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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Feb 24. 2023

사랑을 나침반 삼아, 인생의 목적지까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

아주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 또는 스무 살 초반에 한 번쯤 어른의 환상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돈을 벌어서 좋은 집을 마련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거나, 원하던 직업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는 삶과 같은 각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그려놓고 꿈꿔본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환상으로만 남는다. 먼저 이 과정을 거쳤던 어른들은 '이제 네가 정말로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야'라고 말하겠지만, 어쩐지 이 말은 모순적이고 씁쓸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꿈꿨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이런 게 진정한 어른이라니. '어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감이 크다.


서른을 앞둔 율리에 역시 절망한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진로는 두 번이나 바뀌었고, 매번 바뀌는 꿈을 좇다가 시간이 흘러 스물아홉이 되었다. 이뤄 놓은 결과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그녀는 아직도 방황하는 중이다. 마치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온 것처럼. 이 영화는 변화하고 있는 그녀의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초반의 율리에는 의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또 한 번 사진작가로 꿈을 바꾸면서 비슷한 분야의 남자 모델과 교제한다. 하지만 우연히 40대 만화가 악셀을 마주친 그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그에게 성숙함과 배려를 느낀다. 율리에의 마음은 악셀에게 향했고, 그들은 동거를 시작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완벽하게만 느껴졌던 악셀은 아직 방황 중인 율리에를 질책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그녀에게 자녀 계획을 이야기한다. 이에 지친 율리에는 대책 없이 들어간 파티에서 에이빈드를 만난다. 율리에는 비슷한 나이대와 성향을 가지고 있던 그가 자신과 꼭 맞는 사람이라 느낀다. 하지만 에이빈드와의 교제에서도 율리에는 점차 지쳐갔다. 율리에가 만난 연인들과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은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만남 이후'를 더 자세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한글로 번역된 제목을 보며 처음에는 '누구나'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율리에는 바람을 피우고, 병에 걸린 전 애인에게 현 애인과의 고민을 털어놓는 등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관객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그녀의 행동을 마치 전체가 그러한 것처럼 일반화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사랑의 정의는 어떤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지속하는 조건은 신뢰와 배려이지만, 사람들은 간혹 이를 간과한다. 감정에 이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다르게 살아왔던 두 사람이 완벽하게 서로를 믿고 배려하는 것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연인이 된 이후에야 상대방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생각 차이로 인한 갈등 또한 불가피하다. 율리에와 주변 인물들의 사랑 또한 다양한 갈등에 집중한다. 영화는 20대와 40대라는 나이차를 극복하지 못한 율리에와 악셀의 사랑, 특정 가치관을 주입하며 상대의 생활 습관을 모조리 바꾸려는 에이빈드와 옛 연인 수니바의 사랑, 너무나도 동일한 처지이기에 미래가 불투명한 율리에와 에이빈드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러한 갈등을 보면 사랑은 가변적이고 불균형하다고 느낀다. 사랑은 철저하게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시작된 것들은 한결같이 유지되기 어렵고,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많은 시행착오가 존재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안에서는 누구나 최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율리에가 사랑을 하면서 겪는 수많은 실수와 상처 또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각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 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의 이상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보는 사랑이야기는 갈등을 자세하게 그리기보다는 이상과 운명에 집중한다. 남녀 주인공의 극적인 만남, 열정적인 사랑, 해피 엔딩은 사랑이야기의 보편적인 구조이다. 물론 일반적인 멜로 장르에서도 갈등은 존재하지만, 이는 결말부에서 완전히 해소된다. 이별 또한 존재하지만 단편적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 주변의 사랑은 생각보다 어렵고 번거로운데 사랑을 다룬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다소 순탄해 보인다.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으로 완결된 그들의 뒷이야기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결실을 맺는 두 주인공을 보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이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사랑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꾸며낸 이야기에서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설렘'을 위주로 담지만, 실제 사랑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 그렇기에 결말 이후의 남녀 주인공의 모습은 잘 상상하지 못한다.


율리에는 일반적인 영화 속 주인공들보다 훨씬 최악이다. 우리가 멜로/로맨스 영화를 관람하는 이유가 이상적인 사랑을 간접 경험하기 위함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율리에의 사랑은 우리의 현실과 더 가깝다. 영화는 실제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주인공을 최악의 인물을 그렸던 것이 아닐까. 율리에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에 대해 공감하고, 이 영화를 현실적이라고 느낀다. 결말 이후의 율리에의 삶은 다른 멜로/로맨스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사랑을 제외하고 바라보면 어떨까. 이 영화는 불완전한 주인공이 완전함으로 내딛는 성장 영화가 된다. 스물아홉의 율리에는 영화 내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율리에의 직업은 세 번이나 바뀌고 사랑도 두 번이나 바뀐다. 하지만 어느 영역에서도 그녀는 안정을 찾지 못한다. 바람을 피우는 등의 일탈적인 행위는 그녀 자신에 대한 혼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율리에의 어머니, 할머니, 조상들은 30대에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거나, 일찍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율리에는 영락없는 현재의 청춘들처럼 방황한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안정을 찾으려 한다. 그렇기에 악셀은 그녀에게 있어 인생 선배, 동경의 대상이자 보금자리였다. 악셀에게 끌렸던 이유는 정답의 길을 가는 듯한 그를 통해 자신의 답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율리에의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악셀의 성공 가도를 옆에서 지켜보며 열등감만 더 느꼈다. 율리에는 비로소 이전에 악셀이 말했던 '인생의 다른 단계에서 만났다는' 말에 대해 실감한다.


난 내 삶의 구경꾼인 기분이야. 내 인생인데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2)> 율리에의 대사




율리에는 다른 안정을 찾기 위해 자신과 같은 단계에 놓인 에이빈드를 만난다. 율리에의 안정은 그에게서의 동질감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에이빈드에게 달려갈 때 두 남녀를 제외하고 모든 것들에 대한 시간이 멈추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는 율리에가 진정한 사랑과 함께 비로소 정답을 찾았다는 기쁨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마저도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전히 율리에는 불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에이빈드와의 자녀 계획이 없었던 그녀는 덜컥 임신을 하고, 두려운 마음에 악셀을 다시 찾아간다. 그는 여전히 흔들리는 율리에에게 '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려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한다. 율리에는 자신의 문제점을 사람에게 기대어 해결하려 했지만, 내면의 혼란을 잠재우는 방법은 자신의 몫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마음 놓고 따를 동경의 대상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동질감의 대상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율리에는 아이를 유산하고 에이빈드와의 관계를 끝낸다. 그녀의 결말은 누구와도 연인이 되지 않은 채 안정된 직업을 가진 자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결말이 결코 '사랑은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말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한 율리에의 여정은 두 연인을 거치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을 통해 흔들림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으며, 이 과정은 율리에 인생에서 필연적이었던 하나의 단계이다.





율리에는 서른을 앞두고 있다. 필자가 상상한 어른의 이미지 또한 서른 남짓이었다. 서른이라는 이미지는 성숙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도기에 가깝다.


서른의 삶은 무척 다양하다. 벌써 가정을 이룬 인물도 있고, 독신인 인물도 있다. 일을 일찍 시작해 높은 직급을 단 인물도, 이제야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인물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인물도 있다. 서른은 그야말로 가장 다양한 인생 형태가 존재하는 나이대가 아닐까. 그만큼 어른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감도 가장 체감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곧 서른이 될 율리에의 여정은 애매한 어른으로 남아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러니 흔들림을 겁내지 말자. 방황하는 자신이 설령 최악으로 느껴질지라도 이것 또한 넘어가야 할 인생의 한 단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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