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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Apr 07. 2023

척박한 노지에 가득 핀 미나리

<미나리> 정이삭 감독


'아메리칸 드림'. 행복한 삶에 대한 바람은 원주민들에게서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큰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역시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일념으로 이주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낯선 땅에 도달하기만 하면 다른 요소들은 금방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허상에 가까웠다. 영화 '미나리' 또한 1980년대의 순탄하지 않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또 캘리포니아에서 사람이 드문 아칸소로 이주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정착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두 번의 이주를 하는 이유는 가장인 제이콥의 꿈과 연관되어 있다.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가 경제적 여건을 마련한 제이콥은 아칸소에서 한국 작물 농사의 꿈을 펼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들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풍경과 트레일러를 개조해서 만든 집은 아내인 모니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심장병이 있는 막내아들 데이빗을 돌볼 곳이 없었기에 난감했다. 이 영화는 맞벌이를 해야 했던 모니카가 남아있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인 순자를 부르면서 시작된다. 또한 부부인 제이콥-모니카와, 조손 관계인 순자-데이빗이라는 두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 모니카-제이콥


두 사람의 갈등은 아칸소에 도착할 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두 인물의 가치관과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차이에 의해 발생되었다. 모니카는 말이 통하지 않는 미국 안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진 상태였다. 일터에서 한국인과 반갑게 이야기하고, 순자가 가져온 한국 식재료에 기뻐하는 모니카의 모습에서 이러한 그리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허허벌판이었던 아칸소에서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어떻게든 서로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제이콥과는 다르다. 제이콥은 모니카와는 반대로 자신이 실패를 겪었던 한국에서의 삶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고향과 연관성이 있는 '한국 농작물'은 단지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계 수단일 뿐이었다.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의 압박감 또한 심했다. 병아리 암컷은 살아남고 수컷은 폐기되는 광경을 보며 제이콥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이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자신의 식구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즉, 기회의 땅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에서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모니카는 아칸소에서 새로운 꿈을 펼치는 제이콥을 좋게 여기지 못한다. 모니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현실과 점점 멀어지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어딘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머나먼 한국에서부터 순자를 데려온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또한 농장 일을 돕는 동료 폴의 엑소시즘에 반응하지 않는 등 자신의 확신으로 일하는 제이콥과 달리, 꾸준한 신도였던 모니카는 '한국 교회'를 그리워했다. 그녀는 제이콥이 데려다준 미국 교회에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면서, 한국 교회에서의 추억을 되새긴다.


그들은 서로 타협하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우선시했다. 영화 초반의 작은 갈등은 아이들을 돌봐 주기로 했던 순자가 돌연 뇌졸중에 걸리면서 더욱 악화된다.




2. 순자-데이빗


순자와 데이빗은 정 반대의 삶을 살아왔다. 순자는 한국에서만 살아와서 미국에서의 삶은커녕 영어조차 할 줄 몰랐고, 데이빗 역시 미국에서만 자랐기에 한국 문화를 낯설어한다. 한국 할머니인 순자의 모습은 데이빗이 TV나 주변인들에게서 배운 Grandma의 모습과 달랐다. 일반적인 Grandma는 쿠키를 잘 굽고 착한 말씨를 가진 이미지지만, 순자는 쓴 약을 달이는 것 외에는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욕이 섞인 말투를 사용한다. 데이빗은 순자에게서 한국 냄새가 난다며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순자는 심장병이 있는 데이빗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인물이다.


지병이 있는 데이빗은 심장에 무리가 갈까 봐 다른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가장 약한 사람이자,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서랍에 찧어 피가 흐르면서도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데이빗에게 순자는 '스트롱 보이'라고 말한다. 또한 데이빗의 병에 대해 걱정하는 모니카에게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화를 몰래 듣고 있던 데이빗의 소망은 또래들처럼 아이답게 크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이후 데이빗은 교회에서 만난 로이와 함께 몸에 좋지 않은 담뱃잎을 물고, 화투를 치면서 노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 대한 편견을 부순 인물은 자신과 가장 동떨어진 인물이라 여겼던 순자였다. 


데이빗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한국 물건은 순자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다. 미나리는 연약하지만 어디서나 잘 자란다는 점에서 순자가 생각하는 '스트롱 보이' 데이빗의 모습과 닮았다. 순자는 미나리가 밥도 되고 약도 된다며 '원더풀'이라 말하고, 데이빗은 가락을 붙여 미나리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순자와 데이빗을 정서적으로 이어주는 장치이자, '엄마 손은 약손'과 같은, 손자에 대한 염원이 담긴 지극히 한국적인 마법 주문 같기도 하다.


아칸소에는 데이빗이 다닐 병원이 없었기에, 모니카는 자신의 아들의 병에 대해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니카의 불안감은 데이빗에게도 어렴풋이 전달되었다. 모니카는 한국 교회에서 들었던 하늘나라 이야기를 데이빗에게 공유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였다. 이를 지켜보던 순자는 죽기 싫다는 데이빗을 품에 안으며 어떻게든 기필코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원더풀. 순자는 노래를 부르며 데이빗을 달랜다. 주문처럼 반복되는 노래가 순자의 기도로 이어졌던 것일까. 다음 날 데이빗의 건강은 호전되고, 순자는 곧바로 뇌졸중 증상을 보인다. 지극히 우연적인 일이지만, 순자가 데이빗의 병을 모두 가져간 것처럼 보인다.




3. 두 관계가 얽히며 불러일으킨 결과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데이빗의 증상에 대한 의사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결국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채 갈라선다. 모니카는 자신이 사랑하는 순자를 돌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나기로 하고, 제이콥은 농장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 모두 잃는 한이 있어도 남는다고 말한다. 두 인물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제이콥은 자신의 일이 곧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심장병을 가진 데이빗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볼 사람 하나 없는 외딴곳에 터를 잡았다. 모니카 역시 갑작스레 순자를 미국에 부르며 자신의 그리움을 해결하지만, 순자의 병은 또 다른 걱정거리로 남았다. 결국 미국에서 서로를 구해주자고 다짐했던 부부는 서로에 의해 더욱 상처를 받는다.


부부 싸움이 싫었던 데이빗은 갑작스레 찾아온 순자를 원망한다. 자고 있던 순자는 이를 들었던 것일까. 순자가 실수로 지른 불에 의해 농작물 창고가 그대로 타버리면서,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한다. 마치 자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아이들은 순자를 힘차게 부르지만 듣지 못한다. 데이빗은 순자를 붙잡기 위해 처음으로 뛰어간다. 이와 동시에, 갈라질 것 같았던 부부의 관계 또한 화재에 의해 회복된다. 막상 생계를 책임지는 작물들이 몽땅 불에 타 버리니 부부는 불길 속에서 서로를 구한다.


다시 모인 네 명의 가족은 한 공간에서 잠이 든다.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가족은 다시 뭉친다. 결국 제이콥이 공들인 작물은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마구잡이로 심은 순자의 미나리였다. 미나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트롱 보이' 데이빗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했음에도 다시 뭉쳐서 새로 시작하는 가족을 담기도 했다. 부부는 꿈, 가족, 생계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의사는 데이빗의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뭐든 정답이니 그대로만 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우선순위를 중요시하던 부부의 선택이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빗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제이콥이 마련한 땅과 모니카가 데려온 순자, 어느 것이 정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아주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척박한 노지에 잔뜩 핀 미나리는 영화 속 가족들을 포함한 이주민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쉽게 자라날 수 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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