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니까, 그렇기에
이제는 익숙한 ‘MZ세대’는 재기 발랄하고, 매 순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MZ세대를 ‘번아웃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냉혹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들을 번아웃으로 내몰고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대가 이것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니, 역설적이기에 더 슬프다. 어설프게나마 MZ세대로 묶이는 나에게도 이는 남 일이 아니다.
몰입하고, 좋아해야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한다. 조직을 세 번 옮기면서 내가 경험한 게 한 가지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었다. 때때로 좋아하는 것이 상처로 돌아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를 떨쳐내기 위해 부단히 외면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외면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됐다. 좋아하는 것에 쏟는 열정만큼이나 다른 걸 채우려 비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일련의 겪었던 경험으로 인해 나만의 방법이 하나 있다. 덜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여가 시간에 드라마와 영화 보기를 즐기는데 ‘스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과한 몰입을 방지하기 위한 나만의 수단이다. 작가가 어렵게 쓴 대사를 음미하고, 연출가가 찍은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살펴보는 게 드라마와 영화를 소비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것이 스트레스가 된다고 지인에게 술자리에서 털어놓기 전까지 말이다. 대단치 않은 커밍아웃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전체 내용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의 토막 영상을 보기도 하며, 중간의 한 장면만으로 열광하기도 한다. 굳이 몰입하고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재미란 일정한 맥락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하는데, 아닐지도 모른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쳐서도 안 된다. 이 당연한 문장을 깨닫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 이 글을 쓰고 게재하는 ‘브런치’를 대함에도 동일하다. 매력적인 공간에 내가 글을 올린다는 점이 썩 나쁘지 않다. 꾸준하게 글을 쓰다가도, 이 작업에 금방 싫증이 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걸 중단하기도 한다. 내 나름의 덜 좋아하기이다.
조금 더 도발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취향이 없다는 게 누군가에게 핀잔받을 일이 아닐지 모른다. 최근 재미난 기사를 한 편 읽었는데, ‘MZ에 대한 편견이 불편한 MZ’라는 소제목에 눈길이 갔다. 재기 발랄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MZ세대. 다양성이 정답이 되어가는 시대에서, 다양하지 않고 기존의 정상성을 즐기는 이들은 MZ세대가 아닌 것일까. 몰입하고 좋아하는 것에 적극적이며, 취향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만이 현실을 잘 살아가는 건 분명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