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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Mar 30. 2023

사랑을 찾고 싶었던 캔디의 이야기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1980년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인공 캔디는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당찬 태도로 위기를 이겨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만화의 장르가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소녀의 성장도 함께 눈여겨보게 된다. 심지어 이로 인해 '캔디형 주인공'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드라마,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고난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여자 주인공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안면 홍조증을 지닌 스물아홉 양미숙의 이야기는 이러한 캔디 이야기를 닮았다. 그녀는 고아였고, 학창 시절 왕따였으며, 현재에는 러시아어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없어 영어 교사로 밀려났다. 심지어 고3 때부터 짝사랑했던 서종철 선생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미숙은 같은 러시아어 교사인 이유리 선생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수려한 외모와 천사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유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교사이며, 남교사들은 모두 그녀에게 푹 빠져 있다. 심지어 미숙에게 관심이 없던 종철조차 현재 유리와 묘한 기류 상태이다. 미숙은 어디서든지 주목받는 그녀를 누가 봐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밀려난 자신과 세상을 향해 울분을 터트린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너무 많아 걱정하는 유리에게 '네가 캔디냐고' 묻는 미숙의 말처럼, 앞서 말한 캔디형 주인공은 언뜻 보면 유리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 코미디라면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캔디를 닮은 주인공이 미숙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녀에게 닥친 상황은 누가 봐도 절망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더 이상 러시아를 가르치지 못할 때도 미숙은 주어진 환경에서 영어 학원까지 다니면서 아등바등 노력하고,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들켜 무시를 받을 때에도 속상해만 할 뿐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이렇게 받아친다.

'그래요. 전 영어 학원 다니는 영어 선생이에요!'




미숙은 유리와의 불륜으로 인해 이혼 위기에 처한 종철의 가족을 보며 덩달아 조급해진다. 이와 함께 종철의 딸 종희를 만나 설득하고, 그녀와 함께 부부의 이혼을 막는 방법을 계획한다. 알고 보니 미숙과 비슷한 처지였던 종희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다 하는 당찬 성격을 지녔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돼.

<미쓰 홍당무(2008)> 미숙의 대사


미숙의 말처럼, 두 사람은 할 일이 아주 많아진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을 낭독하며 자신들의 수준 높은 공연을 종철 부인에게 보여줘야 하고, 밤늦게 학교에 잠입해 종철의 메신저로 유리를 유혹하는 일도 해야 한다. 오직 이혼을 막기 위해 매일 만나는 둘은 점차 서로에게 동질감을 갖는다.




하지만 미숙이 술에 취한 종철과 잠자리를 가지면서 서로의 관계는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외박을 한 종철에게 화가 난 종희가 유리에게 그의 아내인 척 협박 전화를 돌리고, 억울해하는 유리에 의해 종철 부인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역이 되고, 오해가 쌓이며 언성은 높아져만 간다. 종철 부인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모두를 한 교실에 불러 모으고, 모든 사건의 중심이 미숙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미숙은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말로 반론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미숙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늘 존재감 넘치는 유리와는 다르게 자신을 봐주지 않는 눈앞의 사람들을 원망한다.


사실 그녀가 늘 원했던 것은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다. 학창 시절에도, 현재에도 미숙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안면 홍조증을 치료하기 위해 만났던 피부과 의사조차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숙은 종철이 학창 시절에 주었던 작은 관심에도 쉽게 사랑에 빠졌었다. 늘 사랑을 갈구했던 그녀의 본심은 안정된 애정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작중에 드러나는 종희의 귀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메리와 톰의 대사와, 미숙과 종희가 준비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반가웠어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정중한 대사는 미숙이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이상적인 말들이다. 미숙이 바랐던 것도 이와 같은 온기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군다나 그녀에게는 항상 발언권이 없었다. 부스스한 머리와 홍조를 가진 그녀의 외모, 우스꽝스러운 행동 때문에 무시받기 일쑤였다. 미숙은 부단히 노력했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유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미숙이 일으킨 사건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처럼 괴롭게 하려는 목적이 아닌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었기에 벌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종철 부인이 미숙에게 했던 말은 그녀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사람이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양 양도 사람인데!

<미쓰 홍당무(2008)> 종철 부인의 대사


숨어서 타인을 원망하기만 했던 미숙은 종철 부인에 의해 처음으로 발언권을 얻고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늘 조급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종철이 자신에게 주었던 관심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미숙은 새 출발을 하기로 결정한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출발'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자신의 콤플렉스였던 빨간 두 볼도, 종희와의 고루하고 우스운 연극도 모두 괜찮다고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 '난 네가 참 마음에 든다'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는 빨간 얼굴의 미숙은 누가 보아도 사랑스럽다.




결국 그토록 찾던 로맨스는 없었지만, 미숙은 그 대신 소중한 우정을 얻는다. 자신이 창피하다는 미숙에게 창피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이는 종희가 유일하다. 남들에게 무시받던 미숙과 종희는 서로에게 의지한다. 모두 손가락질하면 어떤가. 나를 믿어주는 단 한 명의 친구가 괜찮다고 하면 그만인걸!


우리는 언제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기 쉽다. 그 결과, 경쟁 사회에 치열하게 뛰어들기도 하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잔뜩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만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미숙은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1등에 목을 매느니 목을 매겠다!'라는 신조를 가진 미숙은 세컨드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는다. 이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미숙의 열등감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도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임을 알려주는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찾고 싶었던 캔디는 고난을 이겨내고 성장한다. 늘 조급했던 미숙이 마지막에 행복하게 웃는 장면도 이와 같은 맥락 같다.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는 미숙을 통해, 사람들 또한 각자의 세상에서는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염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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