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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May 19. 2023

단절과 낙인의 크리스마스

<블랙 미러: 크리스마스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

*2022년 01월에 작성된 글입니다



과학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빛낼지라도, 기술의 그림자적 측면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블랙 미러(2013)>는 첨단 기술의 이면을 소재로 한 디스토피아 영화로, 여러 가지의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도 두 남자의 암울한 대화를 담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글을 쓰려한다. 보통 크리스마스는 연말을 기념하는 행복한 기념일이지만, 조와 매튜라는 두 남자는 다소 비극적인 기념일을 보낸다. 둘은 어쩌다 눈보라가 치는 산장 속에 고립되어 있었을까.




영화 속 사람들은 모두 ‘제드 아이’를 가지고 있다. 태어난 모두가 안구에 설치하는 이 기술은 시야에 담긴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여 해당 인물의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고, 제삼자에게 자신의 시야를 공유할 수도 있다.


매튜와 조, 두 사람은 ‘제드 아이’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영화는 두 명의 인물이 각자의 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튜는 데이트 조언을 빙자하여 의뢰인과 제드 아이를 공유하고, 이를 몰래 많은 사람들과 관음 하는 모임에 속해 있다. 그는 의뢰인 해리의 시야를 공유하며 그의 삶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해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매튜의 조언에 의지하고, 클럽에서 만난 제니퍼에게 오해를 사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고 죽음에 이른다. 얼떨결에 살인 광경까지 마주한 매튜는 시청 기록을 은폐하려다 아내에게 들켜 차단당한다.




제드 아이의 기능 중 하나인 '차단'은 특정 인물과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킨다. 얼굴과 목소리는 물론, 전화와 메시지 등의 통신 자체가 불가능하며 오직 서로를 실루엣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매튜의 이야기가 끝나고, 동일한 차단 기능을 통해 안타까운 나날을 보낸 조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조는 아내 베스의 갑작스러운 임신에 기뻐하지만, 베스는 오히려 조를 회피한다. 영문도 모른 채 베스에게 차단을 당한 조는 연락할 방도가 없어 그녀의 아버지의 집으로 향한다. 


근황을 알기 위해 매년마다 베스와 아이를 실루엣으로 확인하던 조는 베스의 사망 소식을 접함과 동시에 차단이 풀린다. 조는 그토록 궁금했던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러 간다. 하지만 동양인의 모습을 한 아이를 보며 베스가 외도를 통해 낳은 자식임을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져 베스의 아버지를 살해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산장 주변을 둘러보던 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돌변한 매튜는 조에게 자백을 요구하고, 조가 자백하자 산장에서 사라진다. 산장의 정체는 조의 복제된 의식이며, 조는 자신이 기억을 복제한 '쿠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쿠키'는 제드 아이만큼 비중 있는 기술로 영화 내에서 등장한다. 기억 복제 기술을 통해 원본인 인간의 의식을 그대로 복제한 쿠키는 일상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해 생겨났다. 매튜의 직업은 이러한 쿠키들을 관리하는 것이며, 컨트롤러를 이용해 쿠키의 의식을 건드릴 수 있다. 인간이었던 기억을 지닌 쿠키는 자신이 복제된 의식이라는 사실에 대해 불복하지만, 매튜의 통제에 의해 끝내 원본인 인간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된다.


쿠키가 된 조는 크리스마스 음악이 반복적으로 흐르는 산장 속에서 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매튜는 관음죄로 처벌받으며 제드 아이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차단당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발달된 기술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두 남자의 이야기에서 몇 가지의 궁금증이 생겨났다. 먼저 제드 아이, 쿠키와 같은 과학 기술이 과연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발전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모두가 제드 아이를 사용하는 영화 속 세상에서는 현재에서 할 수 없는 누구나 '차단' 기능 하나로 손쉽게 타인과의 접촉을 금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손쉽게 소통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낙인이 찍히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전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기술을 이용한 형벌은 확실하지만 잔인해 보인다. 하나의 인간을 공동체로부터 순식간에 단절시키는 기술에 대해 정당함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영화에서는 원본인 인간의 관점이 아닌, 복제된 의식의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서 들었던 궁금증은, 복제당한 정신 또한 자아로 취급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나의 머릿속에서 복제된 데이터들은 주체를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의 인격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편리한 생활을 위한 기술의 일부로만 취급해야 할까.


기술은 우리를 대신하여 좋고 나쁜 것을 대신 판단한다. 이는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염려를 줄이기 위해서다. 현재의 기술은 많은 정보 수집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알고리즘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사회적 연결망이 이러한 예시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쿠키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겨났다. 사람의 뇌를 그대로 복제했기에 원본과 완전히 일치하고, 그 결과 소비자들의 욕구를 100% 충족시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쿠키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기술로 취급된다.


하지만 영화는 쿠키를 인간으로 표현하여 그들에게 마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쿠키는 그 자체로서 의식이기에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학습하고, 감정을 느끼며, 끝내 자신들의 존재를 자각한다. 의식이 있는 상태의 쿠키 또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한다면 오로지 인간을 위한 프로그램이 되도록 강요하는 매튜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현재도 이와 비슷한 시리, 빅스비와 같은 음성 인식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기에, 언젠가는 영화 속 기술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오롯이 인간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며, 상용화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이 인간의 세심하고 정교한 부분을 건드릴수록 이러한 크고 작은 문제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기술로 인간을 손쉽게 다루는 상황에 대해 조금은 경각심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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