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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Apr 14. 2023

살인자로서 나는 아마추어입니다

<살인광 시대> 찰리 채플린 감독


이 영화는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만연하게 발생하는 살인들을 베르두의 최후진술을 통해 역설한다.





어느 상황에서든 살인은 정당화할 수 없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인공 베르두는 3년간 12명의 중년 여성들을 살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선고를 하려는 재판관에게 베르두는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이 싫어하는 게 살인자 아닙니까? 오직 살인만을 위해 파멸의 무기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순진한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산산 조각내지 않았습니까? 아주 과학적으로 행해졌죠.
살인자로서 나는 아마추어입니다.

<살인광 시대(1947)> 베르두의 대사



이 영화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다. 대공황 이전까지의 베르두는 30년간 은행에서 착실하게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베르두의 생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은행에서 강제로 퇴직당한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생계 장치로 살인을 택한다. 수많은 여자들을 살해하고 재산을 강탈하는 그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고, 이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베르두는 처형대에 오르기 전 감옥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이와 함께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 현실에서 절대로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의 혼란을 야기했던 대공황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경제적 타격은 많은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내몰게 한다. 미래가 불분명해진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누구라도 베르두와 같은 상황을 직면할 수 있다. 베르두가 저지른 범죄는 분명한 악행이지만, 살인자이기 이전에 그는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수면 아래에서는 더 많은 살인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베르두는 살인을 사업으로 생각한다. 많은 기업들과, 전쟁과, 투쟁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상황에서는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심지어 어떠한 살인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결국 혼란은 살인을 야기한다. 이것이 진정한 '살인광들의 시대'가 아닐까.


영화는 살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번번이 실패하거나 자신이 당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관객들에게 초조함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줄 수도 있지만, 베르두의 행동을 통해 친근함을 담아내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악행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베르두의 잔인함은 희석되고, 범죄 자체에 집중하지 않게 만든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최후진술 장면에 설득력을 불어넣고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사회의 혼란은 절망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베르두가 한창 여성 등장인물을 죽이려던 때,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베르두는 자신이 만든 독을 실험하기 위해 여자를 자신의 집에 불러들이지만, 여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행동을 급히 중단한다. 여자 역시 베르두와 비슷한 처지로, 몸 바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어려운 생계를 극복하려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사랑에 대해 코웃음 치는 베르두에게 '사랑은 서로 희생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베르두는 이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흔들렸을까?


2차 세계대전 무렵 여자와 베르두는 다시 만난다. 베르두의 사업은 실패로 거듭났고, 여자는 희망을 품은 덕분인지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뒤바뀐 처지 속에서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는 이유가 없어요. 그냥 사는 거죠. 그것이 운명이라면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여자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저 살 운명이기에 사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피해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를 원망하고 또 다른 이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찾는다. 사형 선고 이후 베르두는 감옥에서 여자의 희망찬 말을 곱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형대에 오르기 전, 교도관은 베르두에게 럼주를 권한다. 이를 마다하려던 베르두는 생각을 바꾸고 럼주를 마신다. 죽음 직전 '생애 처음으로' 마시는 것이었다. 럼주를 마시는 행위는 죽기 직전 그가 깨달은 삶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베르두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어찌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설적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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