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aTina Jan 27. 2023

안드로이드에 숨겨진 인간의 특성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백인 제이크와 흑인 카이라, 중국인 미카, 그리고 안드로이드 인간 양. 겉모습이 다른 네 명의 가족은 모두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춘다. 아내 카이라는 가족이 늘 언제 어디서나 한 팀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부가 양을 데려온 이유도 중국 입양아인 딸 미카의 정체성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양을 포함한 가족들은 댄스 대회에서 누구 하나 어긋나지 않은 하나의 팀으로 보인다.


다음 날, 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양의 중심부가 고장이 나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는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양을 마치 사용이 불가능한 가전제품처럼 대한다. '보증'이나 '새 제품', '수리'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중국 입양아용 형제자매를 판매하는 보증 가게에서도, 본사에서도 고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은 제이크는 안드로이드 쌍둥이 딸을 입양한 조지에게서 사설 수리점을 소개받고, 그곳에서 양을 무조건 고칠 수 있다는 확답을 받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인간을 연구하는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에서는 중심부에 저장된 양의 기억을 보존, 전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제이크는 양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미카의 정체성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여온 양은, 실제로는 목적 그 이상을 수행했다. 미카는 부모님의 바쁜 생활에 외로움을 느꼈고, '진짜 부모님'에 관하여 물어보는 학교 친구들에 의해 혼란스러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친오빠인 양은 미카에게 중국 문화를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부모가 하지 못했던 역할을 대신했다. 과수원에서 양은 미카에게 다른 나무에서 온 나뭇가지가 그대로 붙어서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해 주며, 그녀 역시 가족 구성원임을 상기시키고 달래주었다. 다른 곳에 있다가 한 데 모여 가족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둘은 서로를 아꼈다. 미카는 양을 자신의 부모님보다 더 의지했으며, 유일하게 그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인물이다.


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는 부모의 역할은 하지 못한 채 양을 통해 안정적인 가족의 모습이 유지되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하지만 양이 고장 난 이후, 부부는 그가 가족들을 위해 더 많은 역할을 수행했음을 깨닫는다. 카이라는 제이크에게 '우리가 양에게 너무 의존했다'라고 말하며, 그동안 양이 대신했던 역할을 다시 자신들이 하도록 설득한다. 결국 제이크는 박물관을 통해 양의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양을 고장이 아닌 죽음으로 인식한다는 의미가 된다. 제이크는 비로소 그가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 구성원임을 인정한다.



양은 우리 거예요. 그러니까 설명은 필요 없어요.

<애프터 양, 2022> 제이크의 대사



제이크는 양의 중심부에 있던 기억 장치를 살핀다. 그 안에는 양이 기록한 5초 남짓의 짤막한 영상들이 담겨 있었다. 양이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식은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가 어떠한 기억을 떠올릴 때 사건 전체를 떠올리기보다는, 여러 개의 부분적인 장면만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양의 기억 장치 속에는 세 가지의 저장소가 있다. 제이크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감마 저장소', 전 주인인 낸시와 함께했던 '베타 저장소', 그리고 가장 안쪽에 숨겨진 '알파 저장소'. 알파 저장소에는 가장 많고 복잡한 영상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첫 번째 주인이었던 엠마 가족과 첫사랑 에이다와의 기억이었다.


알파 저장소에서의 양은 현재와는 달리 엠마의 중국인 아들을 돌보는 목적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이 엠마의 간병인이었던 에이다를 만나며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얻게 된다. 에이다가 죽은 이후 양의 기억 장치 속에는 그녀와 함께한 장소들이 담겨 있었다. 이후 베타 저장소에서의 양은 여전히 에이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 젖어 있는 상태였다.




양의 세 번째 기억이었던 감마 저장소에는 제이크가 기억하는 장면들도 담겨 있었다. 제이크는 가족사진을 찍었던 날의 양의 기억을 살피며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날의 양은 어딘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를 통해 양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영화는 양의 기억뿐만 아니라, 양에 대한 가족들의 기억 또한 보여준다. 제이크는 중국의 차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양을, 카이라는 나비 수집을 하는 양을, 미카는 과수원에서 자신을 달래던 양을 회상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양에 대한 기억들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를 통해 양이 제이크 가족과 함께하며 자신에게는 없는 인간의 특성과 고유한 생각,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제이크의 기억 속의 양이 더욱 그랬다. 양은 중국의 차에 대해 묘사하는 제이크를 보며 자신 또한 차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양은 지속적으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순간의 감정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숲 속을 걷고 있고, 땅에는 나뭇잎이 깔려 있는, 한참 비가 내리다 그쳐서 공기는 아주 축축한 길을 걷는다.
이 차에는 모든 게 담긴 것 같다.

<애프터 양, 2022> 제이크의 대사



이러한 양의 안팎의 기억을 살피다 보면 비로소 '양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알게 된다.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양은 세 차례의 기억을 통해 사랑, 그리움, 소외감과 같은 감정들을 배워갔다. 이와 함께, 양은 인간의 주관적인 생각들에 관심을 가지고, '동양인의 기준'과 같은 인간이 스스로 정한 규칙들에 의문을 갖는다. 양은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존재였다. 늘 인간으로 살아왔기에 모르고 있었던 우리는, 인간이 아닌 양에 의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렇기에, 고장 난 양을 인간과 동일한 '죽음'으로 인식한 가족들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는 양을 수리점에 맡기거나 대체품을 찾는 대신,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방법을 선택했고, 양을 가장 많이 의지했던 미카는 중국어로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그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부른다. 박물관은 양의 기억을 가치 있게 여기며, 이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가족들을 위로한다.




이 영화는 그저 한 가족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대상이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로 바뀌었을 뿐이다. 양은 미카를 포함한 가족들을 사랑했고, 가족들 또한 비로소 양을 사랑할 수 있었다. 또한 양의 존재는 곧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양은 누구보다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때로는 그 바깥에서 되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영화가 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기억과 이를 통한 생각, 감정에 대한 것이다. 이는 모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이다.


양의 기억은 흔히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아카이브 형태로 나열되지 않고, 우주의 별처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이와 함께, 양의 기억이 저장되는 주기와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박물관의 말이 와닿는다. 이러한 불규칙적인 저장 주기는 우리가 특정한 추억들을 유난히 더 오래 기억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불규칙적으로 저장된 짤막한 영상들은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추억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양의 기억의 특성들은 그가 단순한 로봇이나 기계가 아닌 하나의 존재라고 느끼도록 한다.




양은 여전히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가득 담긴 이 노래를 좋아한다. '나는 그냥 바람처럼 되고 싶어요. 그냥 허공을 떠돌고 싶어요. 탁 트인 공간을요.' 어쩌면 이 노래에 양의 모든 기억이 압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차 안에 모든 게 담겨 있다는 제이크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6637


매거진의 이전글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황수선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