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pyt Oct 26. 2023

얘야, 나는 이렇게 살았단다

영화 <그대들은 어떯게 살 것인가>를 보고

영화가 끝났을 땐 난감했다. 개봉일에 맞춰 보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나는 어떤 기대를 했던걸까?) 전날 잠을 설친 탓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종종 졸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집에 와서 영화를 곱씹어보니 이전과 다르게 영화가 다가왔고,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야오가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동명의 책에는 코페르라는 중학생 주인공과 외삼촌이 등장한다. 코페르가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질문들에 대해 외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며 책은 전개된다. 외삼촌의 시선을 통해 저자 오에 겐자부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책 속에서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엿본다. 혹시라도 영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 코페르는 더 고민하지 않는 게 좋다. 자신이 실수한 것을 생각할 만큼 생각해보았고, 후회할 만큼 후회했으며, 실컷 괴로워했다. 이제는 고개를 들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출발할 때였다.

영화 속 마히토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을 투영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가 성장한 시대적 배경이나, 아버지가 공장장이었다는 공통점 등을 그 근거로 찾을 수 있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손자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떠나도 작품이 남았다고 말하길 고대한다"라고 말했다. 즉 작품에 자신의 삶을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관점에서 영화 속 이야기를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해석해보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했던 할아버지로서 말이다.



사랑하는 너에게


얘야, 나는 이렇게 살았단다. 때론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를 대할 때도 있었어. 그런데 그 흉터는 결국 내게 남더구나. 때로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기도 했었어. 꿈과 같은 세상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살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나는 소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나왔단다. 이로 인해 그동안의 내 세계가 무너질지도 몰라. 그런데 작품을 만든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니깐 기꺼이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갔단다.


얘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단다.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니? 때로는 주변을 둘러보렴. 툴툴 거리지만 너를 위하는 친구들도 있을 거고, 누구보다 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나처럼 말이지. 나만의 세계 속에서 내가 두려워 하고 통제하려 했던 것들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때론 아무것도 아니더구나. 그러니 기꺼이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보자. 


물론 꿈과 같은 그 세계에서의 기억 중 몇 개는 가져와도 괜찮단다. 그 시절의 기억이 때론 너를 지켜줄테니까. 이 세상 속에서 단 하나뿐인 너의 삶을 쌓아나가자. 그렇게 함께.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자. 


할아버지가.


작가의 이전글 가라앉지 않기 위한 발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