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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Feb 03. 2023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흑인, 빈민, 왜소한 몸, 동성애자. 영화 <문라이트>는 남들과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샤이론의 이야기를 세 가지의 챕터로 나눴다. 유년기-소년기-청년기에 각각 다르게 불린 이름을 기준으로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챕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는 샤이론의 정체성을 담아냈다. 영화는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에서 샤이론이 살아남는 과정,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 리틀(Little)


또래 아이들은 몸집이 작은 샤이론을 '리틀'이라고 부른다. 담배를 피우는 등 강하게 보이고 싶었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그가 달갑지 않았다. 샤이론은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쳤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약상 후안을 마주친다. 처음에는 샤이론은 후안을 경계하지만, 점차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에게 차츰 마음을 연다.


유년 시절 샤이론의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의 어머니 폴라는 자신의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에도 방임하고, 자신의 남자친구를 데려와 마약을 하는 인물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샤이론은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갔고, 또래 아이들에게조차 무시를 당하는 처지였다.


샤이론이 의지하는 인물은 후안, 후안의 아내 테레사, 그리고 자신의 친구 케빈이다. 케빈은 샤이론을 유일하게 친구로 여기는 인물이지만, 때로는 약해 보이는 그에게 '당하기만 하지 말고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를 자극하기도 한다. 샤이론은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후안과 테레사는 이러한 점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샤이론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한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폴라는 남자친구와 함께 마약 거래를 하다가 후안에게 들키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샤이론에게 소리를 지르며 붉은 조명이 있는 방에 들어가 버린다. 이는 리틀이 블랙이 될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는다.




2. 샤이론(Chiron)


청소년이 된 샤이론은 여전히 왜소한 몸과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를 가장 진득하게 괴롭히는 테렐은 모욕적인 말과 함께 샤이론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그는 여전히 친구로서 함께 지내는 케빈에 의해 겨우 숨통을 틔운다. 어느 날, 케빈은 이성과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날 밤 샤이론은 이와 관련된 꿈을 꾸며 자신이 케빈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테렐은 샤이론을 여전히 리틀(가장 약한 모습)이라 부르고, 케빈은 그를 새로운 별명인 블랙이라 부른다. 그들이 샤이론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 샤이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과도기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샤이론은 이러한 혼란을 마음껏 터놓을 곳이 없다.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던 후안은 죽었고, 유일한 가족 폴라는 그저 자신이 진짜 엄마라며 보답을 요구하기만 한다. 가족, 사랑 등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샤이론은 바다로 향하고, 그곳에서 케빈을 다시 만난다.


어두운 밤바다에서는 샤이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가려진다. 심지어 흑인이라는 사실조차 희미해진다. 그곳에서 샤이론과 케빈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음을 비밀스레 확인한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던 케빈은 이후 테렐의 요구에 따라 샤이론에게 폭력을 가한다.


더 이상 안정을 찾을 곳이 없었던 샤이론은 이를 기점으로 변화한다. 폭력을 당한 그는 상담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테렐을 의자로 내려치고 소년원에 가는 선택을 한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블랙이 되기로 결정한다.




3. 블랙(Black)


샤이론은 케빈이 늘 이야기하던 '약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했다.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자신을 지켜주던 후안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후안처럼 마약상이 되었고, 차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두는 습관을 가졌으며, 운동을 통해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어렸을 적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리틀' 챕터에서 언급했던, 약에 취한 폴라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며 붉은 조명이 가득한 방으로 들어가는 꿈이다.


어느 날 샤이론은 폴라와 케빈에게 동시에 연락을 받는다. 그는 두 명의 인물을 차례로 만나는 과정에서 완전히 잊었던 어린 시절로 순식간에 되돌아간다. 그는 여전히 케빈의 연락을 받고 설렘의 감정을 느끼고, 병동에 있는 어머니를 원망한다. 더불어 폴라와 케빈은 마약상으로 변해버린 샤이론을 오히려 만류한다. 두 인물 모두 샤이론에게 상처를 주었던 행동을 반성하면서도 '네 마음은 나처럼 검지 않다', '그건 네가 아니야'라며 샤이론을 뒤흔들고, 샤이론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것처럼 다시 혼란에 빠진다.


