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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Dec 10. 2020

다음 일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꾸리에, 2016


피뤼스Pyrrhus,  BC319~272는 주변의 많은 나라를 정복한 고대 희랍의 왕이다. 시네아스Cineas라는 신하가 왕의 끝없는 정복 전쟁을  저지하고 싶어 했다. 특히 로마 원정에 반대하였는데, 이때 왕과 나눈 대화가 유명하다. 시네아스는 끊임없이 "그다음에는?" 이라고  묻다가 피뤼스가 마지막 정복 후에 휴식을 취하겠다고 말하자 겨우 질문을 끝낸다. 그리고는 원정의 허망함에 대하여 왕에게  충고한다. 그 모든 제국들을 정복하느라 고생하고 결국 나중에 돌아와 쉴 텐데 굳이 뭐하러 떠나느냐는 것이다. -역자 후기 中, p.155-156



SNS에서는  가끔 초콜릿, 사탕, 아이스크림, 쿠키, 빵들을 자르고 녹이고 굽고 쪼개서는 다시 섞어서 새로운 디저트로 만드는 영상들을 마주치게  된다. 따로따로 먹어도, 그것들 중 하나만 먹어도 이미 달고 맛있는데 굳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건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굳이 왜 이래야 할까? 이렇게까지 해서 더 달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하나? 나는 이 영상들을 무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만드는 사람은 내가 아닌데, 과연 내가 타인의 행동에 대해 무용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내가  이런 나의 생각을 반성하게 된 건, 나 역시 누군가 무용하게 생각할만한 일들을 누구보다 많이 한다는 걸 깨닫고 나서이다. 쉽게 예로  들자면 여행이 그렇다. 나는 여행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사랑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짐을 싸고 공항에 가는 리무진을  타는 일,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고 라운지에 들르고 면세점을 들르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기내식을 먹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낯선 공항에 도착해서 그곳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호텔에 도착하고 낯선 거리를 걷고 낯선 음식을 먹고 호텔에서 잠을 자는 그 모든  순간과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 순간까지. 그렇게 내 집, 내 방, 내 침대로 돌아오면 그제야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  느낌이고 나는 그 느낌을 몹시 사랑한다. 와, 내 방 내 침대 너무 좋네, 나는 내 침대가 얼마나 좋은지 깨닫기 위해서  여행하는가 봐,라고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말하는데, 그런 나의 말을 들으면 아빠는 어김없이 "나는 여행 안 해도 내 침대 좋은 거  아는데 너는 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여행해야만 그걸 아는 거냐?"라고 물으시는 거다.


한 번은  가족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기다렸다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다. 와, 저걸 눈앞에서 실제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너무 좋겠다!라고 내가 감탄하고 부러워하자 예의 아빠는 또 그러시는 거다. "내 집에서 가만있어도 다 볼 수  있는데 왜 부러 저기까지 가서 저걸 봐야 되냐?"라고. 



스물아홉에 뉴욕으로  드디어 가게 되었을 때, 그것은 나의 중학교 때부터의 목표였으므로 나는 너무나 기쁘고 떨렸다. 하루하루빨리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터에 친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그중 한 친구가 내게 그랬다. 고작 일주일 동안 미국에 가다니 너무  돈지랄이라고, 비행기 값이며 호텔값이며 그 먼데를 가는데 고작 일주일 가느냐는 거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렇게라도 나는 꼭 가고  싶고, 그게 내가 원하는 바라고 얘기했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내게 주어진 휴가는 일주일뿐이었다. 만약 그 친구 말대로  그곳이 먼 곳이기 때문에 더 오래 머물기 위해 때를 노려야 했다면, 여전히 그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멀기 때문에 가지 않기를 택하는 것은 그 친구가 선택하는 것이지 나의 선택은 아니다. 나를 세상 한심하게  보았던 그 친구의 냉소는 나로서는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왜 힘들게 굳이 여행을 하면서 그래 봤자 어차피 집이 좋다는  걸 깨닫느냐는 아빠의 냉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보부아르의 이런 문장을 읽는다.



스키  선수는 오로지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은 단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운동을  아무렇게나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 혹은 계곡의 바닥을 목표로 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종합적 의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그의 행위의 모든 요소들은 그 의미들을 향하여 스스로를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오르내림은 산보나  운동을 위한 초월적 행위인데, 이와 같은 좀 더 넓은 총체의 관념을 배척하는 것은 너무 자의적인 결정이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스키를 타는 사람이지 냉소가가 아니다. - p.42



