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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브 임 Sep 10. 2020

실패와 타협에 대한 마음가짐

"아들. 인생을 살면 꼭 성공하는 게 아냐. 실패도 한단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많은 것에 노출되는 것 같아. 어떤 사람은 그 실패로 목숨을 잃기도 해. 때로는 일을 하면서 실패해서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람들도 있고, 알 수 없는 질병에 생을 마감하기도 하지. 또 어떤 사람은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 다시금 자신의 삶과 성공을 찾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어떤 사람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지. 하지만, 모든 형태가 난 실패는 아니라고 봐. 자신이 결정하고 받아들일 최선의 결과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중요해. 그것을 사용하던 사용하지 않던, 때로는 우리에게 좋은 정보이자 인생의 가이드가 될 수 있으니까. 실패는 우리 일들 속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일 꺼야. 나의 실패가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와의 대규모 전쟁은 아니니까. 이럴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듯 해.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당연한 듯 여겨지면서도, 두 가지 일이 발생했을 때, 자존감이 많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간단하게 2가지로 꼽으라면, 실패이고 타협일 때 그런 것 같아. 나이가 들다 보니, 실패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 젊었을 때는 이렇게 결정했을 것 같은데, 내 삶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음을 느껴. 젊었을 때 실패보다는 리스크가 크고,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 아마도 그것은, 내가 내 손에 쥔 여러 가지 것들이 많기 때문일 거야. 가족, 집, 차 그리고 직업과 취미, 안정적인 생활등. 우리의 삶이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모험적인 일을 많이 하지만, 안정적이다라고 느낄수록 사람은 대부분 그 안정에 취하려고 하지.  안정적인 생활에 익숙한 면도 있을 수 있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실패는 견디기 힘든 것도 사실이야.


아빠는 과거를 돌아보면 몇 가지 실패의 일들이 생각나네. 전체 과정 중에 실패라 다시 회복하고 좋은 결과를 낸 case도 있고, 때로는 그 실패로 인해서 마음이 불편해서 한동안 아무런 일도 못한 경우도 있었어. 노력을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 일들도 있고, 때로는 별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었던 거 같아. ㄱ게 뭐라고 하무리 말해봐야 모든 사람들의 케이스가 다르듯이, 아빠도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아. 그냥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지.


 "우리는 운이 없었다."


이렇게 치부하고 다시금 힘을 내서 도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아 이제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체념하고 다시금 새로운 것을 찾는 경우도 있어. 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쉽게 단념도 되고, 포기도 되고, 위로도 되지.


나도 직장 생활에서 각종 자격증과 시험과 모든 성과를 잘 낸 부분들이 있지만, 실패한 경우가 있었어. 100% 성공하고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이 세운 기준을 통과하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야. 누군가 그러더라 공부는 선천적인 것이라고.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을 수 있지만,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들도 있지. 잘 판단해야 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아무리 동기가 부여되고 잘할 것이라고 생각해도, 내 길이 아니라면 굳이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게 정답일까?


아는 분이 십여 년 사법고시에 매달린 분이 있었지만,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안 되는 건 안되나 봐. 그리고 결국 포기를 하셨지만, 그건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포기하시더라고. 결혼도 하시고 집도 잘 사셔서 그렇게 도전했을 수도 있지만, 동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 같아.


나이가 들 수록 인생만사 새옹지마란 말이 가슴에 들어온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언제 간 바로 잡으면 될 일을 내가 만든 시기와 지금이라는 판단에 그르치게 된다면 그건 시도하지 만도 못한 일이 될 수도 있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어쩌면 보편타당한 그러한 것들이 기업에 더 잘 되어 있고, 공직사회나 이런 쪽에는 이런 격언(?)들이 꼭 적용되는 사회가 참 아쉽기도 하지만, 요즘같이 사회보다는 우리보다는 내가 중요한 세상에서 운으로 세상을 정의 내려버리기에는 너무 아쉬운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


그냥 예전의 중국 고대 시대처럼 왕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나만 잘살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모든 관계와 생활 속에서는 기본기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우리나라가 북유럽과 같은 사회복지 국가가 되지 않는 한, 세종대왕과 같이 왕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앞으로 더욱더 많은 간섭 속에서 살게 될 거야.


지금 느끼는 부모의 간섭은 약과에 불과하고, 아 부모 아래 있는 게 좋았구나 느낄 때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강요할 생각이 없어. 왜냐면 인생은 너의 것이고 네가 결정하는 게 후회 없는 삶이 란걸 아빠는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럴수록 실패에 대해서 어떻게 파악하고 어느 정도까지 내 인생과 타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결과에 대한 타협. 타협하지 않으면 그냥 공부하고 도전하는 것이고, 다 협하게 되면, 네가 결정했듯이 체육이나 다른 쪽으로 너의 방향성을 트는 것이겠지. 세상은 길이 너무 많아서 네가 어느 결정을 하든 그 길은 항상 예비되어 있음을 느껴.


