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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Sep 17. 2020

코로나를 '견디는' 동네 카페 생존기.

네! 아직 영업하고 있습니다!

개뱅(개병)이 돌고 있다. 우리 집 개도 개뱅에 걸렸는데 첨에는 제 애미를 먼저 물어죽이드만 후에는 제 아가리로 죽일 수 있는 것들은 몽땅 물어 죽였다.... (영화 '황해' 中에서)

 문득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도입부 내레이션이 생각났다. 무심한 듯 셔터를 올리고 카페 문을 열었지만 그 날은 하루 종일 '개뱅'이 머릿속에 박혀 혼자 조용히 뇌까리곤 했다. 한산한 거리에 가끔씩 지나가는 이들의 표정을 들여다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흰색 천을 두르고 땅바닥을 보며 걷곤 했다.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나른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호퍼에 담긴, 산폐 되어 더는 사용할 수 없는 원두를 덜어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 역시도 싱크대 배수구에 흘려보냈다. 냉장고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자몽과 레몬 역시도 마찬가지. 물론 녹록지 않은 가격이지만 그렇다고 손님에게 변질된 맛의 음료를 내어주기란 양심 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율마 화분에 물을 주며 안부인사를 건넸다.


"잘 잤니?"


얼마 전 연이어 몰아닥친 태풍도 버텨낸 녀석들이라 어찌나 대견스러운 지 모른다. 쪼그만 놈들이 어쩌면 제 주인보다 뚝심 있어 보이기에 적잖이 위로가 되곤 한다. 가게로 돌아와 영업준비를 마치고는 버젓이 손님들이 앉으시는 테이블에 당연하다는 듯이 내 둥지를 틀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멍하니 차창 밖을 응시하는 일뿐.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20평 남짓 조그만 커피숍에서 붙박이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직장인들이 보면 '복에 겨운 놈'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만. 솔직한 심정은 "제게도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항변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밖으로 나가 전단지를 돌리거나 호객행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닐진대, 돌덩이 같은 답답함을 환기 탓으로 돌리곤 창문을 열어젖히곤 한다.


"챙그랑"


 차임벨 소리와 함께 마수 손님이 들어섰다. 동네 카페인지라 대부분이 단골손님인데 반해 오늘 개시는 초객이다. 평소보단 이른 시각에 첫 손님을 맞이하니 마스크에 덮인 입술이 샐록 거렸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와 함께 카운터 앞에 자리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네, 저희 가게에서는 산미 있는 원두와 고소한 맛의 바디감 있는 원두,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 그냥 맛있는 걸로 줘요."


"아, 네.."


 이런, 가끔씩 벌어지는 일이만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식은땀 한 방울 주륵. 잠시간의 내적 갈등 끝에 우리 가게 손님들 열 중 여덟은 고소한 맛을 선택함으로 대중적인 맛이 낫겠지, 라는 생각에 정성 들여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테이크아웃 컵에 옮겨 담아 손님께 건네며 말을 걸어보았다.


"저희 가게 쿠폰 있는데 하나 만들어드릴까요? 다섯 개 모으시면 마카롱이 서비스..."


"아 됐어요."


 손님이 대뜸 말을 자르고 돌아가 나가셨다. 딸그랑, 차임벨 소리와 함께.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실지, 요즘 들어 이렇듯 짜증 섞인 말투로 주문을 하시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난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한 분 한 분의 소중함을 알기에 더욱 속상하기 그지없다.


 시계는 어느덧 한 시를 가리켰다. 보통 때였으면 점심시간이 끝난 후 러시가 들어올 타이밍이지만 애초에 그러한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는데 이번에는 손님 대신 '일수 명함'이 날아다닌다. 꽤나 기술이 좋아서 인지 매일 같이 기가 막히게 문 앞으로 '배달' 된다. 쩝.

 요새 재미 들린 취미가 '기타 연주'다. 원래 인테리어 소품으로 갖다 놓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기타 연습은 꿈에도 꾸지 못할 정도로 몸을 바삐 놀렸는데. 그런데 이게 웬걸? 요즘 기타 실력이 너무 빨리 늘어서 문제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고민이지만. 어쨌거나 생초보였던 내가 이제는 완곡이 가능한 노래가 몇 개 생겼다. 이제 진정 '베짱이'가 돼버렸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시국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익숙한 얼굴의 손님이 찾아주실 때는 뛸 듯이 기쁘다. 넉살 좋게 몇 마디 붙여볼 법 하지만 원체 소심한 놈이라 내색조차 못하고 그저 한 잔의 커피에 나의 온 맘을 담을 뿐이다. 하루를 뜻깊게 보낸다... 는 느낌보다는 하루를 견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나 묵묵하게 본인의 업을 계속 '견디는' 많은 분들이 존경스럽다. 비록 초보 소상공인으로 간신히 이제 첫 발을 디뎠지만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잃은 것도 많았고, 반면에 '생의 경험치'를 얻어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개뱅'이 끝나서, 마스크를 벗고 웃으며 인사하는 날을 기다린다.


 "어서 오세요! 날이 참 좋네요. 오늘은 어떤 음료로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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