앞서  말한 디저트를 새로 만드는 영상을 보고 내가 한 것도 바로 그 냉소였던 것 같다. 내가 그 디저트를 만드는 혹은 그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면서 나는 냉소가가 되어 바라보지 않았는가.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방향과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무용하다 생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냉소가가 아닌가. 내려가기 위해 올라갈 거라고 냉소하는 사람은 스키를 탈  수 없다. 돌아올 건데 뭐하러 떠나냐고 말하는 사람은 여행을 할 수 없다. 먼데에 그 짧은 기간 뭐하러 가느냐고 말하는 사람 역시  여행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분야가 다르지만 자기가 생각한 것들을 목표로 하고 있고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이걸 생각하다가 책을 읽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이 '읽었는데 내용 다  까먹었어, 이럴 거면 책을 왜 읽을까.' 그러나 까먹을 거라서 안 읽는다면, 거기에는 책을 읽지 않는 내가 남는 거다. 어떤 행위를  하면 하는 사람이 된 거고, 그 행위를 한 내가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혼자 준비하는 것, 그리고 낯선 장소와 낯선 음식, 낯선 사람을 오롯이 혼자  만나는 것에서 오는 충만한 기쁨과 만족이 있다. 얼마나 짜릿한지 매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그렇게 혼자 걷고 먹고  보는 걸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우면 외로움이 찾아든다. 오늘 내가 보낸 이 시간, 내가 보았던 것과 먹었던 것과 느꼈던  것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이 밤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디가 특히 아름다웠는지, 어느 음식은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든지, 어디를 걸을 데는 좀 두려웠다든지 하는 것들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좀 더 근사하고 완성된  여행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또 나는 혼자 이 거리를  걸어야 하니까! 이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나는 혼자인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혼자이고 싶다는 건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인간이란 무릇 그런 존재라고 보부아르가 말해주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우리의 존재를 완성하려 한다. 나는 들판을 걸어간다. 풀을 꺾고, 발로 돌을 차고, 언덕에 오른다. 이  모든 것을 아무런 증인 없이 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평생 이러한 고독에 만족할 수는 없다. 산책을 끝내자마자 나는 친구들에게 그  산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칸다울레(BC 8세기 리디스의 왕) 왕은 왕비의 미모가 만인의 눈에 아름답게 비치기를 원했다.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몇 년 동안 숲 속에서 혼자 살았지만, 그러나 숲에서 나와 『월든』을 썼다. - p.89



캬- 나는 위의 인용문이 너무 좋다. 자지러지게 좋다. 특히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몇 년 동안 숲 속에서 혼자 살았지만, 그러나 숲에서 나와 『월든』을 썼다'는 부분.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다. 



이  책은 2016년 12월에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재독 해야겠다고 이미 리뷰를 썼던 책이다. 그 당시에 도대체 뭐라는 거야,  당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언젠가 재독 할 거라고 생각했던 책이어서 2020년 12월에 재독 했는데, 한 장 한 장 너무 재미있고 신나게  읽으면서, 도대체 내가 2016년에 이걸 왜 이해하지 못한 걸까 궁금했다. 어쩌면 내 독서 근육이 그때 더 약했기 때문인 걸까. 이  책에는 평소에 내가 늘 생각해왔던 것, 그래서 알라딘에서도 썼던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친구랑  홍콩에 여행 갔을 때는, 홍콩 호텔에서 그다음에는 태국으로 여행 가자고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있었다. 몇 해 전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사주 선생님은 내게 '네가 그게 무엇이든 하물며 네 적성에 꼭 맞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시간 너는 너를 돌아보며 이것이 맞는 걸까 답답해하고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라고 했더랬다.  나는 자꾸 앞으로 가려고 하고 그리고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지 중간중간 멈춰서 돌아보는데, 보부아르는 인간이 원래 이런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내가 혼자라면 내 생각대로 됐을 일들이,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예상과는 다른 일들로  변해버리게 되는 것, 보부아르는 세상이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 거라고 한다. 내가 누누이 말했던 바로 그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자기 자신이 온전히 자신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던 것을, 보부아르 역시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또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안녕을 바라야 하는 거라고, 우리는 다른 사람과 섞여서 살아가고 그들이 우리를 밀어주거나  반대하거나 끌어주더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방법이며 모습이라는 거다. 다만, 보부아르는 이 모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우리가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야기에 '기투', '초월', '초월성',  '지양', '실존' 등의 철학 용어를 더했다. 이 용어들이 낯설어서 중간중간 책을 읽다가 턱- 하고 막힐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역자 후기>는 크- 한줄기 빛이 되어 이 용어들에 대해 설명해준다. 너무 알기 쉽게 설명해줘서 아니,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지? 했더니 옮긴이 '박정자'는 '사르트르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역자 후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도  좋겠고, 이 책을 읽고 역자 후기를 읽어도 좋을 것이며, 이 책을 읽고 역자 후기를 읽은 후에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더 좋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또 이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항상 애인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러니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물론 가장 처음 나 자신을 포함해서,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자고, 지치지 말고  나아가자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게 그런데 절대선인 걸까?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선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의문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뒤로도 가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사 우리가 돌아가고 뒷걸음질 치더라도, 결국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부아르는, 나의 이런 생각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이 책 한 권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인간은 현재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 우리가 지금 사는 이 현재는 미래의 나를 구성하는 것이고 그 미래는 또다시 현재의  내가 되어서 또 그다음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거다. 내가 항상 작은 목표라도 만들고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면서 살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환하게 설명될 수밖에 없다. 내가 자꾸 여행을 떠나는 것, 어차피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부득이 그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자 내가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은 분명 의미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서 나를 맞이할 것이며, 나는 잘 살고 있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바로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었던 과거가 있고, 그 과거는 그 책을 읽는 동안에는 현재였다. 이런 미래를 위해  준비된 현재였다. 




피뤼스는 정복하기 위하여 출발한다. 그러니까 그는 정복할 것이다. "그럼 그다음은?" 다음 일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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