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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Mar 24. 2023

쓰디쓴 고난에도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머니볼> 베넷 밀러 감독

'스포츠 영화'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국가대표를 꿈꾸는 영화 주인공이 초반에는 다른 선수들과의 실력 차이, 예기치 못한 부상 등과 같은 시련을 겪다가 끝내 최고 기록을 세우며 목표를 달성하는 장면과 같은 것들 말이다. 때로는 일련의 성장 과정에서 좋은 동료, 감독을 만나며 관계를 구축하고, 한 팀이 되어 승리의 전율을 함께 나눈다. 관객은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주인공과 동일한 열정을 갖게 되고, 주인공이 목표를 달성할 때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영화 <머니볼>에서는 이러한 서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남들이 보기에 오합지졸인 것 같은 팀이 우승하는 이야기를 뼈대로 삼지만, 구단 단장인 빌리가 '머니볼 이론'을 바탕으로 경기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전략을 고민하는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불어, 구단 회의 장면에서 출루율, 타율과 같은 야구 용어가 설명 없이 그대로 쓰이는 등, 평소에 야구를 좋아하거나 관련 종사자가 아니라면 어렵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필자 역시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다. 하지만 <머니볼>은 소수의 야구팬이 아닌 다수의 대중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자체가 아닌 전략이 소재인 영화에서 필자는 어떻게 대중적인 공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주인공 '빌리'에게 있었다.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빌리의 모습에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인생의 고난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빌리 빈은 만년 최하위팀이자 가난한 구단인 애슬레틱스의 단장이다. 선수의 외양과 스타성에만 관심을 갖는 구단의 운영위원장들과 달리, 그는 항상 부자 구단과의 격차를 보며 불공평하다고 말하며, 저비용/고효율을 추구하는 머니볼 이론을 통해 적은 예산으로 챔피언십 우승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빌리는 냉철한 안목을 가진 피터와 함께 연봉이 아닌 잠재적인 기록을 기준으로 선수단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오직 '출루율'을 바탕으로 사생활이 복잡한 제레미, 10년 전에 스타 선수였던 데이빗, 팔꿈치 영구 손상으로 방출되었던 스캇 해티버그를 마다하지 않고 선발한다.


하지만 머니볼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일 뿐, 성공 사례는 전무했다.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감독, 해설위원 모두 빌리의 전략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단지 '야구를 해본 적 없었던 통조림 공장 경비원의 이론일 뿐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빌리의 동료였던 피터는 명문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학자일 뿐 야구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었다. 반대하는 인물들은 모두 야구계에 20년 이상 몸담았던 사람이었기에, 경험과 직관이 없었던 그들의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 확신했다.


설상가상으로 17게임 중에서 14게임을 패배하면서 그들의 전략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빌리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다. 그는 지금까지 분석했던 수많은 데이터 자료를 근거로 선수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 맞춤 전략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점차 연승을 거두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9순위라고 판단했던 스캇 해티버그가 통쾌한 홈런을 날리며 20연승이라는 사상 최초의 쾌거를 보여준다.




이러한 성공에 대해 누군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고 판단하고,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인정한다.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이 '편견을 부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론, 야구가 아닌 경제학을 공부한 동료, 남들은 기피하는 선수들. 빌리는 기존 방식에 반하는 선택을 했지만, 그는 가난한 구단이 승리를 거머쥘 가능성 하나만을 바라보며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 한 스카우트 팀원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틀을 깨려면 아픔이 따르지. 저들은 야구의 방식뿐 아니라 야구 자체를 위협당한 거야. 뭣보다 두려운 건 밥줄이 끊기고 삶의 방식이 바뀌는 거지.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그게 정부든 사업가든 간에 그 일의 주도권을 쥔 자들,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다 광분하게 돼 있어. 이제 자네의 모델대로 팀을 해체, 재조직하지 않는 구단은 도태당할 거야.’

<머니볼> 대사


하지만 빌리는 승리를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그가 처음 목표 삼았던 '챔피언십 우승'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빌리는 냉정하다. 그가 감독이 아닌 단장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마치 전쟁에서 병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처럼 선수 개개인이 아닌 전체적인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는 팀의 합이 맞지 않는 선수들은 가차 없이 잘라내고, 선수를 다른 구단에 사고팔기도 한다.


이는 어린 시절 그가 겪은 실패와도 연관된다. 빌리는 교내 야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한 스카우터의 제안에 명문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중견수를 선택했다. 스카우터는 그가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한다며' 역량을 높게 평가했지만, 이는 프로 야구에서 어떤 역할에도 기대를 미치지 못한다는 단점으로 바뀌었다. 스카우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그는 처음과는 달리 점차 주목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신감을 잃은 그는 야구 선수를 포기한다.


이러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빌리는 아픔을 내딛고 성공을 하고도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는 늘 목표만을 바라보며 조급해하는 모습만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에게 딸 케이시는 Lenka의 The Show를 불러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난 단지 중간에 끼었을 뿐이야'외 같은 가사들은 영화 내내 방황하는 듯한 그의 심정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마지막 가사는 원곡과는 달리, 'You're such a loser, Dad(아빠는 루저야)'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는 지금의 성공을 성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빌리를 부추기는 말 같기도 하다.




낙담하는 빌리에게 피터는 홈런을 치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선수의 영상을 보여준다. 빌리는 영상을 보며 20연승을 기록하여 가난한 구단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자신 또한 이러한 결과가 실패가 아닌 홈런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이는 방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포함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의도하지 않게 우리는 '홈런'과 같은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냥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케이시의 노래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루저라고 말한다. 홈런을 경험한 우리는 그저 이러한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닐까.


빌리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야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한다.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예측 불가능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수많은 좌절과 고난이 있어도 극복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는 이를 믿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야구를 사랑하는 빌리의 모습처럼 사실은 우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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