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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Apr 06. 2021

자가격리, 내게도 이런 일이?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죠.

 지난 토요일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숍 문을 열고는 밀린 청소도 좀 하고, 에스프레소 세팅을 한 뒤. 인스타그램으로 가게 소식도 업데이트하며 오늘 마수걸이는 몇 시쯤 하려나 하는 기대감에 젖어 잠시 창 밖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더랬죠. 하지만 얄궂게도 주말 내내 비 소식이 있더라니만, 역시나 꽤 많은 양의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더라고요. 하아, 가뜩이나 힘든 요즘 시기에 3주째 주말마다 비가 와서 몹시 심란하고 꾸꾸리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복잡한 속내도 달랠 겸 채 시작하고는 마무리 짓지 못했던 습작들이나 좀 더 다듬어 볼까 하던 차였습니다. 삐리리리, 휴대폰이 울렸더랬죠. 에이씨, 또 바이럴 마케팅 광고 전화려나? 하는 마음에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X시 보건소 ○○입니다. 실례지만, △△님 맞으신가요?"

 

 순간 혀가 마비된 것만 같았고, 손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죠. '보건소' 라는 단어는 '코로나'와 치환이 가능한 시대잖습니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답을 이어나갔습니다.


"네 △△ 맞는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다름이 아니오라 27일 10시경 XX 매장에 들리신 적 있으시죠? 확진자와 밀집 접촉한 사례가 의심되어 전화드렸습니다. 혹시 지금 당장 자차로 선별 진료소로 이동하시어 검사 가능하신지요?" 


 헐. 말 그대로 '헐', 이를 어쩌면 좋으려나. 순간 눈 앞이 새카매져 갔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청정지역을 자랑하는 시골이라지만, 이거 이거~ 당사자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순식간에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네, 자차가 없는데 그럼 택시 타고 보건소로 가면 될는지요?"

"아뇨! 아뇨! 절대 그러지 마시고, 앰뷸런스 불러드릴 테니 구급차를 타고 진료소로 오시길 바라요."


 아, 2차 감염의 우려가 있으니 택시도 타면 안 되었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마치 죄지은 사람인 양 후다닥 가게 마감을 한 뒤, 앰뷸런스를 기다렸습니다. 빗 속에서 30분가량을 경황없이 얼빠진 얼굴로 기다리니 응급차가 도착했습니다. 그만큼 확진자와 접촉한 의심자들이 많았던 깜냥이었습니다. 


 선별 진료소에 도착해 난생처음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전해 듣기론 코나 식도에 검사를 할 때 엄청 고역이었다던데, 신기하게도 저는 그다지 괴로움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검사는 의외로 5분 조차 채 걸리지 않았고 저는 다시 구급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아 물론, '자가 격리'라는 족쇄를 찬 채로 말이죠. 


 집에 돌아와서 사실상 '가택 연금' 신세를 생각해보자니 한없이 분노가 치밀어올랐습니다. 대체 왜! 그 자리에, 그 시간에. 확진자가 하필이면 내가 머무른 동안에 있었느냐고! 아오 정말!


(사실 확진자도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닐 테지만요. 이래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 봅니다 허허)


 꾸역꾸역 남은 하루를 씹어 삼키며 가게는 어쩌지, 양성이면 어떡하지, 혹여 소문이라도 이상하게 나면 어떻게 하지. 등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잠은 일치감찌 저 멀리 달아났고, 이슥히 새벽이 흘러내렸다가 물러갔죠. 잠시 새우잠을 자다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이 떠졌습니다.



 정말이지 천만다행 만만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진정하고 있는데 곧이어 보건소 직원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가 격리자 대상 생필품 지원 및 애플리케이션 설치 안내에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나가보니 커다마한 종이박스가 놓여있었습니다.



 사실, 장사를 하면서 '아, 한 일주일만 쉬었음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막상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되니 가슴속 켜켜이 쌓인 답답함과, 언제 양성반응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카페를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에 대한 미안함과 당혹스러움 등의 여러 생각들이 곁가지를 틀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뿌리를 내리더군요.


 개중 가장 힘든 점은 말벗조차 없다는 '외로움'이었을 테죠. 자가격리 사실을 자랑하듯 동네방네 퍼트릴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아직 '확진'과 '음성' 사이 그 애매모호한 선상에서 발을 디딘 제 신세를 토로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워졌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은, 어서 무사히 이 시기가 지나가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왔던 모든 사람들과 바람결에 흩어질 작은 인연이라 할 지라도 세상 무엇보다 소중히, 감사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채 지울 수 없는 불안감과 외로움에 맞서 담담히 버티고 있을 수많은 '자가 격리자' 분들 모두 힘내시길 바라고 바랍니다. 또한 이 광막한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가며 지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많은 분들을 응원해 봅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죠? 


문득 어느 영화의 카피 문구가 떠오릅니다.


우린 반드시 답을 찾을 겁니다. 늘 그래 왔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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