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wme Jul 10. 2021

손절, 너 참 어렵다

#무엇인가를 끊어낸다는 의미

취미라고 말할 만큼 거창하지는 않지만, 최근 주식에 발을 담갔다. 주식을 하면서 나 같은 ‘주린이’가 겪는 고충 중 하나는 ‘손절’이 아닐까, 라고 확신한다. 이미 파란색으로 접어든 차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는 붉은 숫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나의 발목을 종종 잡았다. 어느새 의지 상관없이 ‘존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길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인생을 살아가며 미련하게 손절하지 못해 후회한 적이 많다. 끊어낼 수 있을 때 확신을 가지고 뭐든 냉정하게 돌아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감정이 꿈틀댔다. 내가 손절하지 못한 에피소드 중 으뜸은 연애였다. 인간관계에서 손절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아마 찾지 못할 것이다.

 

대학 입학 후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와 첫 연애를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추억이 보정됐음을 감안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군대에 가게 됐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은가. 차츰 다툼이 잦아졌고, 그러다 이별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휴가를 나오면 우리는 만남을 지속했고, 그 순간만큼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냈다.

 

분명히 머리로는 나와 그녀 모두가 끝난 관계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미련이라는 마법과도 같은 단어에 취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보다 성숙했던 그녀는 일 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단호하게 나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어렸다. 지금 생각하면 연락을 끊어준 그녀에게 고맙다. 관계를 끊어주었기에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고, 기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손절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미지가 차갑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려놓음’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매거진 에디터로 근무할 때, 수십 번을 읽고 몇 번이고 원고를 첨삭했다. 이제는 됐다, 싶을 정도로 확인하지만 무엇인가 더 좋은 표현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 인쇄본에서 오탈자를 마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당시의 무력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며칠이고 무능을 자책했다.

   

아직까진 미련이라는 단어를 떨쳐내는 게 어렵다. 시간을 많이 쏟고, 더 많이 사랑하는 게 언제나 좋은 결과를 이끌지 못함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서혜진 시인의 <너에게>를 건네고 싶다.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며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