름처럼, 영화는 성공해서 돌아온 토토의 모습과 마을의 변화를 한 번에 보여준다.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주민들은 모두 늙어 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알프레도의 극장 또한 그의 사망과 동시에 사라진다. 마을 사람들은 발길이 끊긴 극장이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토토를 포함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스크린 앞에 모여 울고, 웃고,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함께 화를 냈던 그때처럼. 그들에게 극장은 단순히 추억이 아닌 이상이었다. 현실이 힘들어질 때마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기대며, 내심 토토가 이전에 생각했었던 영화 속 삶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변화된 현실을 인지하고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던 상영관에 대한 작별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추억과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멀리서 지켜볼 뿐 절대로 현실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것이다. 즉, 두 가지 모두 낭만적이다.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를 의미한다. 이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상영관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며 공통적으로 느끼는 무언가이다. 현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들은 도피처를 추억과 영화라는 낭만 속에서 찾는다. 하지만 알프레도의 말처럼 언제까지나 낭만 속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현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필름이 우리에게 주는 의의가 무엇일까. 토토는 알프레도가 마지막으로 남긴 필름통을 건네받는다. 필름통의 정체는 어렸을 때 수없이 검열의 과정을 거쳤던, 남녀 간의 키스신을 엮은 영화였다. 토토는 이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는 이제 안다. 그것이 그저 영화 장면의 일부가 아닌, 엘레나와의 사랑을 겪으며 무척이나 추구해 왔을 그의 이상이자, 마음속에 수없이 간직했던 낭만이라는 것을.


필름의 특징이 그렇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미할수록 마음속에 더욱 뚜렷하게 자리 잡는다. 필름의 이러한 시간적 속성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도 아름답게 만든다. 마치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던 현재의 토토 역시 어린 시절에 멋모르고 잘랐던 키스신 장면들을 보며 잃어버렸던 삶의 이유를 되찾지 않았을까.


토토의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의 일생은 마치 필름 조각들을 어설프게 이어놓은 듯하다. 토토와 함께 우리 또한 영화 속 필름에 이끌려 함께 울고 웃는다. 필름이 가져다주는 속성 때문인지, 나는 이 영화만 보면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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