 아빠는 며칠 동안 좀 힘들었어.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고, 직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작은 실패들이 아빠를 기운 빠지게 할 수도 있고, 큰 잘못이 그럴 수도 있지만, 인간의 감정 또한 우리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내 형편과 사정이 그렇게 타협을 강요할 수 있지만, 어쩔 때는 나와 상관없는 환경의 변화가 그렇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러한 활동과 노력들이 어쩌면 나만의 공허한 외침이 아니고,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는 독립 운동가처럼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때도 있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무현이란 영화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 어머니라 나서지 마라, 강한 자에게 붙어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자식인 노무현 대통령이 그것보다 오히려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며 그래도 바꿔 보려고 했던 그 의지가 생각나네. 어느 사람은 나라를 보며 세상을 바꾸고 대통령 까지 되었지만, 아빠는 그렇게 큰 것을 너에게 원하지 않아. 그냥 세상에 주어진 너의 길을 니 스스로 잘 개척하기 바랄 뿐이야.


작은 변화와 숨소리에도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작은 것에 매진하는 사람이 되든, 아니면 큰 것을 쫓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던지, 당연히 니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될, 좌절과 실패에 무너지지 말고 그냥 네가 선택하길 바래.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을것인가? 아니면 어느정도 까지 타협할 것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겉으로는 쿨한척 행동하지만, 그냥 내 아이가 혜택 받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그러한 생각들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을 2014년에 겪었지만, 세월호에서 겪었던 실패들을 개선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느다는 생각을 부모들은 하고 있지. 아니면 그 개선되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고 느끼기도 하지.


다시는 우리 아이들이 이러한 일을 겪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또 다른 문제와 케이스안에 던져지는 것을 보게돼. 이 사건 이후 초등학생 과정에 수영등에 과목이 강화 되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아이들이 놓였을 때,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우선 되었으면해.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때 어떻게 해결하고 결정할 것인가?


 얼마전 지하철에서도 화재사건이 났는데, 대기하라는 말로 인해서 승객들이 참지 않고 문을 열고 전원 탈출한 뉴스.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을 때, 빨리 대피하라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타협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도전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한 실패에 대한 타협과 개선이 아닌 도전이 아닌 현실에 대한 안주는 독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


그냥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세상은 이제 지났어. 무엇이든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 아니면 그러한 결정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도 있고. 그렇기에 많아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도 자신의 목표없이 움직이며 부모를 통해 배운 가치관들이 아이들에게 스며들어가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판단을 내릴수 있다고봐.


"아들! 그래서 아빠의 말이나 제시를 따르지 않기를 바래! 그러한 결정또한 모두 니 스스로 하길 바래"


아빠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고, 아들이 어떤길을 가든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실패해서 돌아온다면 그냥 나무처럼 그자리에 있을 뿐이야. 설령 내가 죽더라도 아들이 옳은 결정을 하기를 바랄 뿐이야.


"실패는 필연적이야. 하지만, 타협에 대한 결정은 순간적이지"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는 어쩌면 포기가 아니라 기다림이라고 봐. 기다림은 어쩌면 강태공이 60까지 기다렸던 그 긴 기다림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짧은 기다림을 준비하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다림일 수 있어. 감정대로 하기보다 참고, 인내하고 젠틀하게 대응하는 모습들이, 그리고 끊고 맺음이 정확한 것이 프로라는 생각이 들게 되네. 맺고 끊음이 명확하고 때로는 인정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깊은 탄식과 아쉬움 속에서 한가지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실패하고 일어난 사람들, 타협하더라도 다시금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는 것이야.


작년에 최동원 야구선수의 동상을 어머님이 매주 찾아간다는 뉴스를 접했었어. 그냥 야구장에 동상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갈곳이 없이 무덤만을 바라 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 아들이 씩씩하게 던지는 동상 앞에서 아들의 생전 모습을 그리고 다시금 힘을 얻는 다는 어머니의 말씀. 어쩌면 아빠가 바라보는 이상의 끝인지도 몰라. 열심히 세상을 살다 죽고,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흔적을 쫓아 힘을 얻고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을 살아온 또 다른 나를 발견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아들에게 그런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아빠는 항상 어떤 일을 할 때 너희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어. 어떠한 결정을 할때도 말이지.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내가 넘어져도 일어 날수 있는 힘이 되기도해. 그리고 나를 잡아 주는 중심이기도 하고 말야. 이러한 것들을 실패의 경험에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해. 그리고 교육도 중요하고 말야. 아빠도 좌절을 했고, 실패를 했어. 그리고 울기도 많이 하고 말야. 하지만 다시 일어 날 수 있었던 건 너희들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 때문에 말야. 그래서 부모님들이 그렇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라고 했나봐. 하지만, 말야, 너희들의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야. 아빠가 그랬다는 것이지 너희 인생은 너희가 결정하니까, 어떠한 인생을 살던지, 아빠는 마을 어귀에 서있는 나무가 되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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