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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Feb 15. 2023

불가능이라는 구분선

<가타카> 앤드류 니콜 감독

가능성.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올바르게 나아가는 힘이다. 또는 이것은 ‘될 것 같다’, 혹은 ‘된다’는 확신이다. 이 확신은 나 자신에게서 발휘되며, 한 사람의 가능성의 유무에 대해 제삼자가 논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보이는 부분만 단편적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시도를 줄곧 해왔다. 어느새, 가능성의 기준은 사회에게 맡겨졌고, 사회의 기준은 개개인의 총체적인 관점을 대표하기에 더욱 객관적이라 믿는다. 우리는 사회에서 제공하는 기준을 가지고 특정인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상대적으로 기준에 가깝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청년보다 힘이 떨어지는 노인, 비장애인보다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떨어지는 장애인, 남성보다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여성. 이러한 판단은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간 많은 이들의 행동을 제약했고, 그들 자신 또한 지속적으로 낙인을 찍었다. 물론 현재에는 이러한 사회적 기준에 의문을 갖고 인식에 변화를 일으킨 듯하지만, 여전히 특정 기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남아있다.


이 영화는 가능성에 대해 논한다.




여기 두 개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우수한 유전자, 잘생긴 외모, 높은 지능 지수, 튼튼한 심장과 체력을 갖춘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의 우수한 인재, 제롬 머로우.

작은 키, 신경계 질병과 우울증, 집중력 장애, 30세에 조기 사망 가능성, 우주인에게 치명적인 심장병을 지닌, 자신의 원래 삶이자 원래 이름이기도 한, 빈센트 프리만.


주인공 빈센트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적 구조 탓에 우수한 조건의 신분을 얻는다. 그가 살고 있는 사회는 유전자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식의 성별, 성격을 결정할 수 있고, 해당 의사가 직접 태아의 질병 인자를 없앨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우성/열성에 따른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는 토대가 된다. 이전에도 국적과 인종, 성별 따위의 선천적인 요소에 의한 차별이 있어왔지만, 이러한 요소는 사람의 ‘능력’과 연관성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 미래의 유전 조작 기술은 신체적, 지성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의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반대로, 열성 인자를 가진 이에게 절망적인 상황을 가져다준다. 사회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이를 골라내어 특정 업무를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빈센트 프리만은 이런 암울한 사회의 희생자로서 등장한다.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그에게는 우주 비행사라는 꿈이 있지만, 열성 인자를 가지고 있어 늘 꿈이 좌절되어 왔다. 그에게는 상대적으로 신체적 조건이 우수한 동생이 있었는데, 우연히 동생과의 헤엄 내기에서 이기며 자신이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록 한 번의 ‘우연한 결과’였지만, 빈센트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최고의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 빈센트는 합의 하에 우수한 조건의 ‘제롬 머로우’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회사에 들어간다. 제롬 머로우는 우주 비행사가 되는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그는 회사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의해 끝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지만, 가타카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였기에 끝내 우주 탐사에 성공한다.


영화 속의 근 미래에는 가능성을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이 더욱 세밀해졌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결과를 따른 이 기준은 객관성을 넘어 절대적으로 다가왔다. 그 결과, 우수 인력 양성을 위해 사람 간의 구분을 일삼고, 부모들은 자식이 혹여나 뒤처질까 봐 더 우수한 형질을 선택한다. 어쩌면 ‘제조한다’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상대적으로 열성 형질을 띠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자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열성이 정말로 열성일까. 그들은 그저 자연의 섭리대로 인간답게 태어났을 뿐이다. 얼핏 보면 효율적이고 사회에 크나큰 이점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위해 한 인간에게 더없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세태를 과연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러한 잣대는 누가 만들었는가.




영화에 등장하는 부적격자는 빈센트와 아이린, 두 명이다. 선천적인 지병을 가진 아이린은 내내 자신의 불가능에 대해 체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빈센트에게 지병 사실을 털어놓으며 유전적 정보가 포함된 머리카락을 주는 아이린에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바람에 날아가 버렸네요.’ 외부적인 시선으로 만들어진 형식적인 기준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30세에 죽을 것이라고 병원에 예고받았지만 31세가 된 현재에도 죽지 않았으며, 높은 확률로 나타났던 폭력성과 우울증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에게 확률은 무의미하다. 이러한 사실은 불가능할 것이라던 자신의 꿈에 확신을 가지는 데 보탬이 되었다.


가타카에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롬의 도움이 컸지만, 우주로 향하는 과정은 오롯이 빈센트 자신의 힘이었다. 그는 정신력으로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고 훌륭한 탐사 경로를 마련했다. 마지막 테스트에서 신원이 제롬이 아닌 빈센트를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가타카 내의 인물들은 그를 우주선으로 보냈다. 빈센트의 우주 탐사가 갖는 의미는, 객관성을 넘어 상당히 ‘완고하고 절대적이었던’ 사회적 기준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선천적인 이유라도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행복할 수 없는 곳이지만 떠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몸속의 모든 원소도 우주의 일부라고들 한다.
어쩌면 떠나는 게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가타카(1998)> 빈센트의 독백


빈센트가 우주 탐사를 꿈꿨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불가능이 당연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빈센트는 우주를 단순히 꿈이 아닌 회귀로 여겼다. 흔히 몸속의 세포 구조가 우주의 모습과 닮았다고들 한다.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우주와 연결점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지구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무한한 별들은 모두 똑같이 빛난다.


빈센트의 기적적인 이야기는 가능성이 제삼자나 집단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한 가능성은 유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0.01%라도 있다면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동생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고 내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던 순간이었다.’

<가타카(1998)> 빈센트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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