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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Jun 08. 2021

5만 원이 없어 못 간 절친의 결혼식.

그까짓 자존심 때문에.

 사실 나는 그리 친구가 많지 않다. 치기 어린 과오들이 많아서였을까. 남을 괴롭힐 성정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까지 관대한 놈도 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찾아온 '우울'의 낭자함으로 알약들을 삼켜야 했던 밤은 길고 지난했으며 내 몸의 흉터가 늘어날수록 나를 멀리하는 주변인들의 난처함은 배가되었을 터였다. 때문에 나는 야물진 꿈을 키우며 학창 시절을 보내기보다 정신과를 들락거리며 검정고시 책을 잡아야만 했다. 당연히, 하굣길에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걸어올 친구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이 언덕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담배를 꼬나물곤 두 눈으로 노려보기 일쑤였다. 졸업 앨범은커녕 수학여행의 추억마저 건져 올리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꽤나 무료했으리라 곱씹어본다.


 이렇듯 때 이른 고독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 나왔을 때에도 '재현'은 다른 녀석들과 달리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바라봐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이 친구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까지도 나와 시간을 자주 함께해주었다. 우린, 한창 유행하던 '플스방'에 가서 축구 게임을 하기도 했고 간판장이가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영화관에서 '실미도'를 처음 보기도 하였으며 스트레스가 쌓였을 땐 노래방을 가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담배가 없어서 꽁초를 주워 피던 나를 놀리면서도 막 대하진 않았고, 유난히 콤플렉스가 많았던 나를 비웃으면서도 언제나 선을 넘지 않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재현에게 꽤 많은 부분을 의지했었던 듯싶다. 



 시간이 지나 나와 재현은 각자 대학에 진학을 했고 그렇게 인연은 끊어지는가 싶었다. 법학을 전공한 나는 여전했던 지랄병이 악화돼 채 전공서적을 읽기도 전에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고 당연히 대학 동창들과의 거리는 몇 만 척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친구를 만들기란 하늘에 별따기였고, 허송세월을 할 바에야 되지도 않는 재주를 살려보겠다고 고향에 내려와 홀로 커피숍을 열고 작가의 꿈을 키우며 글을 끄적거리던 나날들이었다.


 정말이지 우연히도 '재현'과 연락이 닿았다. 옛 이메일을 통해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카페로 찾아온 놈은 어느새 같은 도시의 늦깎이 '경찰'이 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성취한 녀석이 대견했고 자랑스러웠으며 샘이 나기도 했다. 몇 시간 씩 수다를 떨며 그간의 있었던 온갖 이야기 꽃을 피웠고 우리는 추억에 도취되기도 하며 '그땐 그랬지'를 연발했다. 


 그 후로 녀석은 꾸준히 안부를 물으며 카페를 찾아와 나를 솔찮이 즐겁게 해 주었다. 사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 놈도 외로웠을 거라. 마음 가눌 데가 없어 돌고 돌아 나를 찾았다는 걸. 하지만 속이 좁은 나는 마냥 녀석이 부러웠다. 그럴듯한 직함과 안정적인 루틴들로 이루어진 삶. 나와는 거리가 먼, 옛날 꽁초를 줍던 나를 비웃던 녀석과의 격차가 여전하다는 생각에 작은 일에도 하나밖에 없는 친구에게 못된 말들을 성토하기도 했다. 철이 없기는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느꼈을 때 이미 재현은 내게서 아득히 멀어진 후였다. 



 그 사이 코로나 펜데믹은 몇 번이나 이 도시를 집어삼켰고, 무료한 시간들을 자음과 모음으로 때우던 시간들 속에서 꾸려가던 가게는 회생불능 지경에 이르렀고 그럴수록 나의 우울감은 침잠했다. 그러던 차에 재현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나 결혼한다."


"응?"


"결혼한다고 이 새끼야ㅋㅋㅋㅋ"


"헐!"


 날아온 모바일 청첩장 속에 녀석과 신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천생연분이었을 터였다. '축하한다.'라는 상투적인 말로 마무리 짓던 휴대폰 액정을 한참이나 바라봐야만 했다. 재현은 누가 봐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이십 년을 함께 했고 날 생각하는 놈의 모습은 늘 한결같았다. 그런 녀석을 샘냈고, 나 자신과 비춰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못되게 군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이번 기회에 녀석에게 사과를 해야 했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며 다시금 관계 회복에 나설 요량으로 결혼식장과 시간을 휴대폰 메모로 기록해놓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가게 유지하기도 벅찬 상황이라 당시 나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밀려 나오는 고지서의 지옥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구하려면 구할 수 있는 축의금이었지만, 희한한 아집이었다. 여전한 열등감, 시샘을 넘어선 질투. 결혼식 당일, 해변에 다리 하나 건너 있던 예식장을 괜스레 두 바퀴 걸어 돌아야만 했다. 

 

 결국 나는 본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SNS에 올라온 녀석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좋아요' 버튼 하나 누르지 못했다. 신혼여행 사진들을 보며 왠지 모를 질식과 갈증이 느껴졌다.



 

 그렇게 자괴감마저 잊힐 즈음,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재현이 카페에 찾아왔다. 분명 전 날 야간 근무를 하고 귀가하는 길이었을 테다. 녀석은 심통난 표정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형식적으로 안부를 묻는 내게 재현은 묵묵부답이었다. 


"너 왜 안 왔냐?"


"........."


"난 다른 친구는 안 와도 너 만큼은 와줄 거라 생각했다."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돈이 없는데 빈 손으로 가는 게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고. 그나마 있던 유일한 친군데, 정장 한 벌 없던 내가 쪽팔렸다고. 재현이 답했다.


"내가 그나마 제일 친한 친구가 너 하난데, 네가 안 오니까 너무 섭섭하더라."


"엥?"


 꿈에도 몰랐다. 녀석은 탄탄대로를 걸어오며 많은 친구가 있을 거라,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축하해줬으리라 예상했다. 나랑은 결이 다른 녀석이니까. 수더분하고 늘 쾌활한 녀석이니까. 나 하나 정돈 그 자리에 없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재현이 나를 이렇듯 소.중.한 친구라 생각해줄 줄은 몰랐었다. 


 얼이 빠진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녀석은 갑자기 테이블 위로 오만 원짜리 몇 장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중에 리마인드 웨딩 할 때 이 돈 갚으러 와라 친구야."


"......."


 말없이 나가는 재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헛된 삶을 살아오진 않은 모양이다.






P.s 미안하고, 축하한다 재현아. 행복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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