화목한 가정,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던 케빈 역시 샤이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케빈은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도 공허해 보였다. 케빈의 집에서 샤이론은 케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둘은 서로에 의해 결여된 부분을 충족한다.




Epilogue. 블루(Blue)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 샤이론의 다른 이름들은 그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유년기의 '리틀'은 유약한 자신의 본모습을, 소년기의 '샤이론'은 세상과 자신 사이의 정체성에 대한 과도기를, 청년기의 '블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재의 모습을 의미한다. 하지만 블랙이 된 자신이 감췄던 유약한 모습은 폴라와 케빈을 만난 이후 여실히 드러났다. 여전히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상태였다.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답은 '리틀' 시절 후안에게 들었던 이야기에서 추정할 수 있었다. 후안은 어린 샤이론을 바다로 데려가 이렇게 말한다.


달이 뜨면 맨발로 뛰어다녔지... 한 번은 어떤 할머니를 지나쳐 가는데 미친 듯이 들떠서 뛰고 있었어.
그 할머니가 날 잡더니 그러는 거야.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문라이트(2017)> 후안의 대사


리틀-샤이론-블랙으로 향하는 과정에 앞서, 전사에는 후안의 삶이 있었다. 단순히 청년이 된 샤이론의 모습이 후안과 닮았다는 점 이외에도, 둘은 정서적으로 통했다. 후안은 자신을 책임지지 않은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 샤이론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후회하기도 한다. 자신에게서 마약을 구입하려는 폴라를 꾸짖으면서도, 폴라가 자신에 대해 되받아치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자신 또한 폴라에게 마약을 공급할 수 있는 마약상이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샤이론이 자신에 관한 의문을 던질 때, 그는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후안이 죽으면서 샤이론 역시 그와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후안과 샤이론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폴라와 케빈이 샤이론을 만류하는 모습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샤이론은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할 시기에 그들에게 받지 못했으며, 도리어 이미 그들에게 상처를 받아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바다에서는 그가 자신을 온전하게 내보일 수 있었다. 바다에서 그는 후안과 함께 마음껏 헤엄치고, 케빈에게 은밀하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때때로 그는 혼란을 겪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머리와 몸을 물에 담그면서 안정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바다는 그의 혼란을 막고 안정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유난히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각각의 챕터를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보여주는 검은색, 푸른색, 붉은색 깜빡임은 샤이론의 성장 과정에서 나온 이상, 안정, 상처와 같은 감정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포스터에서 보여주는 색감은 앞서 말한 색들에 달빛의 푸른색을 입힌 것처럼 보인다. 이는 영원히 트라우마를 제공했던, 폴라가 붉은 조명이 가득한 실내로 들어가는 장면과 대조되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차갑다고 느껴지는 푸른빛이 샤이론에게는 해답이자 구원이 된다. 세상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어둠 속에 자신의 본모습을 가렸지만, 완전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리틀에서 블랙이 되는 모든 과정에서, 오직 달빛만이 순수하게 샤이론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블랙으로 완결이 된 영화의 시점은 얼핏 보면 비극적인 것 같지만, 결국 답을 제공함으로써 성장과 치유로 완결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푸른 바다에서 달이 있는 방향으로 올려다보는 듯한 '리틀' 샤이론의 모습이 나온다. 후안이 들려준 이야기처럼, 그는 자신에 대한 종착지로 '블루'가 되기로 결심한다. 블루는 더 이상 혼란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본모습을 받아들인 성장한 자신을 의미한다. 그의 몸은 더욱 푸르게 빛난다. 그 역시 빛난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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