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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민넷 Mar 06. 2021

시선으로부터

너무 흥분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처음 정세랑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건 유퀴즈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걸 본 거다. 그 이전에는 사실 잘 몰랐다.

물론 보건 교사 안은영이 넷플릭스에서 워낙에 유명한 드라마였고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 남주혁, 정유미가 나온다길래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를 본 적도 없고 내용이 sf라길래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라며 지나쳤다.

유퀴즈 인터뷰를 보는데 이 작가의 책이 페니미즘,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녹여서 쓰는 소설이라는 거에 놀랐다. sf소설인데 그게 가능해? 그런 건 주로 픽션이나 에세이로 강한 어투로 말해야 통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처럼 고구마 백개 먹은 이야기로 써야 하는 거 아니야? sf소설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매우 궁금해졌고 그래서 기웃거리다가 선택한 것이 ‘시선으로부터’라는 책.


솔직히 나는 시선이 사람들의 눈이 가는 방향의 그 시선인 줄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 뭐 그런 류의 이야기일 거니 하고 책을 펼치니 바로 드러나는 것은 심시선이라는 여자의 가계도. ㅋㅋ

그렇다, 이 책은 심시선이라는 어느 파란 장만한 삶을 살아낸 여자로부터의 가지들이 그녀의 사후 10년을 맞아 하와이에서 벌이는 일종의 제사를 준비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적어낸 소설이었다.

늘 시작은 시선의 인터뷰로 시작하는데 그게 마치 논픽션 같아서 정말 그런 게 있나 찾아보고 싶어 질 정도.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인 자식들과 손자들이 그녀를 기억하는 유쾌한 방법들과 제사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들이 정말 부드럽게 진행된다.

읽기 어려운 부분도 없이 쏙쏙 빨려 들어가듯 잘 읽히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문체가 그런 스타일인 거 같다.

다만 이름이 많아 계속 앞의 가계도를 들쳐 보았다는 것은 안 비밀. (한 번에 다 기억할 수가 없는 나의 기억력.)

등장인물 개개인이 기억하는 시선과의 이야기와 시선의 제사상(?)에 올릴 물건 혹은 경험을 찾기 위한 시간들의 서술도 참 좋았다  

마지막 5 챕터를 오늘 사번이를 미술학원에 들여보내고 카페에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 오열을 하고 말았다.

등장인물 중 우윤이라는 친구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다.

어릴 때 큰 병을 앓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병명이 나오진 않지만 내 느낌으로는 아마도 혈액암?으로 느껴진다. 그 긴 터널을 잘 통과하여 성인이 되었지만 늘 그 죽음에 터널을 견뎌 온 우윤이 겪을 마음의 그림자가 있었겠지. 그걸 벗어나려는 몸짓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택한 서핑.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에도 결국 그녀는 가장 큰 파도에 몸을 실었고 그 파도를 온몸으로 느낀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파도를 탔지만 방향까지는 조절하지 못하는 그 부족함이 더 감동으로 와 닿아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우윤과 똑같이 물에 흠뻑 젖은 죽음이, 어린 시절 그렇게 두려워했던 대상이 투명한 팔을 우윤의 어깨에 잠시 두르고 기이한 격려를  주었다.

큰 파도 체질이네. 그런 사람들이 있지.”

p291


우리 나연이도 큰 파도를 헤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나연이도 파도를 탔을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엉겨서 그저 눈물로 흐를 뿐이었다.

그곳이 카페였다는 걸 잊을 만큼.



그리고 시선의 제사가 시작된다.

가족들이 준비해 온 것들이 다 너무 기상천외하고 노력이 대단해서 울다가 웃고 말았다. ㅋㅋ

이렇게 유쾌한 그러나 진심인 제사라니...

벌써 올해로 5주년이 되는 나연이의 기일인데 우리도 10주년 즈음에 이렇게 유쾌하게 나연이를 기억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나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사랑이 이 책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마음이 따듯해졌다.

나중에 작가의 말에서 심시선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 바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유퀴즈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주변 지인들에게서 찾고 악당의 이름을 스팸메일에서 찾는다는 걸 봤는데 급 우리 나연이의 이름이 언젠가 작가의 책에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생각지 못한 눈물을 준 이 책을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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