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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Jan 24. 2023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황수선화

<빅 피쉬> 팀 버튼 감독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열일곱이 되던 해에는 학창 시절에 배우를 꿈꿨던 자신의 꿈에 대해, 스무 살이 되던 해에는 이십 대에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이야기 속에서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신의 목표에 대해 열정이 넘쳤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바르고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인생에서의 중요한 가치들을 내게 수 차례 말하셨고, 내가 그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과는 달리, 아버지의 이야기는 무척 이상적이었다. 나는 때때로 나의 생활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빗대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강요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이러한 경험과 꼭 닮은 영화 '빅 피쉬'를 보았다. 아들인 윌은 아버지인 에드워드 블룸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들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자신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야기를 반복하는 에드워드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어 한다. 이야기 속 젊은 에드워드는 모두에게 영웅이자 사랑을 쟁취한 주인공이었지만, 현실 속 에드워드는 윌에게 그저 평범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에드워드와 윌은 서로 닮지 않았다. 윌은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기자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에드워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환호를 받지만, 윌은 그저 그의 이야기가 혼란스럽다.


윌은 아버지를 사랑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뿐, 아들인 자신에게 한 가지의 사실조차 말한 적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의 이야기가 전부라고 말한다.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내면의 성장을 다룬다. 그의 성장은 한쪽 눈이 유리구슬인 마녀를 찾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에드워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마녀의 눈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미리 확인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져도 살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신체 성장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작은 그릇에 놓으면 작은 상태지만 더 많은 공간을 주면 두 배, 서너 배로도 자랄 것이다.
<빅 피쉬, 2004>


자신의 성장 속도에 맞는 커다란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에드워드는 마을 안에서 활약하며 '애슈턴에서 가장 거대한 사람'이 되었지만, 거인과 함께 마을 밖의 서커스장에 다다랐을 때에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는 낙원 같은 유령 마을에서 머무르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에드워드는 정착이 아닌 모험을 하고 싶었기에 여러 위험을 무릅쓰는 편을 선택한다.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는 서커스장에서 지금의 아내인 샌드라를 우연히 마주치면서 '사랑'이라는 다른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샌드라를 찾기 위해 서커스 단장과의 부당한 거래에도 응하고, 이후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황수선화 밭에서 구애한다. 이후 그녀의 사랑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군 복무로 인해 오랜 기간 헤어져야 했던 그는 복무 기간을 줄이기 위해 위험한 일을 도맡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에드워드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집념은 그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에드워드의 여정은 샌드라와의 재회 후 둘이 살 집을 마련하고 윌이 태어나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여정의 종착지에 다다랐던 것은 에드워드뿐만이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재능 삼아 자신의 역할을 찾은 거인, 황폐한 마을을 되살려 자신들의 터전을 되찾은 유령 마을 주민들 등 젊은 시절 여정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은 에드워드를 만난 이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주변 사람들을 도와준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기에, 이야기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마녀의 눈에서 보았던 이야기의 결말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치료를 받는 에드워드를 보며, 윌은 그의 이야기를 다시 회상한다. 이와 함께 유령 마을 주민 중 하나인 제니퍼에게 에드워드에 대한 사실을 들으며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차츰 흐릿해짐을 느낀다. 그저 신화로 취급해왔던 에드워드의 이야기 속에는 윌이 그토록 찾던 진실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에드워드는 윌에게 마녀의 눈에서 본 자신의 죽음을 말해달라고 한다. 윌은 아버지의 방식으로 그에게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낸다. 갑자기 기운이 생긴 에드워드는 윌과 함께 강으로 향하고, 자신의 이야기 속 모든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커다란 물고기로 회귀한다는 결말이었다. 에드워드는 터무니없지만 행복한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눈을 감는다.


윌이 깨달은 아버지의 이야기 속 진실은 무엇일까. 이는 동화가 존재하는 이유와 연관되어 있다. 동화는 비현실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덕지덕지 꾸며낸 환상을 벗기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다. 동화는 차갑고 어려운 현실을 따뜻한 말로 위로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각자의 세상 속에서 주인공이고, 고난을 극복하며 해피 엔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위로이다. 에드워드의 이야기 속에 담긴 갈등과 극복, 꿈과 사랑의 스토리는 그가 마녀의 눈을 통해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에도 희망을 주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현실은 초라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현실 속의 가치는 무척 아름답다. 이 사실을 깨달은 윌에게 이야기 속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아버지의 의도를 진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빅 피쉬'는 여러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빅 피쉬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 잡았던 고기이자, 어린 시절 에드워드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매개체, 때로는 자신의 연인을 본뜬 형상이 되기도 한다. 빅 피쉬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하나로 정의하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는 빅 피쉬는 결국 아버지가 아들에게 온종일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윌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빅 피쉬를 떠올리며 에드워드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심을 영원토록 마음에 새길 것이다.


내 주변에도 빅 피쉬가 맴돌고 있다. 내가 겪는 지금의 고난들을 앞서 겪었던 아버지가 수 차례 말한 경험들이 그렇다. 아버지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내게 온전히 들려주셨던 이유는 자식인 내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길을 건너지 못하는 내게 돌다리를 두드리는 방법을 알려 주는 사람이었다.




훗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가 인생에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면, 나는 그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위로해 줄 것이다. 에드워드가 윌에게,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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