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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Mar 03. 2023

무음의 세상에 힘차게 닿는 노래

<코다> 션 헤이더 감독

이 영화는 농인 가족을 둔 사춘기 소녀의 딜레마를 담았다. 소녀는 주변인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가족들을 대신해 17년간 수화 통역사로 지내왔다. 이러한 소녀의 꿈은 공교롭게도 노래를 부르는 일이다. 그리고 유명 음악 대학과 연줄이 있는 선생님은 소녀에게 꿈을 이루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제공한다.


과연 소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주인공 루비는 어선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돕는다. 들리지 않는 가족들과 시끌벅적한 세상을 연결해 주는 것은 언제나 루비의 몫이다. 그렇기에 루비는 24/7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 학교 친구들은 이러한 상황의 루비에게 '생선 냄새'가 난다며 놀려댄다. 정작 기댈 곳이 마땅히 없었던 루비는 늘 위축된 모습을 보여왔다. 다소 우울한 루비의 인생이 변화할 수 있었던 계기는 짝사랑하던 남자를 따라 가입한 합창단에서 베르나르도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낯선 느낌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자신감이 부족했던 루비는 첫 수업에서 진행된 가창 테스트를 받다가 연습실에서 뛰쳐나간다. 얼마 뒤 연습실을 다시 찾은 루비에게 베르나르도는 이렇게 말한다.


데이비드 보위가 밥 딜런 보고 뭐라 했는지 알아? 모래와 접착제 같은 목소리.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는 차고 넘쳐.
너는 할 말이 있니?

<코다(2021)> 베르나르도의 대사


그다음 수업에서 루비는 베르나르도가 알려준 호흡법에 따라 조금 더 크게 노래를 부른다. 루비는 이 과정에서 조금의 자신감을 되찾고, 베르나르도는 노래하는 루비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느낀다. 이와 함께, 루비에게 최고 음악 대학인 버클리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앞선 베르나르도의 말처럼,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를 거부했던 그가 루비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루비의 노래는 억눌린 감정을 쏟아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에 의해 참아왔던 삶을 호소하듯. 루비가 처음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은 말이 아닌 노래였다.


이와 관련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노래에 흥미를 붙인 루비는 개인 독창 연습에서 예쁜 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런 루비에게 베르나르도는 가장 듣기 싫고 거슬리는 소리를 내 보라고 부추긴다. 루비는 곧바로 농인 가족들이 집에서 내지르는 괴상한 소리를 떠올린다. 가족들은 격한 감정을 표현할 때 짐승과 같은 괴성을 지르곤 한다. 하지만 책임감에 억눌려 있던 루비는 괴성을 듣고도 참아야만 하는 역할이었다. 집 안에서의 루비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없었고, 소리 없이 몸짓으로만 소통해야 했기에 늘 조용하고 고요한 환경 속에서 숨죽인 채 살아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답답함과 외로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녀 역시 어린 청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은 루비가 비로소 청춘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입을 다물고 조용하게 살던 루비가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공간. 루비는 가족들이 하던 것처럼 듣기 싫은 괴성을 지른다.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처럼. 이러한 해소는 루비의 노래에 감정이 실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와 함께 루비는 진심으로 노래 부르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루비는 자신의 꿈을 가족들에게 전하지만, 가족들은 그러한 루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루비의 아버지는 어선에서 일하다가 경고를 듣지 못해 징계를 당한다. 막대한 피해를 보상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어선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화 통역사인 루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루비는 이러한 상황에 의해 딜레마에 빠진다. 결국 평생 함께 했던 어선을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다다랐을 때 루비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선택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청각장애인 가족들의 시점에서 그들의 어려운 삶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제한된 삶은 그들을 난감하게 만들었고, 가장 어린 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가족들은 회의감을 느낀다. 루비의 결정에 가장 자괴감을 느낀 인물은 루비의 오빠였다. 그는 오빠 구실을 하지 못하고 늘 주변에 도움받는 자신의 처지에 비참함을 느낀다. 이와 함께 이러한 문제가 오로지 자신들만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정곡을 찌를 말을 한다. "넌 우리가 바보로 보일까 겁나지? 그 사람들이 농인과 상대하는 법을 배우게 해! 우린 무력하지 않아!"


딸의 지친 모습을 보면서도 가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보다도 그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딸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중도, 지지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합창 연주회 장면에서의 의도적인 묵음 처리는 가족들의 답답한 심정을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겪게 만든다. 연주회에 있던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던 루비의 노래는 정작 가까운 가족들에게 닿지 않았다.


루비의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루비에게 연주회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목에 손을 갖다 대고, 두 눈으로 루비의 입모양에 집중한다. 이는 어떻게든 딸의 꿈을 존중하고 싶어 하는 가족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어느 누구보다도 루비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꿈을 비로소 인정한다.




루비는 가족들과 함께 뒤늦게 버클리 오디션으로 향한다.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Joni Mitchell의 Both Side Now를 부른다. 이는 자신의 꿈의 도약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노래를 들으려는 아버지의 진심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루비는 노래 도중 수화를 한다. 이와 함께 루비의 노래는 비로소 가족들에게 닿는다.





영화 '코다'의 장르가 음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장에서 부른 Both Side Now를 제외하고는 완곡을 들려주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의 어려운 삶에 초점을 두기 위함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루비가 가족들에게 꿈을 전달하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 영화에서는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선택했다. 노래를 통해 책임감에 억눌려 위축되어 있던 루비는 1차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2차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이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설득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가족들과는 끝없는 마찰을 일으켰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소통의 노력 끝에 최종적으로 루비의 메시지는 가족들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이렇게 그녀 자신> 주변 사람들> 농인 가족들을 순서로 노래가 전달되는 과정은 루비 본인의 성장 서사를 내포한다.


이러한 성장 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주체성이다. 루비가 오디션장에서 부른 Both Side Now는 그녀가 주체성을 찾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사랑, 인생과 같은 것들의 모든 면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해하는 내용의 가사는 '가족들을 위한 CODA의 삶'과 '꿈을 찾는 청춘의 삶' 사이에서 쉼 없이 고민하면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루비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앞으로의 루비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어쩌면 갈등은 계속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비는 이전처럼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첫걸음을 딛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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